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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기장/2009

오토바이






눈에 안 보이던 물건이 갑자기 확 꽂히는 때가 있다. 대개는 일상에 뭔가 불만스러운 일이 있을 때

나 마음에 커다란 구멍이 생겼을 때로, 평상의 상태로 돌아가면 마치 발정 끝난 고양이처럼 그 때

의 자신이 왜 그 물건을 그리도 원했나 이해조차 할 수 없다. 때문에 나는 그런 때가 오면 그저 꾹

참거나, 어지간히 비싼 물건일 경우 자신에게 닭고기를 사 먹여서 주의를 다른 곳으로 돌리곤 한다.


요사이에는 그 대상이 오토바이이다. 참된 문과대생답게 기능엘랑은 일체 관심이 없고 (50cc도 내겐

헐리우드 블록버스터 급의 스릴인 탓도 있다), 오로지 보는 것은 디자인 뿐인데, 사진의 두 오토바

이는 특히 등하교길에서 눈여겨 본 물건들이다. 주인들이 즐겨 타지 않는지 항상 같은 자리에 주차되

어 있고, 먼지가 뽀얗게 쌓여 있는데, 마침 비가 온 틈을 타 좀 깨끗해졌길래 찍어 봤다. 저 녀석들의

외눈박이 조명등을 물끄러미 쳐다보고 있으면, 주인에게 학대받으며 데려가 주길 간절히 바라는 고

양이를 보는 기분이 든다. 특히 빨간 녀석은 며칠 전 지브리 스튜디오의 [붉은 돼지]를 본 이후 애착

이 급격히 상승. 법만 없다면 절도라도 하고 싶은 마음 간절하다.


본래는 갖지 못할 것, 그림이라도 예쁘게 그리려 했는데 그리는 동안 웬지 처량해져서 때려치웠다.

덕분에 이십여년 전 학생과학에서 부록으로 줬던, 키보드 모양이 인쇄된 종이를 책상 유리 밑에 넣어

두고는 혼자 타자 연습을 하다가 쓸쓸해져서 창밖을 봤던 기억이 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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