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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기장/2007

연세대학교 문과대학 연극동아리 연극과 인생 제 28회 정기공연 '굿 닥터'






시간은 넉넉하였는데도 갑자기 찾아온 가을과 복학 2학기째의 게으름, 그리고 공연후유증이 겹쳐

오랫동안 일기를 적지 못 했다.


속해 있는 연극동아리 '연극과 인생'이 어느덧 28회 공연을 치뤄 내었다. 처음 참여했던 작품이

제 17회 공연 '대머리 여가수'이니, 세월을 느끼게 하는 시금석이 여기 또 하나 있는 것이다. 게다가

이번 작품은 '굿 닥터'. 이러구러 5년째 적고 있는 이 홈페이지도 2002년 '굿 닥터'를 끝내고 공허해

하던 차에 선물로 받아 이날 이때껏 굴리고 있는 것이니 그 이름을 다시 적는 감회가 자못 새롭다.


여러차례 술회하지만, 2002년의 '굿닥터'는 정말 축복같은 공연이었다. 갖가지의 내외적 난관들도

돌이켜보면 구성원간의 팀웍을 단단하게 할 수 있는 장치로 작용하였고, 공연의 완성도에 비해 관

객의 호응도도 엄청났다. 당시에는 수많은 시행착오와 고민이 있었고 배우로서 스탭으로서 구성원

으로서 무엇 하나 마음에 가득 차는 것이 없었지만, 오히려 그렇게 필사적으로 덤벼 들었던 것이 가

장 아름다운 추억으로 남는 중요한 요인이 되었다고 생각한다. 수많은 실수들에도 불구하고, 그 공

연은 준비과정과 상연까지를 합해 내가 꼽는 최고의 작품이었다.


그런 '굿닥터'를, 오랜 시간이 지나 더욱 흥성해진 동아리의 후배들이 준비하고 올린다는 소식을 들

었을 때에는 정말 꿈같았다. 연극부에서 선배로 있으며 누릴 수 있는 최상의 행복 가운데 하나가 아

닐까. 친분이 있는 너그러운 연출은 3분 가량 등장하는 단역 하나를 흔쾌히 건네 주었다. 결국 연출

과의 연습은 한 번 뿐이었는데, 근거없는 신뢰에 사과만을 건네게 되어 부끄러울 뿐이다.

다음은 그 공연에 대한 후기로 동아리에 올린 글의 전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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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희승 전前 연출님의 글을 읽고 느껴지는 바가 있어 예전의 공연들에 관련된 게시물들을 찾아 읽어

보았습니다.


가장 먼저 읽게 된 것은 당연히 접근성이 용이한 지난 공연 '라디오의 시간' 관련 글들이지요.

(여담이지만 장관부부와 피터 부부를 '라디오의 시간' 첫 날 첫 공연에 보내준 이연출에게 이 자리를

빌어 감사의 말을 전합니다. 좋은 추억이 되었습니다.)

긴 추억의 답보를 떠나기 전에 마음을 달래어 놓는 애피타이저 정도로 시작한 것인데, 도형군의

독침총 발사나 경선옹의 시도 때도 없이 궁둥이 지지기, 유행어 제조기 규용군과 (훗날의 배역을

암시하는 듯한) 철진군의 치통 등 잊고 있었던 여러 가지의 추억들이 떠올라 한참 웃었습니다.

주인공인 손원배 역을 가위바위보로 결정했다는 것도 아마 몇년쯤 지나면 짧지 않은 십오년 연인

역사에 전설처럼 남겨질 에피소드가 되겠지요.


그럭저럭 올라가다가 마침내 제19회 정기공연 '굿닥터'에 가 닿게 됐습니다. 사연없는 공연은 단 한

번도 없었지만, 19회 '굿닥터'는 유난히 난관이 많은 편이었습니다. 지금은 연인의 거목(이자 거구)

이신 연출 김진섭 선생과 무대감독 김신각 선생도 당시에는 경험이 없던 데뷰어들이었고, 배우들

또한 대부분 그러했습니다. 공연 바로 전주의 연세춘추에는 대학의 연극동아리가 창조적인 작업을

하기는 커녕 예전의 작품들을 무비판적으로 답습하고 있다는 요지의 기사가 실렸고 그 대표적인

예로 문과대학 연극동아리 연극과 인생의 '굿닥터'가 거론되었습니다. 항의하였지만 답변은 돌아

오지 않았지요. 공연당일 밖에는 비가 내렸고, 학생회관 계단 앞에서는 저녁까지 밴드와 풍물패가

공연을 일삼았습니다. 공연이 시작된 뒤에도 경비아저씨나 오르페우스의 학생들이 무악극장과 화장

실을 잇는 문을 덜컹 열고 들어오는 일이 여러번 일어나 배우들이 깜짝 놀라는 일이 많았습니다.

선배들이 없었기 때문에 그 문에 '공연중입니다' 안내문을 붙여야 한다는 걸 가르쳐 준 사람이 아무도

없었던 것입니다.


아무튼, 여러분의 공연이 결국은 끝났듯이 그때의 공연도 6회를 마지막으로 끝이 났습니다. 그리고

공연을 관람하신 선배님들이 글로써 말로써 격려하고 질타해 주셨지요. 그때의 글들을, 읽게 된 것

입니다. 그정도면 잘 했다고 얼러주는 글도 있었고, 두달 연습해 놓고 그게 뭐냐는 글도 있었고,

이제는 다 지난 이야기니까 웃으며 읽고 있었는데.


- 연인의 옛 선배님들이 여러분에 대해 궁금해하지 않는 것은 아닙니다. 오히려 그 반대라고 할 수

있지요. 공연때가 되면 이번에 작품은 무엇이니, 아이들은 열심히 하고 있니, 먼저 연락을 주시는

일도 있습니다. 연습에 한 번 가보시지 그러세요, 열심히 하는 아이들한테 술이라도 한 잔 사시지

그러세요, 하고 말씀을 드려 보아도 '보고 싶은 마음이야 굴뚝같지만...'이라며 고개를 내저으십니다.

...이란 단 점 세개일 뿐이지만 그 안에 포함되어 있는 세월이란 얼마나 장구한 것인지. 실례로 여러

분이 지난 공연 연습중 단체관람하였다는 '조선형사 홍윤식'의 연출 김재엽님은 92학번, 세현군이나

상아양과는 무려 15살 차이입니다. 오피셜 에이지가 29세이신 홍사부님보다 무려 여섯살이나 더 많

은 차이. 물론 선배님들과 저희 또래의 나이 차도 적은 편은 아니었지만 그래도 진섭군이나 신각군

등의 인재가 있어 그 성숙한 외모로 심리적 간극을 메울 수가 있었습니다. 거기에 비하면 여러분

은 얼마나 홍안의 미소년소녀들인지, 아직 학부생인 저조차도 내 피부 주제에 저들에게 말을 걸어도

좋은 것인가라는 고민을 할 때가 있는 것입니다. 선배된 부끄러움이란 해가 가야만 알 수 있고 해

가 갈수록 더하는 것이니 여러분도 언젠가 직접 느끼기를 바라며 줄입니다.-


아무튼 그러한 옛 선배들 중에 제가 한 이상적인 연출상으로서 우러르는 선배가 있는데, 그분이

남기신 굿닥터 관람기를 다시 읽게 된 것입니다. 작품과 연기, 그것과 연결된 인생등에 대한 이야기로

당시에는 딱딱하다 여겨 슥 지나친 것이, 몇년이 지나 먼지가 쌓인 게시판에서 다시 읽으며 저는

가슴이 선득선득했습니다. 이것이 과연 선배이구나. 이래서 과연 선배이구나.


결국 그래서 공연을 끝내고 추석의 한가함을 틈타 쓸쓸해 하고 있을 팀 굿닥터에게 선배랍시고 무언

가 해 줄 수 있는 말이 없을까 자판 앞에 앉게 된 것입니다. 고작 이 말을 하기 위해 장강과 같은

스압을 만들어 놓았으니 참담한 기분 이를 데 없습니다만, 그래도 마음이 전해진다면 그것이 어디냐.

추석이고 연휴임에도 심심함에 발광이 나서 긴 글을 읽는 이는 분명히 있을 것이다. 라고 생각한 것

입니다.


연출로서 겪어 보았고, 같은 배우로서 무대에 서 보았으니 저의 보잘것없음은 여러분도 알고 계실

것입니다. 그래서 연기가 어떻니, 연출이 어떻니 하는 말은 차마 하지 못 하겠고, 당시의 저, 2학년

2학기에 재학 중이었던 굿닥터 출연 배우가 공연이 끝난 뒤 혼자 휘갈겼던 글을 붙이는 것으로 갈

음합니다.

분량에 비해 내용은 없는 연비 저등급의 글이나, 뒷풀이에서 많은 이야기를 나누고자 했던 안타까운

마음이라 여겨 주기 바랍니다.



언젠가 또 무악에서 만나길. 안녕 팀 굿닥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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