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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기장/2003

어이가 없다.




자신과 자신의 편의 기분, 이익을 위해 사람이 턱턱 죽어나가는데도 꿈쩍 안 하고 미사일을 쏴

댄다. 버러지만도 못 한 놈. 학생운동이나 인권보호를 하는 사람들만이 화를 낼 문제가 아니다.

인간으로서, 수천년의 '문명'이라는 것을 이어받고 있는 인간으로서 문명이 시작될 무렵과 하나

달라짐이 없음에 분노하고 화를 내야 할 것이다.



합당하고도 논리적으로 부시의 야심을 지적하는 반전의 논리가 필요한 것이 아니다. 죽어 나자빠

진 어미를 붙잡고 우는 아이, 그 아이의 주위로 지나가는 모래바람, 그 바람에 아이가 느꼈을 조그

만 추위, 목이 찢어져라 울어대는 통에 성대에 느껴지는 고통, 눈물이 끼어 흐릿하게 보이는 세상,

그것들 중 단 하나라도 직접 상상하고 눈물을 머금으며 화를 내야 할 것이다.


부끄럽다. 언젠가 우리의 아이들이 이 일에 대해 물어왔을 때에 우리는 무엇이라고 답할 것인가.


거듭 생각하지만 이것은 운동인으로서나 대학생으로서, 혹은 지성인으로서 뇌 속 깊은 곳 어딘가에

느껴야 할 고상한 슬픔과 분노가 아니다. 심장이 뛰고 피가 도는 인간이란 동물로서 우리 종의

비극에 살갗이 타오르는 아픔을 느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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