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일부터 어울림조가 시작된다.
어울림조라는 것은 연세에서도 두어개 학부, 그 중 하나인 문과대 내에서도 역시 두어반만이 실행
하고 있는, 일종의 새내기 학교 적응시키기 프로젝트다. 적정수의 선배와 후배를 같은 조로 짜 주면,
선배는 어울림조 기간이 끝날 때까지 밥과 술을 사 내어야만 한다. 내가 입학했을 때에는 한 달이
었는데, 경제적 압박을 못 이긴 선배들의 원성 탓인지 언제부터인가 이주로 줄어버렸다. 내가 가난
하다고 해서 다른 사람들에게 다시 한 달로 늘리자고 할 만한 당위성을 갖는 것은 아니니 큰 소리는
못 내겠지만, 그래도 어쩐지 서운하다. 받은만큼 해 주고 싶은데.
전설처럼 들었던 97학번들의 이야기는 이젠 애들한텐 해 줘봐야 뻥치는 줄 알고, 나의 이야기조차
전설이 되어 나는 적지않게 마음이 쓸쓸하다. 뭐랄까, 돈을 더 써서가 아니라, 그만큼 오고가는 마음
이 더 많았던 것 같은데.
이것으로 나의 어울림조가 네번째, 선배로서 맞는 어울림조는 세번째이다. 매 해 나름으로 후회 없이
놀아대었다 생각하고, 아마도 (어디까지나 아마도) 마지막일 것이라 생각하는 이번이니 정말
대차게 달려줄 테지만, 그만한 리액션이 있어 주려나.
일년 받고 삼년째 베풀고 있는데도, 아직도 다 했다는 생각은 들지 않는다. 사실 절대액수등으로
생각해 보자면 받은 만큼은 내림했다 생각하지만, 그만큼의 마음만은 내려주지 못 했다는 생각이
계속해서 날 달리게 만드는 것 같다. 내 후배들은 내 등을 보면서 내가 내 선배들의 등을 보았을
때와 같은 눈을 하고 있으려나. 그랬으면 좋겠다.
그러기 위해서, 내일도 즐겁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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