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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기장/2010

스프링 목마

스물 다섯에 주공 아파트에서 신혼 생활을 시작하신 아버지는 내 나이 무렵에 연립 주택을 얻었다.

반지하와 옥탑방은 세를 주었고, 마당에는 나무대에 주렁주렁 걸쳐 놓은 포도나무와 때도 없이 열매

를 맺는 앵두나무가 있었으니 스스로 중산층의 자제라고 생각하고 자라난 것도 무리는 아니다.


방과 후나 휴일에는 항상 한두살 터울의 동네 아이들과 어울려 구슬치기나 다방구 같은 놀이를 했다.

일방통행 1차선 하나만 건너도 남의 동네라고 생각했던 시절이라 이 편 저 편 먹고 싸움질을 했던 것

도 다반사였다. 아무튼, 뭘 해도 재미가 있었다. 우연하게도 딱 동기들만 모인 날에는 흔치 않았던 맞

벌이 집의 어느 구석에 모여 병원놀이를 하던 기억도 난다. 지금이라면 뉴스에 날 일이다.


하지만 방학을 막 하고 난 뒤, 그러니까 딱 요맘때쯤에는 아이들이 모두 바캉스를 떠나거나 시골의

친척네 집에 가 있는 통에, 평소보다 적은 수로 놀아야 하는 날들이 있었다. 점심때쯤 맞춰 EBS 라

디오에서 해 주는 탐구생활 방송 숙제를 하고 골목으로 나갔는데, 멀리 도로까지 동무들은커녕 행인

조차 없고, 스프링 목마 아저씨만이 땡볕을 쬐며 앉아 있었다.


구슬치기처럼 두 명 이상이 되어야만 하는 놀이도, 때로 혼자 해야 하는 일이 있다. 그렇지만 스프

링 목마는 혼자 타 본 일이 없었다. 두 명이 타나 세 명이 타나, 조금 더 신나고 덜 신나고의 차이야

있다 뿐이지 별다를 것은 없을 것이었는데, 아무튼 여름 대낮에 텅 빈 골목에서 혼자 오십원을 내

고 끼익끼익 스프링 목마를 타는 것은 뭔가 좀 야릇하고 무서운 기분이 드는 일이었다. 굳이 비교

하라면, 신나서 병원 놀이를 하다가 한참 어린 애들 말고 또래나 연상의 여자아이의 몸을 봤을 때

드는 그런 기분 비슷했다. 갑자기 흥이 깨지기는 했지만 그래도 뭔가 보면 안 되는, 신비스러운 것

을 엿보았기에 재미나 흥미는 더해진 기분.


내처 잠을 자는데, 목마마다 달린 녹슨 스프링, 나무판으로 감싼 붉은 빛의 디지털 시계, 오십 원을

짤랑거리며 아이스크림을 빨고 있는 목마 아저씨, 대문 앞마다 좌악좌악 뿌려 놓은 물들이 증발하면

서 피워 올리는 아지랑이, 이 모든 것들이 한 번에 꿈에 나타났다. 스프링 목마가 어떻게 생겨먹었는

지는 둘째 치고 그 이름마저 잊고 지내고 있었는데, 어쩌다 꿈에 나왔는지, 뜻밖의 선물을 받은 기

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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