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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기장/2009

서울 가는 길

다케히코 이노우에의 역작 <배가본드>에서, 목욕을 꺼려하는 무사시에게 다른 어떤 이가, 목욕을

하면 평소에 긴장하고 있던 마음이 일순간 풀어진다, 너도 나도, 그때가 싫은거다, 그런 대사를 한

적이 있었다. 나는 당시 만나던 사람에게 나도 그래서 목욕이 하기 싫은거다, 라고 농담이나 할 뿐

이었는데.


짧은 추석연휴가 끝났다. 목요일의 민추 수업이 휴강했던 덕분에 연휴이거나 말거나 별 상관이 없는

내게도 꽤 긴 시간이 주어졌는데, 꼭 해야 할 일이나 해두면 좋을 일을 내팽개치고 인천으로 왔다가

이제 올라간다. 서울에서만 지내다 보면 작은 일 하나하나에 집착하여 고민하고, 압박을 받곤 하게

되어 학기중에도 나는 이따금 부러 인천을 찾아 긴장을 풀고 가곤 한다. 인천에서는 자거나 걷기만

해도 대범해지는 덕이다. 그런데 이번 연휴에는, 꽤 긴 시간을 쉬었음에도 다시 짐을 지고서는 돌

아가고 싶은 마음이 들질 않는다. 마음이 심약해진 탓인지, 아니면 고민하는 것들이 예전보다 많

아졌기 때문인지, 아무튼 이대로 인천에 눌러앉아 어디 다른 직업이라도 찾아볼까 하는 생각이 잠깐

이지만 깊게 들었다. 이럴 바엔 차라리 내려오지 말거나 당일날이나 잠깐 왔더라면 좋았을걸, 하고

는 몇 벌 안되는 가을옷 챙겨들고 다시 서울로 간다. 며칠째, 아아아아, 타향은 싫여, 고향이 좋아

라, 라는 노래가 입에서 맴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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