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일기장/2003

생일 축하해.





난 남자야. 쓰레기같은 남자는 아니야. 신검 1급이고, 혈액형은 B형이지. 수호성은 수성. 탄생화는

부겐빌레아. 꽃말은 순결. 별자리는 처녀자리. 처녀자리 생들의 특징은 순결. 8월생이지.


생일이라는 것이, 참 신기하지. 나라는 사람을 구성하는 요소들 중 아마도 나 자신의 의지가 가장

희박한 요소들 중 하나일 거야. 왜, 정자때 열심히 헤엄쳤을 거 아냐같은 뻔한 얘기는 관두자구.

내가 태어난 날은 장면 박사가 태어난 날이고, 프랑스 시민혁명이 시작된 날이지. 그렇지만 날짜로

서 그다지 특이한 숫자의 조합을 가진 것도 아니고. 어쩌면 가장 평범한 날일 수도 있는데, 그것이

한해에 오로지 나에게만 특별한 의미를 갖는다는 것. 이건 인간만 하는 짓인지도 몰라.


하여튼. 열댓살 이후로 생일날에는 도무지 재수가 없었어. 식중독에 걸리질 않나, 첫사랑하고 헤어지

질 않나, 몸이 아파서 학원 모의고사를 못 보러 가질 않나. 그러고 보니 학교생활 하면서 연애한 기

간이 반은 넘는데도 생일때는 항상 여자친구가 없었어. 젠장.


다른 날들과 별로 다를 것이 없는, 나 자신의 인식에 의해서만 다르게 되는 날이라는 걸 내가 알고

있어서인지도 모르지만, 어쩌면 그건 그냥 핑계고 생일날은 항상 재수가 없으니까 별로 특별하지 않

게 느끼지 않는 건지도 몰라. 난.


그나저나, 스물셋이네. 난 내가 스물셋이 되면 뭔가를 이루어 놓고 있을 줄 알았는데. 그 소리를

재작년에도, 작년에도 했건만. 올해도 또 하게 되다니. 그나마 조금 변한 게 있다면, 이젠 정말로

생일이 다가 왔다는 사실에 순수하게 감격하지 못 하고 지난 1년을 반추하는 계기로만 보기 시작했

다는 거야. 아, 또 한 살 먹었네, 하고. 양초만 하나 늘어나는구나 싶고.


생일. 생일. 그레잇풀 조이는 아니지만, 어쨌든 이 세상에 한 자리를 차지하게 된 기념일이니까, 축하

하자. 최대호, 이제 만 스물둘. 생일 축하해. 며칠 남았지만 요새 인터넷 하기가 쉽지 않아서 미리.



...생일양초는 왜 항상 저렇게 촌스러운가 몰라.

'일기장 > 2003' 카테고리의 다른 글

사랑을 아직도 난  (1) 2003.08.31
예술가 최연출  (7) 2003.08.30
일기  (1) 2003.08.23
수강신청  (4) 2003.08.19
8월  (2) 2003.08.1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