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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기장/2004

새로운 시작

말로만 찧고 까불고 했지 실상 한 일이라고는 대여점에서 빌린 원작 만화책 연체료만 천원 물어준 것

밖에는 없었던 [고백] 프로젝트가 드디어 궤도에 올랐다.


마음을 크게 울리는 몇몇 문학 작품들을 만나게 되었을 때에 연극이나 영화등의 텍스트로 극화하려

했던 것은 여러번이었다. 콘티도 짜 보고, 인물설정도 뒤집어 보고. 그러나 사실 그건 어디까지나

취미생활 정도로, 적어도 일주일 이상의 시간을 들여 조금이나마 극화의 시도를 해 보았던 것은 아사

다 지로의 '러브레터'였다. 이렇게 말하면 응, 그렇구나 뭐 그런게 있구나 하고 넘어가시겠지만 이 작

품은 결국 영화로 나왔다. 새치기 당했다, 분하다 제길, 하면서도 결국에는 강재의 눈물에 감동해서

울 수 밖에 없었던 영화 '파이란'이 바로 그 작품이다. 사실 새치기당했다는 건 어디까지나 분해서

한 소리고 설정이나 캐릭터등이 월등히 나은 것을 인정할 수 밖에 없었지만. 그다음으로 극화를 시도

했던 것이 아직 여러 분들이 그 이름을 기억하고 계실 [크라바트]였다. 그 시작은 마침 연극할 때

는 되었고 갓 맛을 들인 연출을 하기에 아주 좋은 타이밍이었는데 남의 거 가져다 얼기설기 고쳐서

하기는 싫었고, 그렇다고 써 놓은 건 없는데 하고 고민고민하다가 문득 소설 [크라바트]가 눈에 띈

것 뿐이었지만, 아무튼 평소에 전혀 생각이 없었더라면 시도할 엄두도 내지 못 했을 것이다.


사실 이건 여기서 처음 고백하는 거다. 내 책장에는 하다 못 해 혼자서 끄적끄적거려 놓은 설정

종이 한 장까지도 모두 모아 놓는 비밀서랍이 따로 있는데, 나는 거기에 극본 [크라바트]를 넣어두

지 못했다. 물론 밖에서 보면 원작을 극화해서 연출했단다, 야, 대단하다, 할지 모르지만 내부 관계

자들은 다 아시다시피 나는 소설 [크라바트]의 주요 사건과 대사들을 거의 그대로 가져다 쓰면서 약

간의 편집을 가했을 뿐이다. 그것도 극화의 한 방법이다, 라고 위로해주시면 고맙긴 하지만, 나는

적극적 원작 파괴의 대신봉자란 말이다. 원작의 분위기를 그대로 가져오려 했던 점이 마음에 들었다

는 어떤 관객의 감상 앞에서 나는 별로 마음이 편하지 못했었다. 말하자면 극화랍시고 별로 한 일

이 없었다라는 게 솔직한 고백이다. 그래서 극본 [크라바트]는 안타까운 자식이 되어 박스에서

잠자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또 한 번의 극화는 조금 꺼려지는 일일 수도 있었다. 그렇지만 극화를 하려고 마음

먹고 작품을 찾고 있었던 것이 아니라 인상적인 작품을 만나게 되어 극화를 하고 싶다라고 생각하게

된 것은 좀 봐달라고 말할 여지가 있지 않은가.


아무튼 고민고민하다가, 이번에는 큰 설정만 내버려 두고 몽땅 엎어버리기로 했다. 이렇게 결정하고

처음으로 한 장을 써 낸 것이 바로 어젯밤. 이렇게 [고백] 프로젝트가 시작되었다. 음악과 무대, 조명

까지 완벽하게 해서 깔끔한 대본으로 만들어 서랍에 넣어둘 때까지, 프로젝트 앞으로 나간다.


다음시간엔 고백의 설정에 대해 말해보도록 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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