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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기장/2003

사랑을 아직도 난




타이틀로는 채택되지 않았지만, 명반 'DOC blues'에 실린 이 곡은 가히 정재용 음악사의 걸작이라

칭할 만할 것이다. 작사-작곡이 정재용임을 알았을 때의 놀람에 비할 만한 것은 '가솔린'의

YG정도일까.



계절은, 더 자세히 말하고자 한다면 시간은, 똑같이 흐르지 않는다. 이해하지도 못 하는 과학지식

을 늘어 놓지 않더라도 시간이 상대적으로 흐른다는 건 나이를 먹어가는 인간이라면 누구나가 아는

사실이다. 어느 해라도, 어느 새인가 정신 차려 보니 그 다음 계절에 들어와 있더라라는 건 기실

주변 환경에의 무관심에 기인한 경우가 대부분이다. 어느 하루, 어느 저녁을 점으로 삼아 빙글

돌아 세상은 어제와는 전혀 다른 싸이클로 돌기 시작하는 것인데.


그 계절 중에서도, 특히 나는 가을이 오는 것에 민감하다. 지겹게도 들어대는 '가을은 남자의 계절'.

그 '남자'중에서도, 나는 내가 아는 사람중에서 가장 심하게 가을을 앓는 편에 속한다. (2001년의

가을은 온통 파이란으로 눈물졌었더랬다.)


이번주의 어제와 그제로, 계절은 이미 가을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 그 정도야 겨울에는 비할 바

못 되지만, 집 안에 들어 와 있어도 몸과 마음이 붕 떠 있는 여름과 달리 그제의 저녁에 나는

드디어 집 안에 앉아 있음으로 느껴지는 '안온함'을 나도 모르게 만났다.


그런 가을의 밤. 과외를 끝내고 집으로 돌아오는 길, 공연준비때문에 무던히도 듣고 있는 클래식이

신물 나 무심코 틀어 버린 곡이 저 '사랑을 아직도 난'. 이번 여름에도 뻔히 듣고 살았을 곡일텐데.

찬 바람과 함께 들은 것이. 공원의 아릿한 조명 아래에서 들은 것이. 차가운 흙냄새를 맡으며 들은

것이, 이리도 여름과 가을을 가르는가.


아무리 공감가는 가사라 할지라도, 그 가사를 그대로 일기에 옮겨쓰고 있는 것은 어쩐지 처량맞아

보인다. 그렇지만 깊이 공감하고 슬펐던 것은 부인할 수 없다.


나는 지나간 사람을 떠올리는 자신에 익숙하지 않다. 짜증을 내면서도 그 또한 나의 모습이라 어

쩔 수 없는 것까지 모두 유행가 가사같아 마음에 들지 않는다. 내 마음 나도 몰라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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