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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기장/2009

노무현

숙제가 산더미 같은 마당에 하루를 꼬박 쉬었는데도, 자고 일어나 다시 연구실로 와 뉴스를 보니 가

슴 한복판 께가 꼭 죄이는 느낌이 드는 것은 어찌할 도리가 없다. '눈으로 보고 있는 것을 믿을 수

없다'는 표현은 정말로 흔하게 쓰는 것이지만, 그의 죽음만큼 눈 앞에서 글자가 조합되어 문장이 된

다는 매커니즘을 낯설게 하는 기사는 없었다. 아직도, 진심으로, 믿고 싶지 않다.


봉화마을에서는 현 대통령과 전직 대통령들이 보낸 화환이 내팽겨쳐졌다고 한다. 이회창 자유선진

당 대표와 한승수 국무총리는 조문객들에게 저지당해 끝내 장례식장에 못 들어갔다고도 한다. 서울

의 덕수궁 앞에 노사모도 민주당 당원도 아닌 사람들에 의해 분향소가 세워졌는데, 경찰은 불법집회

를 사전에 예방하기 위해 이곳으로의 접근을 막고 있다고 한다. 혹시나, 하고 찾아 봤더니 역시 서울

시청 앞 광장은 진즉에 닭장차로 둘러싸여 진입이 금지되어 있다고도 한다. 기민하다.


수많은 정보와 생각들이 오고간다. 어떤 글은 아무도 알 수 없는, 그와의 회한 어린 개인적 추억에 머

무는가 하면, 어떤 글은 벌써 슬픔을 딛고 진보 대연맹을 외치기도 하고, 어떤 글은 현 대통령의 심

장 가운데에 칼을 몇 번이나 찌르고 있기도 했다. 나 또한 그 가운데의 어디엔가 자리를 잡고 붓을

놀리고 있어야 했을텐데, 어제 오고간 몇 개의 통화와 문자들을 생각하다가 한숨을 한 번 쉬고 나

니, 다시 지금을 믿을 수 없게 되어 버렸다.


정훈이 형은 며칠 쉬면 괜찮아질 거라고. 애리 누나는 애써 웃는 듯 했고. 상석이 형은 슬프다고. 선

기 형님은 자신도 울었다고. 했다. 아무도 없는 토요일 오후의 외솔관에서 마주친 현경이 형은, 평소

를 생각해 보면 그 자리에서 한참 수다를 나누어야 함에도, 울음을 참느라 입술을 삐쭉거리고 있는

나를 보다가 고개를 돌리고 천천히 가 버렸다. 현규 형과는 근일의 술자리를 약속하고. 영전이 형은

새 블로그의 주소만을 문자로 남겼다.


정말로 며칠쯤 지나면, 무슨 글을 써야 할지 확실히 알 수 있게 될까.


오늘 밤에는 담배 한 갑을 피우고 잘 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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