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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기장/2004

나오는 길






절에서 도로까지 나오는 중간에는 교실이 대여섯개정도 되는 일층짜리 학교건물이 있었는데, 아무

래도 폐교같았다. 그 연원을 적은 비석을 보니 신흥사 주지께서 지역 유지들의 후원을 받아 건립한

학교라고 되어 있었다. 먼지가 잔뜩 쌓인 교실이나 운동장 가득한 공사장비들이 어쩐지 쓸쓸한

느낌을 자아내었다. 그 중에 가장 쓸쓸한 느낌을 주었던 것은 사람이 지나가거나 말거나 혼자 서

있는 이승복 어린이. 언젠가 통일이 되면 다시 녹여져서 나사가 되든지 철근이 되든지 하겠지.

내가 지나가고 나면 언제 또 사람이 올지 모를 이 곳에 햇살이 나리는 낮이고 보름달이 뜬 밤이고

혼자 서 있을 것이라 생각하니 여행의 마지막에 마음이 무척이나 쓸쓸해졌다.


도로로 나온 뒤에 계산을 해 보니 버스시간이 맞지 않았다. 삼척시내로 다시 나가는 버스를 기다

리다가는 동서울행 마지막 버스를 놓치게 되어 있었던 것이다. 삼척시내에서 신흥사로 오는 길에

버스 창밖으로 보였던 시퍼런 바다앞에서 하루 더 묵고 싶은 마음도 있었지만 동행한 정인이 난처해

하여서 어떻게든 방법을 찾아내어야 했다. 결국엔 지나가는 차를 잡아서 택시가 다닐법한 곳까지만

이라도 데려다 달라고 해야겠다고 생각하고 길가에 주저앉았다.


신흥사입구서부터 세속이라 하였지만 이 도로도 강원도의 도로답게 첩첩산중의 이차선이라 차를

기다리는 시간도 한참 걸렸다. 결국 마음씨 좋은 한 일가가 차에 태워 주었다. 운전하는 아저씨는

동해가 삼척보다 서울에 가깝다며 우리를 동해까지 태워다 주겠다고 하였다. 가는 길에 바다를 다

시 보고, 동해시내도 구경하고 그 분들은 따로이 갈 곳이 있다며 기차역인 동해역에 내려 주었다.

여행을 떠날 때에 낭만없이 버스를 탔었기에 돌아갈 때에는 기차를 한번, 이라고 생각했지만 기차는

비싼데다가 시간이 너무나 오래 걸려서 탈 수 없었다. 결국 버스를 한차례 더 타고 동해 시외버스

터미널을 찾았다. 평소같았으면 새로운 장소에 가는 버스편 찾기가 귀찮아 그냥 택시 타고 말텐데,

확실히 여행은 사람의 마인드를 바꾸어 놓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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