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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기장/2004

저녁나절에 가벼이 마신 소주 두어잔에 대학로부터 집으로 오는 지하철 안에서 정신 못 차리고 졸

다가 꿈을 꾸었다.


지금까지의 '순간'들 중 가장 행복했던 때가 그대로 꿈에 나와주었다. 살아있길 잘했다, 라고 절

절히 느꼈던 그때. 아아, 지금 이 순간 나는 평생의 운을 다 가져다 썼구나, 라고 느꼈던 그때.

다시는 돌아갈 수 없고, 시간이 지날수록 점점 잊혀져 이제는 남의 이야기처럼 기억하고 있을 뿐

이었는데, 이렇게 선물처럼 나타나다니.


꿈은 깨고, 나는 열아홉의 교복소년에서 스물네살의 나팔바지청년이 되어 있었다.


그러나 팔랑, 걸음은 무겁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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