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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기장/2003

공연 첫날 아침, 최연출.

전날밤까지 음악을 고르느라 뻘개진 눈.

하나밖에 없는 이어폰이 고집센 녀석이라 쑤셔 넣을 때마다 화끈거리는 귀.

빨아놓은 옷이 없어 꺼내 든 지난 공연의 무대의상.

무대의상엔 주머니가 없고 받을 전화는 많아 허리춤에 꽂아둔 전화기.

추석연휴내 오매불망 그리던 관리실 아저씨는 전구가 없다 하시고.


이 연극이 나만의 것이라면 진실로 도망치고 싶다. 나의 것 외에 쌓인 다른 분들의 노고가 있을

것이라 거기에 누가 될까 더 이상은 불평하지 못 하고.


남들은 따사로운 햇살을 맞으며 주말 내 잘 빨아둔 멋쟁이 가을옷을 입고 옆사람과 깔깔 대화를

나누며 잘도 등교하는데 나는 왜 수업도 들어가지 못 하고. 그냥 만났더라면 사랑했을 사람들에게

화를 내고. 신경질을 내고. 힘들게 하고.


아, 대지형이 전화해서 왜 안 오냐고 화를 냈다. 열한시로 불렀는데 열시까지인줄 알았다고. 빨리

가봐야지. 멋지게 이 아침의 우울함을 정리할 시간도 없구나. 가자 최연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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