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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기장/2017

고양이

반 년 전에 썼던 일기와 같이, 중곡동에 은거하는 일상에 큰 변화도 없거니와 영글은 생각들은 운영하는 팟캐스트에서 대본으로 말로 충분히 풀어내고 있어서, 일기에 딱히 쓸 것이 없다. 작년인 2016년의 여름에 한 번, 최근인 2017년 1월에 한 번 해서 두 번이나 교토에 다녀온 것은 개별의 일기로 쓸 것이 아니라 잘 갈무리해 하나의 컨텐츠로 묶어내고 싶은 마음이 크다.

 

와중 달라진 것이 있다면 고양이를 키우게 된 것을 꼽을 수 있겠다.

 

넘의 집 전세 얹혀 살고 있는 처지에 활동력 좋고 밤낮으로 짖는 개는 어차피 키울 수가 없었다. 그러한 현실적인 이유 말고도 고시원 쪽방 생활을 할 때부터 개보다는 고양이를 한 마리 키우고 싶다는 개인적인 취향을 가져오던 차였다.

 

변곡점을 만난 것은 팟캐스트의 음악 감독을 맡고 있는 '오래된 기타' 선생님의 작업실에서였다. 집 근처이기도 하고 음악가의 작업실이라니 신기하기도 하고 또 출강하는 고등학교의 바로 앞에 있어 동선이 좋기도 하여 기왕에도 자주 들락날락하던 곳이었다.

 

이전에도 선생님의 작업실에는 고양이나 개가 한 마리씩 있는 경우가 있었다. 선생님의 여자친구가 고양이 구조 활동을 활발하게 하는 분이고 선생님도 그에 영향을 받아 동네에서 발생하는 고양이 구조에 열심히 참가해 왔기 때문이다. 그렇게 구조한 고양이를 작업실에서 1-2주일 간 임시 보호하는 경우가 여러 차례 있었다. 다만 이전에는 막 구조된 고양이들답게 철창 안에 갇혀서도 무척이나 날카로왔고, 또 대부분 눈에 익은 코리안 숏헤어 종이라, 막연히 품어오던 고양이 양육의 계획에는 별다른 영감을 주지 못했다.

 

그런데 그 날은 작업실의 문을 열고 들어가자마자 바닥을 자유롭게 돌아댕기고 있던 붕실붕실한 털뭉치 두 마리가 내 발치로 다가와 빙빙 휘감고 돌았다. 만화에서나 보던 광경으로, 나는 처음 보는 고양이가 나뿐 아니라 어느 누구에게도 그런 식으로 친밀감과 호기심을 표현하는 것을 본 적이 없다. 들어올려 품에 안아보니 손바닥 하나 반 만한 새끼 고양이가 내 가슴에 착 안겨 고롱고롱하였다. 꼬리털뭉치가 제 몸만한 노르웨이숲 고양이였다.

 

사연은 기구했다. 세가 들어오지 않는 빈 집에, 거기에 살지 않는 주인이 어미와 새끼 세 마리를 방치해 놓고는 문을 잠가 버렸다는 것이다. 창문 사이로 들려오는 낑낑 소리에 동네의 '캣맘'들이 가서야 상황을 알고는 먹이를 좀 준 모양이다. 캣맘들은 그것만으로는 부족하다고 생각했는지 동네에서 구조로 이름난 오래된 기타 선생님을 불렀고, 선생님은 주인과 협상하여 새끼 두 마리 남매를 데려왔다고 했다.

 

지금까지는 치료와 임시 보호를 하다가 새 주인을 찾아주곤 하던 선생님은, 마침내 스스로 고양이를 키우고 싶은 마음도 들었고, 또 두 고양이가 워낙 예쁘기도 해서 그대로 입양을 결정했다는 것이다. 아닌게 아니라, 키운지 몇 달이 지나 내가 키우는 내 고양이에 정이 든 지금에도, 직접 본 고양이 중 가장 예쁜 고양이는 그 집 고양이들이다. 본 지 몇 분 만에 당장 지금부터 한 마리를 얻어다 키우고 싶다고 생각했지만 남매를 사이 좋게 행복하게 키우고 싶다는 선생님의 말에 포기할 수밖에 없었다. 그 서운한 표정이 마음에 걸렸는지 선생님은 얼마 뒤 구조한 고양이를 대뜸 우리 집까지 데려다 주었다. 사료와 모래 등의 기초지식을 정신 없이 배우고 난 뒤 선생님은 돌아가고, 세 살의 터키쉬 앙고라 흰둥이와 나만 방에서 서로를 노려보고 앉아 있게 됐다.

 

터키쉬 앙고라는 온 몸이 흰 털로 뒤덮인 '품종 있는' 고양이이다. 사자갈기 같은 것이 달린 장모종이 있고, 몸의 모양이 거의 그대로 보이는 짧은 털의 단모종이 있는데 흰둥이는 단모종이다. 접종과 중성화 수술이 되어 있고 귀 속이 깨끗한 것으로 보아 버려졌든지 집을 나왔든지 아무튼 최근의 일일 것이라 했다.

 

나는 당혹스러웠다. 무엇보다도 너무 컸다. 선생님네의 노르웨이 숲 고양이들은 털이 붕실붕실하여도 워낙에 새끼들이라 작은 데다가 눈망울이 동그래서 귀여운 맛이 있었다. 그런데 몇 시간 전에는 상상도 못 했던 내 방의 고양이는 다 큰 것이라 너무 컸고 무엇보다 보는 내가 흠칫할 정도로 사납게 생긴 눈을 갖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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