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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기장/2007

고양이



    <뻔뻔한 얼굴. 그림실력이 부족해서 그 표독스런 표정을 표현하지 못 하는 것이 안타깝다.>



이모네 집에는 고양이가 한 마리 있다. 이모네 집 식구들이 대범하게 '양이'라고 부르는 이 고양이

외에도 실은 한마리가 더 있었는데 비교적 어린 나이에 가출해 버렸다. (따져 보면 두마리 다 밖에서

기어 들어 왔으니 가출했다는 말보다는 며칠 신세지고 제 갈 길을 갔다는 표현이 더 어울릴지도 모

르겠다.) 잠시 묵고 간 고양이는 노란 색이었는데, 사람 손길 타는 것을 좋아해서 시종일관 근처에

와서 비벼대거나 엉덩이를 붙이고 자는 모습이 고양이를 싫어하는 내게도 정감을 주기 충분했다.

한편 남아있는 녀석은 얼룩인데 근처에 안 오는 것은 물론 이따금 친해져 보자고 손을 내밀어 봐도

사납게 깨물거나 할퀴려 드는 탓에 나로서도 대부분의 고양이에게 하듯 안 보이는 방향에서 물건을

던져 맞추거나 고양이는 이래야 튼튼해진다며 높은 곳에서 집어 던지게 되는 것이다. 입밖으로 내

기는 곤란한 말이지만, 나가려면 저 놈이 나갔어야 했는데, 하며 나는 중얼거린다.

그런 양이가 그나마 친한 척 하는 때가 있는데, 당연하겠지만, 사람이 밥 먹을 때이다. 아버지를 닮

아 동물이 밥상 근처에서 어슬렁거리는 꼴을 못 보는 나는 보는 족족 대가리를 갈기거나 목덜미를 잡

아 집어 던지는데도 어느새 정신 차려보면 근처에 와 있는 것이다. 엉덩이를 내 다리에 슬쩍 대 놓고

자기는 아무런 의도 없이 그저 우리 평소의 친분을 생각해서 인사치레 삼아 왔다는 듯한 얼굴로 먼

쪽을 응시하며 내 쪽은 한번도 쳐다보지 않는다. 이모네 식구들은 그 모습이 자못 재미있는 모양이

지만 나는 우리 사이에 뭘 이러느냐며 넌지시 뇌물을 요구하는 노회한 사업가가 생각나기도 하고 틈

만 나면 내 푼돈을 노리던 인도 사기꾼들도 생각나고 하여 불쾌해진다. 그걸 놀리느라고 난 네가 왜

이러는지 모르겠다는 듯한 얼굴로 내 밥을 천천히 다 먹은 뒤 유유히 일어서는 것이 하나의 재미였

는데.

오늘은 밥을 두어술 남겼을 때쯤 고양이가 엉덩이를 슬쩍 떼더니 내 시선의 정면으로 슬금슬금 걸어

갔다. 워낙 천천히 가는 것이라 집중을 하지 않을 수가 없었는데, 내 시선을 한껏 빨아들인 고양이는

있는대로 몸을 뻗으며 기지개를 펴더니 그 자세 그대로 내 쪽을 한번 흘끔 쳐다 보고 다시 일어나 가

버렸다. 나는 속으로 '당했다'라고 절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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