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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기장/2009

8월 17일 월요일






석양을 보면서 학교로 나오는 길에 함께 가는 할머니와 손자를 보았다. 꼬마는 킥보드를 타고 있었는

데, 얼굴이 새빨개지도록 땅바닥을 힘껏 차며 앞으로 나가고 있었고, 할머니는 그 뒤에서 아이구, 잘

한다, 아이구, 잘한다를 연신 외쳐주고 있었다. 오르막에서 킥보드를 운전한다는 것은, 아이에게는

엄청나게 힘든 일이고, 엄청나게 위대한 성취이며, 스스로 생각하기에도 큰 칭찬을 받아 마땅한

일이었을 것이다. 좋겠다, 나는, 내 친구들은, 이렇게 열심히 살아가도 아무도 칭찬 안 해 주는데.


개강을 앞두고 팽개쳐 놓았던 일거리들을 붙잡으면서 수천 곡의 mp3를 플레이어에 걸어 놓았다.

연구실에 아무도 없었던 덕에 외국 노래가 나올 때에는 가사를 보며 연습하기도 하고, 왕년의 댄스

음악이 나올 때에는 2002 클럽 최신 웨이브를 새삼 시연하기도 하다가, 시계를 보고는 파티를 할

시간이 아니다 싶어 평소에는 잘 듣지 않는 '연주곡' 폴더만을 통째로 돌렸다. 피아노 소리가 열댓

곡쯤 돌아가자 원하던대로 마음이 차분해지고 오직 일거리만이 눈에 들어오는 상태가 되었는데, 갑

자기 귀로 선율이 배어왔다. 나는 가슴이, 정말로, 쿵했다. 홀로 떠났던 인도 여행의 막바지에,외롭

고 힘들지만, 덕분에 껍질이 벗겨져 있던 탓에 신기한 것을 보면 소리 지르고 감동적인 것을 보면

눈물을 흘리던 때에, 유난히 쓸쓸해서 어둠 속의 현관등 하나조차 고맙던 그 때, 잊지 말아야지, 하

고 사진을 찍어 둔 다즐링에서의 한 순간이, 팟 하고 기억났기 때문이다. 기억이 난 것은, 왜냐하면,

방금 귓가로 들린 그 노래가, 다즐링의 찻집에서 괴상한 인도 노래 사이에 이따금 섞여 나오며 눈을

감고 쉬게 만들던 바로 그 노래였기 때문이다. 허겁지겁 사진 폴더를 뒤져보니, 그 때 그 사진이 있

었다. 남들 눈에야 노출 제대로 못 잡은 엉망 사진 한 장이겠지만, 나는 그 때의 그 마음이 되살아나

는 것 같아 눈물이 조금 났다. 그리고 어쩐지, 칭찬받은 것 같은 기분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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