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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기장/2006

8월 10일 (D-47)

다시, 내무반이 없어진다. 국민들의 관심이 쏠린 동안만 일단 조용히 있자는 공무원의 촉각이 이제

슬슬 잠잠해지는 냄새를 맡은 것. 16일부터 나는 공항 어딘가의 쪽방에서 잠을 청하게 된다.


후임 여덟중 일곱이 날아갔다. 3개 중대에서 각각 두세명씩 파견을 받아 교통계에서 함께 근무하고

있던 내 후임들이 그들의 부대가 다른 곳으로 이동하게 됨에 따라 원대복귀된 것이다. 전경은 보통

시설경비가 본업이지만, 의경이 줄어들면서 부득이하게 시위진압에도 동원되게 되었는데, 하필 내

후임들이 있는 세개 부대 중 두개가 상설시위진압부대로 선택되었다.

파견근무를 하고 있는 대원들이 09일 09시부로 원대복귀된다는 소식은 08일 19시에야 전해졌다.

그나마 전해진 것도 아니고, 내가 근무를 마치고 부대로 돌아 오는 길에 잠시 들른 경비계에서 지나

가는 직원에게 전경 애들이 원대복귀된다는 소문이 있던데 어떻게 되었냐고 물어보았다가 들은

것이다.

아무튼 폭염의 아스팔트 위에서 또 하루 군생활을 끝내고 저녁을 먹으러 가려던 아이들은 갑작스레

모여 그간 차던 백모와 벨트, 그리고 식비를 모두 반납하고 얼떨떨한 얼굴을 한 채 자신들의 부대로

끌려갔다. 덕분에 나도 하루 멀쩡히 근무를 서고 부대로 돌아오려던 참에 사람이 없어 야간근무를

서게 된 것이다.


한때 24명이 근무하던 교통계에 이제는 4명. 그나마도 둘은 다음 주 제대다. 근무같지도 않은 근무

를 설렁설렁 서고 들어왔는데 전화가 와서 원대복귀된 여덟명을 반으로 갈라 격일제로 네명씩 보내

주기로 했단다. 기뻐할 수 만도 없는 것이, 빨리도 빨아 놓았던 근무복과 장비를 하나하나 인수인계

증 다시 받고 돌려 주어야 하고, 받았던 식비를 근무하는 날만큼 계산하여 돌려 주고, 격일로 근무일

지를 짜고. 대부분의 읽는 사람이 무슨 내용인지 정확히 모를 것이고, 나도 너무나 꼬여 생각하기

조차 싫은 이놈의 군생활 설명하고 싶지도 않지만, 복장이 터질 것 같아 어쨌든 갈기고 있는 것이

다. 짬이란 말은 별로 안 좋아하지만, 아니 도대체, 내가 이럴 짬이냐고. 사회 나가서 뭘 할지만

생각해도 잠이 안 오는 판인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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