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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기장/2009

7월 16일. 신촌. 후배들과






석호 아저씨, 신각이, 세로, 현수, 규용이, 원영이, 헌성이, 그리고 안방마님 박지원 선생과 일군의

09들과 함께 신촌에서 마셨다. 작으려면 아예 작든가, 크려면 스무 명 넘어가는 술자리가 즐겁다.


중간에 왕림해 주신 30대의 석호 아저씨는 주름이 하나도 안 늘었다며 과찬을 해 주셨지만, 그럴리

가. 동생도 이제 내일 모레면 서른인데. 연극부의 누나들이 분장을 해 주며 사내애가 모공 하나 없다

고 욕설을 퍼붓던 것은 어느덧 십여년 전의 일이다. 1차와 2차 술집의 조명이 어두웠던 탓도 있고,

같이 있었던 후배들이 대부분 과히 노숙한 외양이기도 했기 때문일 것이다. 나는 오히려 석호 아저

씨의 고운 웃음 주름살이 부럽다.


자칭 백수 중인 신각이는, 연기를 업으로 삼고 싶다는 후배와 상담을 해 주며 못내 귀찮아 귀찮아

하다가, 마침내 어느 정도까지는 책임을 져 주려는 듯 작심하고 조언을 열대 스콜처럼 퍼부어 주었

다. 그 말들 중 반만 받아들였더라도, 어제의 술자리에서 가장 큰 수확을 거둔 것은 한가인을 닮은

그 후배일 것이다. 작은 술자리인 줄 알고 나왔다가 숙제만 지고 간 신각이에겐 미안하게 됐지만,

그 후배가 쑥쑥 자라 나중에 우리를 도와줄지 누가 알겠는가.


세로는 9월부터 게이오의 대학원에 다닌다고 한다. 전공을 설명해 주었는데, 알아듣기가 쉽지 않

았다. 재주 많고 겸손한 친구이니 언젠가 크게 될 거라고 생각은 했었지만, 이렇게까지 국제적이고

전문적으로 자라날 줄은 몰랐다. 나가기 전에 엔이 좀 떨어져야 할텐데.


현수는 09학번과 연애를 시작한지 보름도 안 되었다고 한다. 재수한 04학번이니 신입생과는 여섯 살

차이일텐데, 그 용맹한 성취에 다만 눈물을 흘리며 탄복할 뿐이다.


내게는 영원한 소년들인 06학번도, 이제는 무작정 꼬마 대접을 할 수는 없다. 어떤 고민은 내 깜냥으

로 짐작조차 하기 어려운 것들도 있다. 알아서, 잘 해결해 봐라. 복학생의 길은 하이에나의 그것과 같

이 외로운 것이란다.


헌성이는 친구와 함께 유럽으로 4주동안 배낭여행을 떠난다고 했다. 이왕에 갈 거면 혼자 가는 것이

좋겠지만, 여하튼 군대 가기 전에 여기저기 다녀보는 건 좋은 일이다. 많이 고생하고, 많이 상처받고,

다 치유하고 돌아오기 바란다.


해가 한 번 가면 후배들은 수십 명씩 늘어난다. 스물댓살 때까지야, 성별이 어떻든 나이가 몇 살이든

후배라면 피를 빼서라도 먹이고 싶은 마음 간절했지마는, 이제는 내가 아끼는 동생이 제 새끼라며

데리고 오는 후배들이 아니면 이름조차 외우기 쉽지 않다. 게다가 입학한지 반 년이 지나서야  큰 술

자리에서 만나는 신입생들이라면 존댓말로 심상한 이야기나 몇 번 하고 지나가는 것이 상사인데,

대화를 나누는 것이 아주 즐거운 후배들을 댓 명이나 만났다. 이것은 오히려 나에게 복이라 해야 좋

을 것이다. 뚱얼과 빨갱이, 점촌댁, 가인이, 사장님. 이름은 아직도 잘 모르겠다. 미안하다. 그래도

반갑다. 자주 연락하렴.


그저 참가인원만 적어 두어도 충분하지만, 굳이 쓸데없는 말이라도 한마디 적어두고 싶은, 즐거운 술

자리였다. 한 주 잘 놀았다. 내일까지 놀고, 이제 논문 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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