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遊記/4대강 자전거길

5. 4대강 새재도보길 - 이화령 도보길

 

 

마애불을 보고 기분이 좋아진 나는 제법 콧노래까지 불러가며 길을 달리고 있었다. 그런데 한 20여 미터나 달렸

 

을까. 엉덩이 밑으로 이상한 느낌이 들기 시작했다. 달각달각. 달각달각. 새재길은 길이 안 좋네, 생각하며 계속

 

달렸는데 위아래로 흔들리는 진폭과 바퀴 쪽에서 나는 소리의 크기가 점차 무시할 수 없는 정도가 되기 시작했

 

다. 무슨 일이지, 하고 바퀴 쪽을 바라본 나는 가슴이 철렁하고 내려앉았다.

 

 

 

 

 

 

 

 

언젠가는 반드시 찾아올 것을 알면서도 영영 안 찾아올 것처럼 생각하고 살던 펑크가 찾아온 것이다. 하기사 4

 

대강 자전거길의 다른 길들도 도심으로부터 머얼리 떨어져 있는 것은 마찬가지이지마는, 아무튼 인적 하나 없

 

는 산길에서, 그것도 이화령을 눈앞에 두고 펑크가 나다니. 자전거 선배님들에게 혼구녕이 날 일이지만, 나는 자

 

전거 펑크 패치와 소형 공구를 사긴 했지만 설마 하는 마음 반 귀찮은 마음 반에 안 들고 갔다.

 

 

 

앞으로 가려면 이화령을 넘어야 하고 뒤로 돌아가려면 소조령을 넘어야 한다. 첫 페달 밟은지 10km도 안 됐는

 

데. 이 거면 서울에서 출발할 때 터지든지. 이러구러 속터지는 와중에 아무튼 거기서 밤을 샐 것도 아니라서

 

나는 내려서 자전거를 끌고 가기 시작했다.

 

 

 

 

 

 

 

 

그렇지 않아도 꿀꿀한데 에이씨 길 옆엔 을씨년스럽게 웬 폐주유소가, 하다가. 아니지. 저 주유소 말아먹은 형이

 

나보다 백 배는 더 꿀꿀했겠지. 괜한 주유소 탓하지 말아야지. 따위의 생각을 하며 여전히 대책없이 자전거를 질

 

질 끌고 간다.

 

 

 

 

 

 

 

 

얼마간 더 가자 행촌교차로의 표지판이 나왔다. 연풍면의 작은 로터리인 행촌교차로는 그러나 자전거 라이더들

 

에게는 매우 친숙하고 또 중요한 이름이다. 새재자전거길에서 오천자전거길이 갈라져나가는 기점이기 때문이

 

다. 행촌교차로에 서있는 '행촌교차로' 인증센터는 오천자전거길의 출발점이다. 오천자전거길은 여기에서 시작

 

해 청주시, 세종시를 거쳐 금강종주자전거길과 이어진다.

 

 

 

 

 

 

 

 

차들이 뱅글뱅글 돌아서 각자의 길로 나가는 행촌교차로. 그 가운데 무인 인증센터가 오도카니 서있다.

 

 

 

나는 일단 무인인증센터에서 행촌 교차로의 도장을 찍고, 난처하디 난처한 얼굴로 허리에 손을 얹은 채 자전거

 

옆에 섰다. 인적이라고는 찰옥수수를 파는 노부부 내외 뿐이었고 이따금 지나가는 고급 세단들은 도리어 나에

 

게 길을 묻는 뜨내기들이었다.

 

 

 

주위를 둘러보니 마침 길 건너편에 제법 큰 타이어 공장이 있었다. 물론 자동차 타이어 공장이었지만, 고등학교

 

수학 선생님이라면 중학교 수학도 대번에 가르치듯이, 혹 자전거 타이어라도 가벼운 구멍 쯤은 때워주지 않을까

 

하는 마음에 공장 쪽으로 가봤다. 트럭을 만지고 있던 아저씨들은 내가 이만저만한 사정을 늘어놓자 서로 멀뚱

 

멀뚱 쳐다보다가, 문경에 가봐, 하는 말을 건네고는 다시 일로 돌아가버렸다. 문경에 가려다가 이렇게 된 건데

 

누가 그걸 몰라서 이러고 있나. 미간을 찌푸리고 서있자니 그 중 한 명의 아저씨가 이따금 1톤 트럭이 지나가니

 

그걸 잡아타고 문경으로 가보라는 충고를 해주었다. 비교적 현실적인 충고라 정신이 좀 돌아왔다.

 

 

 

다시 행촌교차로로 돌아가 서있는데, 마음 속에서 예의 '울컥'하는 기분이 들었다. 트럭이 언제 올지도 모르는

 

거고, 와도 태워줄지도 모르는 거고. 타고 가다가 이화령에서 잠깐 세워달래서 도장을 찍고 갈 수도 없는 노릇

 

이고. 산중이긴 하지만 아직 때는 저녁보다 점심에 가깝고 전등도 풀로 채워 왔으니. 그리고 이화령 이화령 하

 

는데 지가 높아봐야 고개지. 더 높으면 산 됐겠지 고개 됐겠어? 몰라, 간다.

 

 

 

 

 

 

 

 

그래서 시작했습니다. 이화령 full 끌바. 행촌교차로부터 시작하는 그야말로 풀세트 끌바올시다. 저도 근래에 배

 

운 말이라 모르는 분들께 설명 드리자면, 오르막을 만나서 자전거를 끌고 올라가는 걸 '끌바'라고 한다는군요.

 

 

 

 

 

 

 

 

소조령을 전기 자전거로 편하게 넘어 일반 자전거 라이더 분들께 죄송했던 마음, 여기에 내려놓고 간다. 내 자전

 

거는 차체만 26kg.

 

 

 

 

 

 

 

 

총 5km 중 4km 쯤 갔을 때 얼굴은 이미 쌍욕 표정. 어차피 끌바인데 헬멧도 벗어던졌다.

 

 

 

 

 

 

 

 

구비구비 커브길을 돌고돌아 올라가면 다시 또 커브길이 구비구비. 여기에서라도 펑크 패치를 좀 빌려서 어떻게

 

든 고쳐 볼까 싶었지만. 뒤에서 같이 올라가는 사람은 별로 없고 위에서 내려오는 사람들이 훨씬 많은데, 그렇지

 

않아도 길고긴 내리막에 엄청난 스피드로 달려오는데다 길은 전부 커브길이라 불러서 세우기가 어려웠다. 섣불

 

리 브레이크 잡다가 큰일이 날까봐. 

 

 

 

 

 

 

 

 

다음 날도 낮에 오랫동안 라이딩을 하긴 했지만 얼굴은 이때 집중적으로 탄 것 같다. 하루이틀 간은 발그레해서

 

어딘가 귀여운 것 같기도 하던 콧잔등은 이제 트리케라톱스의 등딱지처럼 쩍쩍 갈라졌다. 뭐든지 당해 보고서야

 

고치기 리스트 하나 더 추가. 덥고 답답해도 마스크를 꼭 착용합시다.

 

 

 

 

 

 

 

 

 

올라가다가 여유를 찾아보겠답시고 찍어본 한 컷이지만 사실 이때도 파김치 중의 파김치라서 느낌이 전혀 없었

 

다. 그저 여기까지 올라와서 사진 몇 장 안 찍어두면 분명히 나중에 일기 쓸 때 승질이 날 것 같아 찍어두었을 뿐

 

이다.

 

 

 

 

 

 

 

 

군대에 다녀와서 생긴 몇 안 되는 장점 중 하나. 총량이 분명히 정해져 있는 일의 경우 꾸준히 하면 분명히 끝

 

은 난다는 걸 몸에 익히게 된 것. 5km중에 3km가 남았으니 반도 못 온 것이지만 그래도 수치로 가늠이 되니 못

 

할 일은 아니라는 생각이 든다. 위쪽에서 라이더들이 총알처럼 달려오는 탓에 고개는 숙이지 못하고 빳빳이 든

 

채로 다시 올라간다.

 

 

 

 

 

 

 

 

난간에는 일정한 격차를 두고 이렇게 야생동물이 통행하는 구멍이 나 있다. 상냥한 행정이다. 구멍에 들고날 때

 

차조심들 해라.

 

 

 

 

 

 

 

 

반. 반이 오면, 끝도 온다.

 

 

 

 

 

 

 

 

자전거로 이화령 길을 오르는 한 무리의 라이더.

 

 

 

 

 

 

 

 

그 중 꽁찌는 내가 지켜보는 동안 앞의 세 명과 큰 거리로 멀어지고 말았다. 차나 자전거가 늦게 갈 때 흔히 농

 

담으로 걷는 게 빠르겠다고들 하는데, 이화령을 오르는 자전거들은 대부분 진짜로 걷는 것보다 약간 빠른 속도

 

였다.

 

 

 

 

 

 

 

 

이화령 1km.

 

 

 

 

 

 

 

이화령 100m. 100m 전방부터는 평지다. 커브를 돌면 그 유명한 이화령 터널과 휴게소가 눈 앞에 펼쳐진다.

 

 

 

오르는 중간에 큰 SUV나 1톤 트럭이 지나가는 일이 있었다. 공손히 부탁하면 그들 중 하나 정도는 태워줬을지도

 

모른다. 어차피 길은 하나이니 문경읍까지 타고 갈 수도 있었을 것이다. 그래도 나는 이런 사람들에게 말해주고

 

싶어서 오르막을 올랐다. 마애불상에서 바퀴가 터진 사람. 행촌교차로에서 체력이 떨어져버린 사람. 이화령 오

 

르막에서 끌바를 해야하는 데 두려움이 앞서는 사람.

 

 

 

나는 장거리 1박2일 라이딩을 떠나며 펑크 패치 하나 안 챙겨간 경솔한 사람이다. 자전거 외에 평소에 특별한 운

 

동을 하지 않고, 타는 자전거는 대부분의 일반 자전거보다 훨씬 무거운 전기 자전거이다. 그런 나도 끌바로 이화

 

령에 올랐다. 오르막이래도 5km는 5km다. 걷다보면 언젠가는 분명히 끝난다. 당신은 분명히 할 수 있다. 이화령

 

에 오르면 체력을 보충할 휴게소가 있고 자전거를 살펴줄 선배 라이더들이 있다. 조금만 더 힘내라. 소조령의 어

 

디에서, 행촌 교차로의 어디에서, 이화령의 중턱에서, 어찌할 바를 몰라 스마트폰이라도 만지작거리고 있을 당

 

신에게 이 응원을 보낸다. 바로 거기에 서 있었던 나에게 보낸다. 다시 핸들을 잡고, 걸어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