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遊記/4대강 자전거길

5. 4대강 새재도보길 - 홈 스윗 홈

 

 

문경시의 외곽으로 들어섰을 때 가장 먼저 보이는 불이 켜진 건물은 문경소방서였다. 나는 조금 기뻤다. 끝내 그

 

거리를 걸어낸 성취감도 있었지만, 마라톤이나 국토종주를 하다가 소방서에 들어가 물 한 잔을 부탁하고 소방대

 

원들의 응원을 받으며 떠나는 오래된 로망을 갖고 있었기 때문이다. 로망은 그대로 실현되었다. 아시안게임 축

 

구를 보고 있던 소방관들과 의무소방 대원들은 불정역에서부터 걸어왔다는 말을 듣고는 물을 떠주네, 바람을 부

 

쳐주네 활발한 수선을 피웠고 문경 시내의 지리를 몇 차례고 거듭 가르쳐주었다. 역시 소방. 멋져.

 

 

 

소방관들이 가르쳐준 핵심정보는 '점촌역을 찾아라'였다. 어느 도시나 시청 인근이 번화하지만 문경시청은 문경

 

외곽에서도 꽤 들어가야 한다. 물론 멀쩡한 자전거라면 금세 가 닿겠지만 밤늦게 문경을 찾는 이라면 조금이라

 

도 거리를 줄이고 싶은 사정이 있을 것이다. 점촌역은 자전거길에서 문경시청보다 훨씬 가깝다. 그리고 인근에

 

저렴한 모텔촌과 유흥가가 있다. 숙박비도 숙박비이지만 늦게까지 여는 유흥가, 이거 중요하다. 서울에만 계속

 

사는 사람들은, 그래도 중국집이랑 닭집은 늦게까지 열겠지, 하고 생각하는 경향이 있다. 하지만 지방의 중소도

 

시로 내려가면 여덟아홉 시만 넘어가도 여는 가게가 없는 곳이 많다. 문경도 외곽은 그랬다. 하지만 소방관들이

 

가르쳐준대로 소방서에서 직진해 나아가자 멀리로 점차 불빛들이 보였다.  

 

 

 

 

 

 

 

 

 

 

밤의 문경. 문경에 들어서면서 휴대폰의 배터리가 다 되어서 꺼졌다. 덕분에 소방서에서의 즐거운 추억도 사진

 

으로 못 남겼는데, 그런 와중에 만난 아카데미 과학사. 어찌나 반가웠든지 짐을 뒤져서 대용량 배터리를 꺼내어

 

휴대폰을 충전해서까지 찍었다. 아직 살아있었구나, 아카데미 과학사! '문경모형'이라는 정겨운 이름의 간판도

 

눈에 띈다.

 

 

 

 

 

 

 

 

그것도 목 좋은 문경중학교 앞에. 너네 복받은 줄 알고 조립 많이 해라. 온라인 게임 백날 해 봐야 추억 안 돼.

 

 

 

아카데미 과학사, 다음날 일어나서 문경을 떠나기 전에 한 번 다시 가봐야지, 생각했는데 까먹고 말았다. 상주로

 

가는 길 위에서야 떠올리고는 무릎을 쳤다.

 

 

 

 

 

 

 

 

오천 원이라도 싼 곳을 찾으려고 돌아다니다가 마침내 찾은 모텔. 내가 간 곳은 '로즈 파크' 모텔이었고 기본료

 

는 삼만 원이었다. 서울처럼 사만 원을 부르는 다른 모텔들보다는 만 원이 쌌지만 싸움과 흥정은 붙이고 보랬다

 

고 사장님께 앵겨보니 오천 원을 더 깎아줬다. 깎은 것이 스스로 장해서, 닭 사먹었다.

 

 

 

이건 갑자기 좀 붕 뜨는 내용이지만, 꼭 쓰고 싶어서 여기에 끼워넣는다. 문경에 들어서서 나는 여러 사람을 붙

 

잡고 질문을 했다. 점촌역의 위치를 물어본 것만 해도 너댓 명이고, 싼 모텔의 위치도 물어보고, 시켜먹을 수 있

 

는 닭집이 있는가도 물어보고, 그런 닭집이 없다고 하여 포장만 해주는 닭집이 있는가도 물어보고, 닭집 근처까

 

지 가서 정확한 위치를 다시 물어보고, 닭집에서 닭 시켜놓고는 옆자리의 사람들에게 문경 시내의 자전거포가

 

있는가도 물어봤다. 그리고 단 한 번의 예외도 없이, 아주 성실한 대답을 들었다. 점촌역의 방향을 가르쳐주고는

 

내가 맞는 길로 가는지 계속해서 지켜보던 수퍼 아줌마, 이 시간에는 배달 닭집이 없다고 대답하고는 '자전거 여

 

행 힘내세요'라고 수줍게 말하던 남중생, 아는 자전거집 주인에게 전화를 걸어 내일 일요일인데 가게 여냐고 물

 

어봐주던 편의점 사장님, 그리고 어느 자전거포가 제일 싸고 좋은지에 대해 갑자기 격론을 벌이던 닭집의 청년

 

들. 시간은 열한 시가 넘었다. 불정역에서 출발한지 네 시간이 지난 시점이었다. 내 땀냄새에 내가 짜증이 날 지

 

경이었고 발바닥은 후끈거리고 있었다. 그런 와중에서도 나는 (내가 만난 소수의) 문경 사람들에게 감탄하지 않

 

을 수 없었다. '촌사람이라고 돌려서 놀리는 거 아녀!'라고 화내지 말길 바란다. 나는 서울 사람들이 잃어버린,

 

하지만 사람이 잃어버려서는 안되는 무언가를, 그날 밤 당신들에게서 보았다고 생각한다.

 

 

 

 

 

 

 

 

무한도전 재방송만 있으면 어딜 가도 우리집 같다. 

 

 

 

 

 

 

 

 

하하하.

 

 

 

 

 

 

 

 

좋아하는 에피소드라서 예전에 그림도 그렸었지.

 

 

 

 

 

 

 

 

푹 자고 일어났다. 자전거 여행의 숨겨진 공신인 전립선 패드. 덕분에 마음놓고 달린다.

 

 

 

 

 

 

 

 

불의의 사고나 뛰어난 조심성으로 문경을 찾는 분을 위한 또 하나의 꿀팁. 점촌역 인근에는 모텔촌과 유흥가도

 

있지만 자전거포도 있다. 여기저기서 안내를 받은 자전거포들은 모두 모텔촌에서 제법 거리가 있는 것에 반해

 

내가 네이버에 직접 찾아본 이 가게는 점촌역 바로 옆에 있었다.

 

 

 

 

 

 

 

 

일요일도 한다. 오성자전거. 사장님인지 사장님의 아드님인지 30대 중반 정도로 보이는 분이 가게를 열고 계셨

 

다. 사정을 이야기하자 만 원에 구멍난 튜브를 갈아주었다. 자전거가 안 굴러가면 꼼짝없이 점촌 터미널에서 버

 

스 타고 서울엘 갈 판이니 튜브 교체 비용은 부르는대로 주어야 하는 것인데, 인터넷으로 알아본 평균 비용보다

 

훨씬 쌌다. 거기에 앞바퀴에 바람도 채워주고, 안장과 물받이도 다시 조여주고, 브레이크의 상태도 다시 봐 주었

 

다. 어제에 이어 나는 문경에 홀딱 반했다.

 

 

 

 

 

 

 

 

오성자전거 옆으로는 터널이 있는데, 저 터널을 통과해 잠시 직진하면 다시 새재자전거길에 합류할 수 있다. 새

 

재자전거길을 달리던 사람도 잠시 들러 편하게 수리하고 다시 돌아갈 수 있는 거리이다.

 

 

 

 

 

 

 

수리를 받고 나니 또 쌩쌩 잘 나간다. 슬슬 애증이 쌓인다.

 

 

 

 

 

 

 

 

요렇게. 터널을 빠져나와서 직진하면 강을 만나게 된다.

 

 

 

 

 

 

 

그리고 나서 본래의 목적지 상주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