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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기장/2006

4. 뜻밖의 만남



                                                       <람 라자 사원 내부>


1. 식당에 가 무심코 자리를 잡는데 옆자리의 세명의 아시안이 나를 보더니 '안녕하세요'라고 인사를

해 왔다! (나는 그들의 외모를 보고 티베탄일 거라고 추측하고 있었다.) 너무나 반가워 합석을 했다.

스물여덟의 형님도, 나이를 알 수 없는 누님도 재미있었지만, 오늘의 백미는 동갑내기 청년!


2. 이 청년과의 만남은 부연설명을 필요로 한다. 그제 아그라에서 만났던, 두 아이를 거느린 누님.

그 누님이 내가 사기당한 이야기를 듣고 자기 얘기를 해 줬더랬다. 델리에서 당하고, 바라나시에서

당하고 인도가 너무 싫어져 네팔로 도망을 간 누님. 거기서 트래킹을 하다가 애들이 너무 힘들어

해서 산장에 자리를 잡고 그만 올라갈까 하고 있는데, 산 위쪽서 내 나이 또래의 청년이 코피를 철철

흘리며 비척비척 내려 오고 있는 것을 발견했단다. 그런 사람은 가만 못 내 버려두는 것이 우리네

인심. 마침 코피를 닦아 주며 보니 한국사람. 그는 델리에서 뎅기열 (세상에, 말로만 듣던 뎅기열!)

에 걸려 사경을 헤매다가 요양하러 네팔로 왔다고 했단다. 다 나은 줄 알았는데 고산을 올라가다 보

니 다시 코피가 나서 내려가는 중이라고 해서, 누님은 자신도 애들 때문에 고민하던 참인데 같이

올라가자고 제안을 하셨고, 그들은 마침내 정상을 정복했는데 그날이 마침 청년의 생일이었다는

감격적인 이야기. 그런데 이야기는 거기에서 끝이 아니고, 누님과 청년이 함께 바라나시로 돌아오는

길에 네팔 국경에서 가이드한테 속고 경찰한테 속아 사막 한가운데에서 Rs1,000을 내지 않으면

아무 데도 데려가 주지 않겠다는 협박을 받았다는 것, 그리고 그 바라나시에서 델리 쪽으로 오는데

기차가 열한시간 연착되었다는 것 등이 줄줄이 이어지는 것이었다. 그 이야기 끝에 누님은 돈 한 번

사기 당한 것은 아무 것도 아니니 남은 시간을 즐겁게 보내다 가라고 따뜻하게 말을 건네 주었던

것인데.


3. 형님과 누님, 동갑내기 청년과 합석하여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다가 건강 이야기가 나왔다. 다들

들었던 사례들을 말하다가 내 차례가 되어 그 누님의 이야기와 뎅기열에 걸린 사람도 있었다는 이야

기를 하자, 형님과 누님은 놀라는 눈치였는데, 이 청년이 씨익 웃더니 저, 그 누님의 아이들이 혹시

큰 애는 남자애, 여자애는 여섯살쯤 된 여자애 아닌가요, 하고 질문을 해 오는 것이었다. 나는 말로

도 못 하고 놀라서 고개를 끄떡끄떡할 뿐이었는데, 그 청년은 발표를 하듯 한 손을 들더니 네,

제가 그 뎅기열입니다, 하고 말했다.


4. 밤이 깊어갈수록 나는 그와 더불어 만취해 버렸고 그는 돈은 아무것도 아니라며 몇번이고 뎅기열

의 증상을 말해 주었다. 고작 맥주 몇 잔이었을 뿐이지만, 피곤했던 하루와 신기한 인연에 취해 나는

지금 몹시 지쳤다. 내일은 카주라호에 꼭 도착해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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