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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기장/2007

3월 25일 (2)

하루 종일 집에 있었다. 수업이 대여섯시에 끝나도 집에 오면 여덟아홉시. 책 읽고 TV 보고 하면

하루가 끝나는 통에 밀렸던 집안일들을 했다. 설겆이나 빨래는, 막상 마음먹고 달려들자면 군에서 하

던 양에 비해 아무 것도 아니라 금세 끝났다.


한 후배가 빌려 준 책을 읽느라 늦게 잔 터였다. 애당초 알람에 상관없이 푹 자려고 시계도 꺼 놓았는

데, 아침나절에 엄마의 병원으로 가는 아빠의 준비소리에 깨 버린 것이다. 하루는 충분히 길었다.


일찍 일어났고, 주말동안 해야 할 두개의 숙제 중 좀 더 부담스러운 것을 금요일에 해 둔 터라 큰

걱정거리도 없었거니와 일도 빨리 끝났는데, 하루 종일 어쩐지 멍한 기분이었다.


방에 누워 천장을 보았다. 제대하고 복학하기까지 쭉 백수였지마는, 대낮에 방의 천장을 보고 있는

것이 마치 십수년만에 있는 일처럼 느껴졌다. 그만큼 실제로는 별로 보지 않는 천장인데, 꿈에서는

꽤나 자주 봤던 기억이 났다. 일년에 서너번은 꼭 꾸는 꿈이다.


언제나 똑같다. 뭔가 좋지 않은 꿈에서 깨어난 나는 천장을 바라보며 호흡을 가다듬다가 바람을 쐬

기 위해 창문을 열러 가는 것이다. 그런데 걸어가는 느낌이 뭔가 이상하다. 젠장, 또 그거군, 하며

창문을 열면 다시 침대 위다. 이 꿈을 몇차례고 반복하는 것이다. 지금이야 이러다 깨겠지, 하고 말

지만 사춘기 무렵에 처음 꾸었을 때에는 십여회가 넘어가자 영원히 이러는 것은 아닌가 하고 죽음에

맞닿은 듯한 공포를 느꼈었다.


그런, 꿈, 같았던 것이다. 누워서, 엎드려서 몇시간이고 책을 본 뒤라 쿡쿡 쑤셔오는 목덜미도 그렇고,

설겆이를 마치고 약간 불은 손끝의 느낌도 그렇고, 여러가지로, 현실이라는 것을 자각하기에 충분한

단서들이 널려 있었음에도 나는 어쩐지 꿈 속에 있다고 느꼈다.


그러다 문득, 인도로 다시 가고 싶다고 생각했다. 고작 한달이나 두달이라도, 만약 그곳에 가 있다면

나는 그 한달이나 두달을 살기 위해 한국에서 일년동안 꿈을 꾸었어야 했다고 해도 분해하지 않을

것이다. 인도가 죽을만큼 그립다는 것이 아니라, 인도에서 언제나 갖고 있었던, '살아 있다는 느낌'

이 그리웠다. 많은 이들이 그리는 평화와 행복만이 있었던 것은 아니다. 연정과 질투, 교만과 사랑

등이 지독히도 세차게 뒤끓고 있었다. 하지만 적어도 그 모든 것이 내 것이며 그 한가운데에 자신이

서 있다는 것에는 의심이 없었다.


고민거리라면 지금의 내 쪽이 압도적으로 더 많이 지고 있다. 마음을 괴롭히는 정도를 생각해 보면

더욱 그렇다. 그러니 자신이 꿈 속에서 떠다니는 이유를 환경 탓으로 돌리기는 어려울 듯 하다.



다음 주 주말이면 4월이다. 지구온난화 탓에 식목일을 앞당기자는 의견도 나오고 있다는데 봄은

올 줄을 모른다. 봄이라도 와라.



봄이라도 와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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