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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기장/2004

3월 18일 목요일

얼마전 시학의 예비학회에, 형욱이형이 학번도 잊은 채로 나와서 반가워하는 한편 서로 민망해하며

인사를 나누었던 적이 있었다. 형은 보라색 남방을 입고 왔는데, 그건 내가 신입생 때에 우리 어울

림조 조장이었던 형을 위해 신입생들이 돈을 모아 산 물건이었다. 4학년, 이 아니고 3학년 휴학생

(요새는 이 호칭에 민감하다. 나는 3학년 휴학생인 것이다.)이 되어, 전 어울림조에서도 그 자취를

찾을 수 없는 최고학번이 되어 아이들의 예비학회까지 따라와 그 남방을 다시 만나다니. 세월이란

빠르지만 무상하지는 않다고 느끼는 한 순간이었다.


어제는 본디 과외가 있는 날이었다. 대구에 다녀와서 일부러 하루를 푹 쉬었다지만 서울까지 나다닐

만한 컨디션은 또 아니었는데, 아침에 문득 온 우리조 조장님의 문자가 마음을 움직여 당연히 가야

지, 당연히 가야지, 하면서 옷을 주워 입고는 서울로 향했다. 어울림조 마지막날이라는데 이야기 좀

할 시간이 있어야 하지 않겠나 싶었는데, 예상외로 후배들이 많이들 집에 가고, 의외의 산소학번

(...지겹다 이제 산소학번)들이 많이 와 그다지 신선한 모임은 아니었다. 원준이는 입학 후 최고의

찬사를 들었고, 인국이 또한 그정도면 예전의 인기에 버금가는 호사를 누렸다 하겠다. (원준이는

이 글에 리플 금지다.)


피자를 먹고, 흑맥주를 마시고, 과일소주를 마시고, 노래방을 갔다가, 다시 맥주를 마시고, 응원을

하고.


그 어느 것 하나 태어나 처음 하는 것은 없었다. 선배님들 말대로 신촌 하늘 아래 새로운 것은 없다더

니, 나는 그것을 어제 절절히 느꼈다. 이젠 신촌의 어느 술집을 가도 추억만발. 여기서는 누가 뭘 했

었지, 하고 혼자서 생각하다 보면 웃음이 씨익 나기도 하는 와중에,


비록 그것도 즐겁기는 했지만.


잔을 즐거이 쨍해오는 후배의 손, 거리를 걸으며 '이제 어울림조 끝이야?'라고 저희들끼리 이야

기하는 신입생들의 목소리, 그리고 신촌주방장, 원시림, 아카라카.


선배들은 틀렸다. 상황은 똑같을지언정 그 안에 있는 사람들은 항상 변한다. 그것이 나를 4년째 어울

림조에 나가게 하는 것이다. 신촌하늘 아래 똑같은 것은 하나도 없다...


라고 생각하며 나는 4년전과 마찬가지로 삼화고속 맨 뒷자리에서 꾸벅꾸벅 졸며 생각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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