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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기장/2017

2017. 10. 20. 쥐순이.

 

 

 

 

 

 

오랜만에 쓰는 일기이다.

 

팟캐스트 <방과후 수업>은 구성원의 변화로 인해 정리를 했다. 손꼽게 즐거운 시간이었던 만큼, 예전만큼 즐겁지 않은데 계속해서 이어나가는 것은 자신에게나 결과물로서나 좋지 않을 것이라고 보았다. 지금도 이따금 술을 많이 마신 날에는 이전에 올렸던 에피소드들을 자기 전에 한 차례씩 듣는다. 어떤 것은 무척 재미있어서 듣다가 몇 시간이 지나는 수도 있다.

 

고양이와 함께 하는 생활에도 많은 변화가 있었다. 지난 글에서 소개했던 첫 고양이 흰둥이를 들인 뒤, 몇 달의 격차를 두고 샴 고양이 한 마리와 러시안블루 고양이 한 마리를 차례로 데려왔다.

 

집 안을 가득 채운 철제 캐비닛에 수십 마리의 고양이를 가둬 놓고 키우는 곳에서 비실거리는 모습이 눈이 밟혀 데려온 러시안블루 고양이는, 데려온 지 열흘이 조금 넘었을 때 고양이 키우는 사람들이 이른바 '범백'이라고 줄여 부르는, 고양이 범백혈구 감소증으로 죽었다.

 

일본신화에는 일왕을 포함하여 인간의 직계 조상으로 여겨지는 호노니니기라는 신이 있다. 이 신이 하늘에서 지상으로 내려와 만났던 두 여인이 나무와 꽃이라는 이름의 고노하나(木花)와 바위라는 이름의 이와(巖)였다. 호노니니기는 못생긴 이와가 아니라 예쁜 고노하나와 혼인을 하여 인간을 낳게 되는데, 영생의 바위가 아니라 필멸의 꽃과 나무를 택했기 때문에 인간이 신의 후예이면서도 결국은 죽게 된다는 설명이다. 이 신화를 인상 깊게 기억하고 있었기 때문에 데려올 때부터 작고 병약했던 고양이에게 이와라는 이름을 붙였던 것인데 몇 차례 불러볼 기회도 없이 헤어지고 말았다. 분양자는 몇 차례의 연락이 오가던 도중 전화번호를 바꾸고 사라져 버렸다.

 

한 달 뒤 나는 새 러시안블루 고양이를 들였다. 먼저 들인 샴 고양이가 쥐처럼 생겼기 때문에 쥐순이라고 불렀던 것을 따라 회색곰과 같은 털색을 갖고 있어 곰순이라고 불렀다. 이번에는 애교가 많으니 사람을 따르느니 하는 것을 보지 않고 그저 건강한 것만을 따졌기 때문에 곰순이는 같이 산 지 반 년 여가 넘은 지금도 튼튼하다.

 

구월 말, 나는 첫 전세집의 계약이 끝나 광진구 중곡동에서 중랑구 상봉동으로 이사를 했다. 광진구 내의 중곡동과 건대입구에서만 일을 해도 되었던 때가 지나고 노원구 하계동까지 출근의 범위가 넓어져 그 중간쯤 되는 곳으로 이사를 한 것이다. 그간 번 돈으로 새 책장과 큰 책상을 넣을 수 있는 더 넓은 집으로 이사하고 싶은 마음도 있었다. 새로 이사 온 동네는 이전 동네만큼 골목이 많지 않아 정겹지는 않지만 지하철역이나 백화점 등의 편의시설이 이어져 있어 편리하기는 하다.

 

조금만 걸어 나가면 서울의 동쪽으로 이사 오면서 정을 붙인 중랑천이 여기에도 흐르고 있어 마음이 좋다. 함께 국토종주를 다녀왔던 전기 자전거는 배터리의 양이 좀 줄어들기는 했지만 아직도 현역이다. 중곡동에 살 때와 똑같이 전기 자전거로 출퇴근을 한다. 함박눈이 내려 길이 미끄럽거나 하지 않으면 좀 춥더라도 겨울에도 쭉 자전거로 출퇴근을 할 생각이다. 다행히도 관련 법안이 통과되어 내년인 2018년부터는 자전거 도로에서의 통행도 합법이라 한다.

 

이사를 오면서 첫 고양이였던 흰둥이를 원래의 임시 보호자에게 돌려주었다. 주인이 함께 살고 있는 빌라 형태의 새 집은 전세계약서에 반려동물을 키울 수 없다고 기재가 되어 있는데, 수컷인 흰둥이는 덩치도 크고 울음소리도 컸기 때문이다. 그래도 사이가 좋았다면 어떻게든 들였을 것이지만 흰둥이는 일 년여가 지나도록 나를 보면 피하거나 겁을 먹곤 하였고 나도 그 모습이 탐탁치 않았던 것이 사실이다. 이따금 내 집을 방문하는 다른 손님들에게는 비교적 살갑게 구는 것을 보면서, 다른 집에 가 편하게 사는 것이 저나 나나 좋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했다. 다 자란 고양이의 분양은 쉽지 않지만 그래도 흰둥이는 사람들이 돈 주고 데려가는 품종이라, 길에서 볼 수 있는 코리안 숏헤어보다는 훨씬 빨리 좋은 사람 만나리라 생각했다. 곧 분양을 갔다고 들었으나 어디로 갔는지는 모른다.

 

이사하고 한 달쯤 지난 뒤, 새끼 때에 데려왔지만 어느새 여덟 달의 나이가 된 러시안 블루 곰순이의 중성화를 결정했다. 평소에도 튼튼했던 곰순이는 수술이 끝난 뒤에도 곧 마취가 풀리고 잘 돌아다녀서 마음을 놓았다. 곰순이보다 넉 달 나이가 많은 샴 고양이 쥐순이를 먼저 중성화하지 않은 이유는, 언젠가 출산과 육아를 시켜보고 싶은 마음도 있었지만, 그보다 여름이 지나면서부터 갑자기 살이 빠지기 시작해 진료부터 일단 받아보고 싶었기 때문이다. 중성화 수술을 한 병원에서는 이렇게 마른 것은 더 큰 병원에 가서 여러 검사를 하셔야 한다고 유명한 동물병원 몇 군데를 소개해주었다.

 

추천받아 찾은 병원에서 쥐순이는 건식 복막염으로 의심된다는 판정을 받았다. 몇 달 전 이와가 걸렸던 범백과 함께, 고양이를 키우는 사람들이 가장 무서워하는 병 중의 하나이다. 이 병은 고양이 치료에 관한 서적에도 치사율이 100퍼센트로 소개되어 있다. 다만, 복막염에는 복수가 차오르는 습식 복막염과 그렇지 않은 건식 복막염이 있는데, 건식 복막염의 경우에는 치료를 잘 하면 몇 년 정도는 사는 경우가 드물게 있다고 했다.

 

고양이를 상대로 한 의료는 아직 충분하지 않다. 무슨 병인지 확진을 받기도 어렵고, 받았다 하더라도 마땅한 처방이 없다. 범백이나 복막염 같은 치명적인 병조차 수액을 맞추고 강제로 고단백질의 사료를 먹여 스스로 극복하기를 기다릴 뿐이다. 병원에서 수액을 맞춘 뒤 집으로 데리고 돌아오면서, 시간과 돈이 들고 일상이 피곤해지더라도 오랫동안 버텨 보기로 마음을 먹었다.

 

유명한 병원이라 예약이 밀려 있었던 탓에, 평소와 달리 아침 일찍 일어나 움직여야 했던 나는 쥐순이에게 이불을 덮어주고 나도 한숨 잤다. 사람을 좋아하는 쥐순이는 잘 때에도 내가 자는 이불에 들어와 자는 것을 새끼 때부터 좋아했다.

 

몇 시간가량 자고 일어나는데 느낌이 좋지 않았다. 샴 고양이는 본래 크기가 작은 품종이고, 암컷인데다가 근래에 무척 말라버린 쥐순이는 더더욱 작다. 게다가 웅크리고 자기 때문에 이불의 어디에서 자고 있든 나와 닿는 지점은 기껏해야 손바닥 하나 정도의 크기이다. 그런데 양쪽 허벅지에 모두 무언가와 닿아 있는 느낌이 들었다.

 

벌떡 일어나 이불을 젖혀 보니 쥐순이가 옆으로 죽 늘어져 있었다. 머리와 엉덩이가 각기 내 양쪽의 허벅지에 닿아 있었던 것이다. 어릴 때에는 마음이 편안할 때 곧잘 그러고 잠에 들어 나를 웃긴 적이 있었기 때문에 혹 수액을 맞고 상태가 좋아진 것일까 생각하며 이불을 더 젖히자 똥과 오줌을 싼 흔적이 있었다. 깔끔을 떠는 쥐순이는 그런 실수를 한 적이 거의 없다.

 

불안한 마음에 쥐순이를 들어서 세워보자 쥐순이는 젖은 휴지를 세워놓을 때처럼 스르르 옆으로 쓰러져 버렸다. 다급히 병원에 전화를 거는 도중에 쥐순이는 움찔움찔 하더니 누운 채로 똥을 쌌다.

 

내 마음이 변하기 시작한 것은 그때였던 것 같다. 나는 범백으로 죽은 새끼 고양이 때 그런 모습을 본 적이 있다. 병원은 바빴는지 통화가 되지 않았지만 나는 통화 버튼을 한 번씩 누르면서도 마음의 준비를 했다. 남은 시간이 고작 몇 시간 안짝일 것 같다는 생각이 무의식적으로 들었기 때문이다. 아침까지 활발했던 쥐순이이고 그 사이에 한 일이라고는 병원에 가서 진료를 받고 수액을 맞은 것뿐이지만, 어쩌다 이렇게 되었는지 황망해하거나 분노하기보다는 남은 시간을 잘 보내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병원에 다녀온 뒤 쥐순이는 추웠는지 콧물이 나 있었다. 그 추운 길을 다시 가서 또 그 유리 상자 안에 가둬두고 수액을 맞추고 싶지는 않았다. 눈 앞에 손가락을 흔들어 보니 반응이 있지 않았다. 나는 이불을 덮고, 이따금 틀어주면 편안해 하는 것 같았던 하프 음악을 틀어 주었다. 이불 속으로 손을 넣어 몸을 쓰다듬으면서 이런저런 말을 걸어보았는데 눈물이 나서 여의치는 않았다. 중간에 잠깐 정신이 돌아오는 것 같아서 혹시나 하고 설탕물을 먹여 보았지만 쥐순이는 삼키지 못했다.

 

두어 시간 정도 쓰다듬으면서 맥박이 차츰 약해지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잠시간 몸을 돌려 가방 정리를 하다가 문득 쳐다보자, 방의 불을 켜 놓았기 때문에 가로로 길쭉해져 있던 쥐순이의 눈이 처음 데려오던 새끼 때처럼 크고 새까매져 있었다. 천천히 다시 몸에 손을 대어보니 맥박이 멎어 있었다.

 

나는 다이소에 가서 호미와 삽을 샀다. 철제로 된 큰 삽은 없었다. 친구의 차를 얻어타고 남양주로 갔다. 남양주의 한강변에는 큰 식당이 많은데, 일전에 갔던 닭백숙 집에서 그 앞으로 큰 갈대밭과 자전거길, 그리고 남한강이 넓게 펼쳐져 있던 풍광을 보고 좋았던 기억이 있기 때문이다. 한 살 생애 내내 서울 촌년이었던 쥐순이게는 굉장한 광경일 것이다. 인적이 드물고 또 큰 나무가 있어 기억하기 좋은 곳을 골라 땅을 파고 쥐순이를 묻었다. 구멍이 평평하지 않고 오목하게 패여서 쥐순이를 누이자 웅크린 것 같은 자세가 되었는데 그것이 평소에 편해 하던 자세라 다시 눈물이 났다. 엉엉 울면서 흙을 덮고, 땅을 다져 밟았다. 집으로 돌아온 나는 쥐순이를 덮었던 이불과, 쥐순이를 데리고 병원에 다녀오는 동안 입었던 옷을 모두 빨았다. 쥐순이가 쓰던 화장실의 모래도 모두 버리고 화장실은 왁스로 소독을 했다. 어제의 일이다.

 

자고 일어나서 중성화 수술을 한 곰순이가 먹어야 할 약을 먹이고, 쥐순이의 보양을 위해 쿠팡에서 새로 시켰던 특식이 그새 배달 와 있길래 곰순이에게 먹였다. 수술하고 나서 식욕이 줄은 것 같아 걱정이었는데 그나마 입을 좀 대어서 마음을 놓았다.

 

한 친구가, 사람이 죽으면 먼저 죽은 가장 사랑했던 동물이 마중을 나온다는 카툰 컷을 보여준 적이 있었다. 지나치게 감상적이라고 여겨 나는 그리 마음에 두지 않았었는데, 그것이 단지 내 경험이 부족해서였을 뿐임을 알게 됐다.

 

어제는 황망하여 챙길 정신이 없었다. 봄이 오면 좋아했던 간식과 장난감을 가지고 다시 찾아가겠다. 내 손으로 처음 데려왔고 가장 예뻐했던 고양이라 사진이 많지마는 오늘은 그간 찍었던 것 중에 가장 쥐순이다운 사진을 올려둔다. 사랑스럽고 당당한 고양이였다. 또 보자.

 

오랫동안 일기를 쓰지 않았다. 특별히 쓸 것이 없기도 했고 다시 쓰려니 어떻게 써야 하는지 그 사이 잊기도 했었는데, 친구 같고 새끼 같았던 쥐순이와 헤어진 다음날에 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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