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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기장/2003

2003 연극과 인생 공연 <꿈의 연극> 팜플렛 中 '기획의 글'

기획의 글을 쓰고자 앉았는데 뭔 이야기를 써야 할지 도무지 생각이 나질 않아 다른 기획들은 뭐라고

변을 토하셨는지 지금까지 모아 놓은 팜플렛들을 바리바리 쌓아 놓고 읽어 보았더랍니다. 힘들게

기획하는데 마음의 지주가 되어준 누구야 사랑해라는 애정만발 러브레터도 있었고 기획이야말로

연극의 알파요 오메가라는 위대한 경구도 있었고 오늘아침에는 계란 후라이를 먹었다는 일상다반사

도 있더랍니다.



가만 앉아 생각해 보니 애인은 없어도 누구야 고마워할 만한 사람들도 몇이나 있고 나야말로 이번

연극의 1등공신이노라는 말도 대뜸 해 볼만 한 것 같고 오늘 아침에는 식사대용으로 발렌타인데이

쪼꼬레또를 먹었다고 써도 왠지 뭔 생각이 있는 것처럼 뽀대 나 줄 것 같기도 하더랍니다.



그래도 어쩐지 기획스러운 말을 써 줘야 기획스러울 것 같아 곰곰 생각하자니 문득 어떤 생각이

났습니다. 여기서 문득이란 아무 계기 없이 갑자기라는 뜻의 단어라지요. 문열어 득칠아의 줄임말이

아니랍니다. 재학생끼리 치고  박고도 할 수 있었는데 문득 92학번의 대연출님을 모셨답니다. 문득

생각나 딴 동아리의 대배우님도 훔쳐왔답니다. 이제는 마음잡고 이 바닥 벗어나 보려는 광기의 배우

님도 문득 끌어왔답니다. 방송국서 잘 나가려는 참인 대여우님도 어느덧 문득 함께 있더랍니다. 고마

운 선배님을 문득 만나 크게 도움을 받았답니다. 문득 모인 사람들인데도 다 사랑스럽더랍니다.

문득문득문득. 다 우리 연극과 인생의 복이려니. 써 놓고 보니 잠 못 들던 밤들을 가득 채운 기획으

로서의 처절한 고민은 간데없고 천하태평 신선처럼 보여 전혀 기획스럽지 아니하지만 본인도 문득

기획이 된 터라 괜찮겠지하고 맘편하게 생각했다지요.



기획은 기획이기 이전에 동아리 구성원이고 동아리 구성원이기 이전에 인간입니다. 인간의 ‘인’자

는 두 사람이 서로 기댄 모양이라 인간은 혼자 살 수 없고 따라서 동아리 구성원도 혼자서는 살 수

없으며 결론적으로 기획은 혼자 사는 것이 아니다, 그것 참 논리적으로 완벽하지요. 그러나 기획

은 다른 인간들보다는 조금 더, 혼자 살 수 없음을 느끼게 되는 인간인 것 같다고 생각했습니다. (본

기획이 여자친구가 없기 때문만은 아닙니다.)



한 편의 인생같은 연극을 올리기 위해, 한 장면의 연극같은 인생을 살아내기 위해 얼마나 많은 사람

의 노력이 필요한가. 계속해서 배우를 해 오다가, 한발짝 흐름에서 벗어나 그 많은 사람들이 하나의

꿈을 꾸는 모습을 볼 수 있었던 경험은 정말이지 문득 된 기획이라지만 맡길 잘했다라고 스스로 거

듭 되뇌이게 합니다.



그래서 기획은 스페샬 땡스 투를 쓰지 않고는 못 배기나 봅니다. 연극은 혼자 하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가르쳐 준 고마운 이가 어디 한둘이어야지요. 진심으로 고맙다는 마음을 전함으로써 얼렁뚱

땅 술값도 한 번 아끼고. (인생의 팁입니다. 낭비벽이 있는 자녀를 두시게 되면 반드시 기획을 시켜

보시길!)



연극과 인생의 기획으로서 감사드립니다. 연인이 한 발짝 나아갈 수 있는 계기를 마련해 준 재엽옹,

항상 성실한 모습으로 후배들의 귀감이 되어 준 스맥다운 루저 경호형, 예의바르고 재미없게 기획의

글을 써야 하나 하고 눈치를 보던 마음을 한방에 날려 준 건방개그 스승님 현호형, 연인의 영원한

대장님 영미누님(사랑해요!), 대사에 치여 죽고 다리가 부어죽어도 아무도 이상하게 생각 안 할 고생

만빵 소영할멈, 어느덧 연인의 듬직한 연출기둥으로 자라난 김서방, 분위기 뭉글뭉글하게 만드는

데 제 일인자 류회장, 올망졸망 02스머프들을 이끌어 준 나연, 바쁜 기획일에 지쳐 묻혀져 가던 내안

의 연기욕구를 활활 되살려준 크리스틴 최, 그리고 좌약으로 넣어도 아프지 않을 내 새X들, 신각

원준 경아 지희. (신각이는 좀 아프겠다.) 그리고 항상 어디선가 지켜보고 계신 모든 연인들.



인간으로서 감사드립니다. 벌써 네 번째 연극이지만 대학 가서 연극은 1학년때 한 번 한 것으로

알아 ‘주시는’ 부모님, 내 삶의 메인 리즌 I.N.K family, 힘든 이야기들을 들어 주러 일부러 중국에

서 귀국한 설여사, 점점 식어가지만 여전한 my old pal 미랑, 내가 연대에 온 이유 대공원 아자씨

수, 연인전속사진사 인생의 벗 훈이 할아범, 이모나 다름없는 민족의 구국열사 강애리 여사. 인터넷

의 나이팅게일 미녀스탭 피님, 국문과의 좋은 라이벌 나비씨 안개씨, 허경진 교수님, 성석제 선생님.



수컷으로서 감사드립니다. SR, SA, MJ.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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