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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기장/2003

2003. 7. 4. 금.

방학 2주차가 지나가고 있다. 금토일은 과외때문에 정신없으니 목요일 저녁만 되어도 나의 일주

일은 끝난 기분이다.


동생이 해병대에 입대했다. 대학에 들어가기만 하면 한학기만 다니고 바로 군대에 갈 것이라고 호언

장담을 했던 동생은 삼수를 하고서야 그 약속을 지킬 수 있었다. 평범한 곳으로 갔으면 좋았을것을,

동생은 포항으로 입소했다. 포항에 있는 친척네 집에 놀러갈 때마다 버스창밖으로 보이는 그곳을

보며 저런 데는 어떤 사람이 갈까나, 하고 궁금해 했었는데 내 동생이 갈 줄이야. 덕분에 2학년 1학

기의 봄부터 이번 학기 끝나고 갈게, 이번 학기 끝나고 간다니까, 라고 계속 미적미적댔던 나는 집

에 누워있기가 영 불편하다. 정말로 이번 학기 끝나면 가야지.


그래서, 동생이 없는 방학은 이번이 처음이다. 딱히 어딜 같이 돌아 다닌다거나 하는 건 아니지만

그래도 방학이 시작되면 밥도 한 끼 차려 같이 먹기도 하고 그런 게 있었는데, 나는 며칠째 혼자

일어나고 있다.


무료함을 때우기 위해 오후에 머리도 감지 않고 만화가게로 향하며 그런 생각을 했다. 아, 얼른 제대

로 독립했으면 좋겠다, 라고. 독립했잖아? 라고 물을지 모르겠지만, 금토일을 과외때문에 인천에서

보내야 했던 나는, 뭐랄까, 양쪽에서 찢긴 느낌이다. 똑같이 하숙비를 내면서도 같이 사는 동기들

만큼 하숙집에 애착을 느끼지도 못 하고, 오랫동안 살아온 집이면서도 인천집에 들어오면 예전만

큼 편안한 내집은 아니다라는 생각이 든다. 덕분에 나는 일정한 숙소가 없다는 느낌을 항상 받는

다. 머리를 괴이고 잘 것이 없는데도 반년동안 귀찮다고 사지 않는 것이나, 인천방을 정리 한 번

하지 않는 것도 어쩌면 '내 공간'이라는 생각이 들지 않아서일지도 모른다.


많은 사람들이 (심지어 오랜 친구들까지도) 들으면 픽 웃고 말겠지만, 나는 '내 공간'에 대해서는

가히 결벽증 환자라 불릴 만큼 청결한 사람이다. 최초로 가졌던 내 공간인 서울 강남구청 앞의 고시

원, 하루 두번 청소는 물론이요 수건 한 장이 삐뚤어지게 걸려있는 것도 눈뜨고 못 봤다. 책상 위가

정리된 뒤에야 공부를 시작할 수 있었고, 방에서 변하는 모습이란 오로지 키우는 채송화가 자라는

모양뿐이었다.


여행을 다니면서 사람이 무신경해졌다, 혹은 같이 사는 동기가 매일 먼저 청소를 한다, 라는 건 어쩌

면 핑계일지도 모른다. 그저 '내 공간'이라는 것이 없기 때문 아닐까, 라고 생각해 본다. 대한민국에

서 군대 가기를 찔끔찔끔 미루는 스물셋으로 살아가기란 이렇게나 힘들다.


며칠째 날씨가 영 꾸물꾸물하다. 다음주에는 산쪽으로 가 보고 싶은데 날씨가 개었으면 좋겠다.

작년 설악산은 정말 끝내줬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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