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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기장/2016

1월 첫째주 근황

 

 

 

 

집 근처의 시장에서 광어와 연어 회를 사다가 먹어봤다. 인천 사람이지만 나는 사실 회 맛을 잘 모른다. 가끔 먹으면 낯선 식감과 익숙한 초장 맛에 맛있나 보다 하고 쩝쩝 먹는 편이다. 이 날도 맛이 있었다.   

 

 

 

 

 

 

 

일하는 곳은 대개 집에서 오 킬로미터 내에 있다. 몇 정거장 되지도 않는데 버스를 기다리는 것도 지루한 일이고, 또 이렇게라도 운동 한 번은 해야지 싶어 삭풍이 부는 날에도 자전거를 타고 댕긴다. 요새 들어 1차로는 자전거와 차량이 함께 통행하는 차선이라는 안내판이 여기저기 눈에 띄긴 하지만 현실적으로는 하루에도 몇 번씩 경적 소리 얻어 먹는 찬밥 신세이긴 하다. 하기사 내가 운전자 입장에서 생각해 보아도 위태로운 마음에 상냥한 경고 삼아서라도 작은 경적 소리 한 번은 낼 것 같다. 여기 자동차가 지나가니 조심하세요, 하고.

 

그런저런 생각하며 신호를 기다리는데 잠시 햇볕이 들어 생겨난 그림자 중 모자를 뒤집어 쓴 머리의 모양이 나폴레옹 같기도 하고 초코송이 과자 같기도 하고 해서 찍어봤다. 사실 생각난 것은 초코송이는 아니었지만 근래 제자들이 블로그 잘 보고 있다는 문자를 여러 통 보내주어서 여러가지로 불편해졌다.

 

 

 

 

 

 

 

 

틈틈이 메모장에 낙서도 하기는 한다. 하지만 붓을 들고 그림을 그린 지는 꽤 됐다. 이게 모두 뜨개질 때문이다.

 

 

 

 

 

 

 

평소에도 잡생각이 많아 가벼운 두통이 있는 편인데 다른 취미에 비해 뜨개질을 하고 나면 두통이 한결 가셔있는 것을 발견할 수 있다. 거기에 겨울이라 집 밖에 나가기 싫은 마음에다 문득 정신 차려 보면 눈에 띄는 결과물도 있는 판이니 손에서 놓기가 어렵다. 처음에는 가장 기본적인 뜨기도 어려웠지만 다른 모든 일이 그렇듯이 한 차례 배우고 나면 어느 정도까지는 응용이 가능하다. 지금은 장갑이나 바구니와 같이 형태가 달라지는 것은 여전히 도안부터 이해를 하지 못하고 끙끙대고 있지만 목도리라면 이런저런 변용까지는 혼자서 할 수 있게 됐다. 하기사 조금만 가르쳐 주면 금세 이런저런 결과물을 낼 수 있는 정도의 기술이니까 민족과 거주지를 막론하고 오래 전부터 세계 곳곳에서 발전해 왔을 것이다.  

 

 

 

 

  

 

 

 

생각해보면 이상한 일이다. 두 개의 바늘로 실을 떠 나가는 작업이니까 '뜨개'까지는 이해가 가는데 '-질'이라는 접미사는 왜 붙은 것일까. '-질'은 서방질, 삿대질, 헛발질처럼 부정적인 어감을 갖는 단어에 붙는 경우가 많다. 주로 여성이 맡았던 일이기 때문에 폄하의 뜻이 들어가 있었던 것일까. 하지만 청소淸掃, 요리料理와 같이 본래 한자어인 단어는 그렇다 치더라도 빨래, 설겆이 등은 건조하게 행위를 묘사하는 데에 그치지 특별히 '-질'이 붙지는 않는다. 

 

궁금해서 찾아봤다. 네이버 국어사전에는 접미사 '질'의 설명과 용례가 없고, 일부 블로그 등에 <연세한국어사전>에 다음과 같이 소개되었다며 인용한 것을 찾을 수 있었다. 

 

접미사 '질'에는 세 가지 뜻이 있다. '선생질', '목수질'과 같이 직업이나 일을 나타내는 명사 뒤에 붙어 어떤 일을 천하고 부정적으로 평가하여 이르는 말, '서방질', '계집질', '전화질'과 같이 옳지 않은 일을 이르는 말, 그리고 '삽질', '걸레질', '비질', '바느질'과 같이 동작이나 행동을 이르는 말이 그것이다.

 

결국 뜨개질은 세 번째의 설명에 해당하는 셈이다. 하지만 '걸레질'이나 '비질'과 같이 일상적으로 소용되며 때, 먼지 등의 오폐물을 제거하는 일과는 다른 접미사를 붙여줬더라면 좋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바느질이나 뜨개질은 난이도가 높지 않아서 그렇지 고유의 디자인을 가진 하나의 작품을 만들어내는 행위인데, 조금 더 존경심을 가졌더라면 좋지 않았을까. 이렇게까지 구분하면 언어가 너무 복잡해졌으려나.

 

따위의 생각을 하다 보면 반드시 한두 코를 놓치게 되어 있다. 뜨개질을 할 때에는 뜨개질만 하자.

 

 

 

 

 

 

 

 

쨘 완성. 바둑판 무늬가 대각선으로 이어진 이것은 '자라' 목도리라고 한다. 자라 등껍질같이 생겨서 자라 목도리인가 싶었는데 알고 보니 브랜드 '자라ZARA'의 한 모델이 걸치고 나와서 유명해진 덕에 그렇게 되었다고 한다. 그러니까 실은 평소에도 ZARA 목도리라고 발음해야 하는 셈이다. 

 

 

 

 

 

 

 

 

집 근처의 시장에는 작은 꽃집도 있다. 뭐 좀 살 것이 있나 하고 별 생각 없이 들렀는데, 수경식물에 관심을 갖고 검색하면서 가장 갖고 싶게 된 식물 중 하나인 스파티필름을 팔고 있었다. 그것도 꽃이 핀 것으로. 가격도 인터넷보다 훨씬 저렴해서 옳다구나 하고 냉큼 사 왔다. 마땅히 놓을 곳이 없어 한쪽 구석의 책장 앞에 두었는데 마땅한 위치가 아니라도 그저 보기만 해도 즐겁고 좋다.

 

 

 

 

 

 

하고 생각하면서도 틈이 나면 일단 뜨개질. 뜨개질을 시작한 뒤로 오히려 다른 일들의 효율이 올라갔다. 변명처럼 들릴 것은 안다. 변명으로 들릴 것도 안다.

 

 

 

 

 

 

 

 

영치기영차.

 

 

 

 

 

 

 

 

이렇게 해서 어젯밤에 완성한 목도리까지. 즐겁기는 한데, 목도리 하나를 뜨려면 적게는 네 개에서 많게는 일곱 개의 실뭉치가 들어간다. 소셜커머스 사이트에서 가장 싼 실도 한 뭉치에 삼천 원쯤 한다. 목도리 하나에 만 이천 원에서 이만 천 원쯤 들어가는 셈이다. 선물용으로 재미 삼아 하나쯤 떠 본다면 가격 대비 괜찮은 취미이지만 무턱대고 하다 보면 적지 않은 돈이 나가게 된다. 익숙해질수록 손은 빨라지니 실이 들어가는 속도도 빨라지는데다 하다 보면 색이 다르거나 촉감이 다른 실도 욕심이 난다. 이것 참. 마음의 평화를 얻었다지만 만사의 근본은 돈이구먼, 하는 생각도 든다. 당장은, 만들어 놓으면 언젠가 선물할 데가 생기겠지 하고 마음 편하게 여기기로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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