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일기장/2008

10월의 마지막 밤, 전날 밤






월요일 아침, 이대에서 하는 안대회 선생님의 수업을 마치고, 동문부터의 오르막길을 걸어 오르기가

심난하여 신각이에게 전화를 해 보았다. 며칠째 신촌의 목욕탕에서 자는 강행군이 계속되다 보니 허

리가 아프기도 했고, 갑자기 추워진 날씨에 어깻죽지가 찌뿌둥하기도 했고, 그 아침에 신각이가 뭔가

함께 이야기할만한 문자를 보냈기 때문이기도 했다. 수업이 없었는데도 중도에 있었다는 신각이는

동문 쪽으로 픽업하러 와 달라는 구걸에 쾌히 그러마고 했다.


부드등부드등 소리를 내며 오토바이를 끌고 나타난 신각이는 신촌 목욕탕의 바닥이 딱딱해 허리가

아프다는 내 호소에 봉원사 근처에서 찜질방을 가 본 적이 있다며 잠시 들러보자고 했다. 다음 수업

까지 어차피 두어시간이 남아 있었기 때문에 별 생각없이 그러자고 했는데, 오토바이를 타고 동문 무

렵을 벗어나자 괜스리 기분이 들뜨기 시작했다. 마치 경기도 인근의'가든'처럼 생긴 찜질방은 멀찌감

치서 보고 돌아왔지만, '연대' 구역을 벗어났다는 기분만으로도 무척이나 신이 났다. 더 잘 활용하

지 못 하는 것을 안타까워하는 한편으로, 이런 때에는 시간을 자유로이 쓸 수 있는 이 직업에 무한

히 감사하게 된다.


한솥도시락에서 한 턱 내겠다는 내 얄팍한 수작에 신각이는 도련님 스페셜을 시키는 것으로 응수했

다. 한솥에서의 도련님 스페셜은, 비유하자면 중국집에서의 샥스핀 정도랄까, 아무튼 '정가'가 아닌

'시가' 수준의 요리이다. 식사를 하고 난 뒤 신각이의 오토바이 앞에서 괜스리 한 장 찍어 보았다.

본래는 새 오토바이를 샀노라고 오랜만에 뻥치시네 놀이를 할 작정이었는데, 신변에 참사가 있는

관계로 그저 올려만 둔다.


마음은 여전히 바람따라 앉을 곳을 모른다. 일찍 지나갈 것만 같은 올해 가을인데도 위태위태한 심

정은 하루가 다르다.

'일기장 > 2008' 카테고리의 다른 글

집 앞 풍경  (1) 2008.11.07
시월의 마지막 밤, 잊혀진 학번  (0) 2008.11.01
미랑의 결혼식  (5) 2008.10.25
The Magic Hour  (3) 2008.10.25
중간고사 기간  (1) 2008.10.2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