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遊記/2014 교토

10. 우지(宇治) 2일차

 

 

 

 

아침 일찍 일어나 차를 마시며 다시 한 번 복습.

 

 

 

 

 

 

 

 

기모노와 함께 제공되었던 게다 용 양말. 기모노는 여관 것이지만 양말은 가져가도 되겠지 싶어 그대로 신고 나왔다.

 

 

 

 

 

 

 

 

체크아웃을 한 뒤 숙소에 짐을 맡겨두고 길을 나섰다. 우지가와 강변을 따라 쭉 걷는다. 목적지가 따로 있었지만, 이 산책로만을 위해 우지를 찾았다 하더라도 나는 후회하지 않았을 것이다. 여름날 달밤에 호젓하게 혼자 걷는다면 꿈을 꾸는 기분이 들 것 같은 길이었다. 

 

 

 

 

 

 

 

 

강이 깊지 않아 물놀이하는 사람들을 쉽게 볼 수 있었다. 걸으면서 들은 몇 개의 팟캐스트에서는 예외 없이 서울에 대폭설이 내려 교통이 정체되고 곳곳에서 사고가 잇달았다는 뉴스가 나왔다. 가깝지만 다른 나라이긴 다른 나라이구나. 나이 먹어서 오한이 자주 들면 일본으로 은퇴하는 것도 고려해볼만 하겠다, 싶었다.

 

 

 

 

 

 

 

목적지는 여기다. 아마가세 댐을 바라볼 수 있는 위치에 세워진, 아마가세 구름다리.

 

 

 

 

 

 

 

 

아마가세 구름다리는 윤동주가 죽기 전 마지막 사진을 찍었던 곳이다.

 

교토의 도시샤 대학에 재학 중이던 윤동주는 1943년, 대규모의 전쟁을 앞두고 흉흉해지던 일본 국내 분위기와 조선 유학생들까지를 상대로 하는 징집령을 피해 조선으로 돌아가기로 한다. 그의 같은 과 친구들은 그동안 정이 들었던 윤동주를 위해 환송회를 하기로 하고, 익숙한 교토 시내를 벗어나 소풍을 가듯 즐거운 마음으로 갈 수 있는 곳을 찾아 보았다. 그렇게 해서 그들이 선택한 곳이 바로 이 우지이다.

 

 

 

 

 

 

 

 

남자 일곱 명, 여자 두 명을 이루어진 윤동주의 동기들은 쌀과 밥솥을 지고 와 우지가와의 강변에서 즐겁게 하룻밤을 보냈다. 한 명의 증언에 따르면, 이 날 밤 평소 수줍음이 많던 동주는 친구들이 노래를 불러달라고 하자 알 수 없는 멜로디의 구슬픈 노래를 불렀다 한다. 이후 한 친구가 다른 친구에게 동주가 부른 그 노래가 무엇이냐고 묻자, 그 친구는 '조선의 '아리랑'이라는 노래래'라고 말했다고 전해진다.

 

즐거운 하룻밤을 보내고 난 뒤 아침에 일어난 이들은 우지가와 강변을 쭉 따라 걸어와, 당시로서는 최첨단 시설이었던 아마가세 댐을 구경하고 아마가세 다리 위에서 기념사진을 찍었다. 그리고 한 달 뒤, 윤동주는 귀국을 1주일 앞두고 체포된다. 그 뒤의 이야기는 다들 아시는 바와 같다. 윤동주는 후쿠오카 형무소에 2년간 수감되었다가 29세가 되던 1945년 2월, 광복을 반 년 앞두고 옥사했다.  

 

 

 

 

 

 

 

 

윤동주는 몹시 수줍음이 많아, 남아있는 사진들을 보면 여성과 함께 찍은 사진이 한 장도 없을 뿐 아니라 단체사진에서도 항상 맨 앞 줄이나 양쪽 끝에 조용히 서있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그런데 이 사진에서 사진의 한가운데에, 그것도 여성들의 바로 옆에 서 있는 이유는 이 날이 윤동주의 환송회였기 때문이다. 

 

이 사진은 2000년대 중반이 되어서야 세상에 공개됐다. 모두 일본인인 남학생들은 태평양전쟁에 징집되어 죽은 것으로 추정된다. 그러나 여학생 둘은 살아남아 계속 교토에 살고 있었던 것이다. 한 윤동주 연구자가 이들을 찾아내어 인터뷰를 하였고 그러던 도중 할머니가 된 한 소녀가 옛적의 사진이라며 이 사진을 꺼내놓았다고 한다.

 

 

 

 

   

 

 

 

사진 뒤쪽으로 보이는 철사줄과 산의 각도로 추정해, 윤동주가 마지막으로 섰던 자리에 서 보았다.

 

 

 

 

 

 

 

 

돌아나오는 길. 쓸쓸한 마음이라 눈에 띄었던 것일까. 졸졸 흐르는 물줄기 위에 누가 다리를 지어놓았다.

 

 

 

 

 

 

 

 

그것참 귀여운 마음씀이구나.

 

 

 

 

 

 

 

 

우지가와 양쪽의 산에는 거목들이 많다. 우지에는 전쟁의 참화가 미치지 않았던 것일까. 기웃기웃대며 걸어가는데 표지판이 눈에 띈다. '우지시 명목 백선'. 그러니까 '우지 시에 있는 멋쟁이 나무 베스트 100'이 있는 모양이다. 이 때에는 이런 걸 뽑아서 표지판을 세워두는 것도 재미있는데 '모미もみ'라는 이름까지 지어 주다니 그것 참 귀여운걸, 이라고 생각했는데 나중에 검색을 해보니 '모미'는 '전나무'의 일본어였다.

 

 

 

 

 

 

 

 

아쉬운 마음으로 우지를 떠나는 길. 편의점에서 파는 녹차 하나에까지 <겐지 이야기>의 삽화가 그려져 있다. 이렇게 꼼꼼하게 주머니를 털어가는 재주에 있어서는 확실히 우리가 일본에 한참 뒤처지는 것 같다.

 

 

 

 

 

 

 

 

우지 말차가루가 들어간 팥빵도 사먹어봤다.

 

 

 

 

 

 

 

 

팥소가 듬뿍. 평소 간식을 거의 하지 않는 나로서도 감탄할 수 밖에 없었다.

 

 

 

 

 

 

 

 

기념품으로 산 우지 말차 초콜렛. 표지가 예뻐서 선물하기 전에 찍어보았다.

 

 

 

 

 

 

 

 

쌉쌀달콤한 것이 아주 입에 딱 맞았다.

 

 

 

 

 

 

 

 

교토로 돌아와 새로 찾은 숙소는 교토 한가운데의 '한나리'. 다음 날부터 며칠에 걸쳐 좀 좋은 숙소를 예약했는데 그 전에 하루가 비어서 잠시 머물 목적으로 예약했던 곳이다. 주택가에 있어서 찾기가 어려웠다.

 

 

 

 

 

 

 

 

다음번에 일본 여행 가면 미리미리 예약 좀 해놓아야겠구나, 라고 절감했던 실내. 지구호의 17인실 도미토리가 2500엔이었는데 2인용 침대와 앉은다리 책상까지 혼자 사용할 수 있는 이 싱글룸이 3000엔이었다.

 

 

 

 

 

 

 

 

짐을 부려놓고 홀로 찾은 라멘집. 혹 한나리의 정보를 찾다가 이 블로그에 오신 분이라면, 한나리는 다른 숙소들에 비해 상가와 편의점으로부터 꽤 멀리 떨어져 있다는 것을 꼭 참고하시라.

 

 

 

 

 

 

 

일본 라멘은 국물이 진해서인지 곰탕 먹고 힘 나는 것과 같은 효과가 난다. 몸이 좀 으슬으슬하거나 속이 허할 때에 먹으면 곧 컨디션이 회복되곤 했다.

 

 

 

 

 

 

 

 

혼자 쓰는 것이 즐거워 가능한한 마음껏 어지르고, 발가벗고 앉아서 이후의 일정을 한 차례 더 정리했다.

 

 

 

 

 

 

 

 

라멘을 먹으러 갈 때 라멘집 인근에서 프레스코를 봐두었다. 폐점 시간이 언제냐고 물어보니 열 시에 닫는다 해서, 아홉 시가 되기를 기다렸다가 사냥길에 나섰다. 아니나 다를까 아홉 시의 대형 편의점은 반액의 보고. 회 한 접시가 340엔, 탕수소스 미트볼이 145엔, 양장피가 150엔. 이 참에 체력보충하자 싶어 육거리는 눈에 띄는대로 쓸어넣었다.

 

 

 

 

 

 

 

 

이런 회 한 접시가 삼천 원. 물론 일본 회 먹고 뭐가 그리 좋으냐고 반박하면 할 말이야 없지마는.

 

 

 

 

 

 

 

 

해도 졌고 동네가 주택가라 딱히 갈 곳도 없고 해서, 부른 배를 퉁퉁 치며 그림을 그리고 놀았다. 이것은 앞서 소개했던 화가인 다케히사 유메지의 가장 유명한 사진을 따라 그린 것이다.

 

 

 

 

 

 

 

 

마침 금펜이 있어 눈쌓인 금각사도 그려보고.

 

 

 

 

 

 

 

 

굵직한 네임펜이 있어 봉황당서 산 그림엽서도 따라 그려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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