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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기장/2006

1. 홍콩 → 델리





1. 해가 정말이지 불처럼 지는 수평선을 우로 두고 날아가는 중. 귀가 계속 막힌다. 한국시간으로

19시 20분. 말하자면 벌써 다섯시간 이상을 한 자리에 앉아 있는 것인데 별로 지루하다는 느낌을

받을 수가 없다. 비행기에서 소음이 계속 나기 때문인가. 머리가 약간 아프다. 창밖으로, 오른쪽은

해가 졌고 왼쪽은 아직 지지 않았다. 거대한 자연이란, 정말이지 보는 것만으로도 사람을 바꿔 놓

는다.


2. 스튜디어스 아가씨가 생글거리며 맛있다고 권하기에 인도식 토마토 쥬스를 마셔 보았다. 정말이지

흐를 수 있을 정도로만 묽게 해 놓은 케찹. 맛이 어땠냐고 굳이 물으러 왔기에 아주 좋았다고 답해

주었다. 아가씨가 기뻐하며 한 잔을 더 줄 듯한 기세이기에 황급히 잔에 물을 채웠다.


3. 한국시간으로 자정 무렵. 약 40분 후면 델리에 도착한다고 한다. 그렇다면 창 밖으로 보이는 거미

줄 불빛의 땅은 이미 인도라는 것이겠지. 지상의 모든 공간이 문명으로 가득 차 있었다고 무의식중

에 생각하고 있었던 탓일까. 스케치북에 떨어진 물감 한 방울마냥 나타나고 지나가는 인간의 존재가

덧없고, 그래서 더욱 소중해진다. 상황에는 어울리지 않지만 귓가에는 이여사가 좋아하시는 싸이의

연예인.


4. 도착 직전. 비행기 아래에서 빛나던 도시들은 멀어지면서 안개인지 뭣인지에 휩싸이고 가느다란

도로의 한 줄 불빛으로 연결되어 마치 용암처럼 명멸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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