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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기장/2010

'국론출산 - 야간분만' 첫 회를 보았다.

딴지일보에서 주관한, 경기도지사 야권 후보 단일화에 관한 토론인 '국론출산 - 야간분만'을 다시보

기로 보았다. 토론 중 유시민 씨의 '경기도 지사 출신 치고 대권에서 승리한 사례가 없었다'는 말처럼

경제적으로는 알토란 같았을지 모르되 전국적인 정치적 인지도의 획득 면에서는 그간 그리 주목받

지 못하는 자리가 경기도지사였던 것이 사실이다. 게다가 자신의 몸을 제외하고는 동료든 당이든 일

단 칼끝을 쑤셔넣고 보는 현 도지사 김문수 씨의 잇단 실정과 실언에도 불구하고, 야권의 후보가 이

상적으로 단일화되었을 경우를 상정했을 때조차 선거 결과 예측은 박빙으로 나온다. 그런 이 자리

에, 안동섭 씨가 '운명처럼' 끼어들고 심상정 씨가 있는대로 입을 빼물고 유시민 씨가 대구에서 굳이

한걸음에 뛰어오게 된 것은, 누가 뭐라고 해도 현 대통령의 분발이 가장 큰 역할을 했음은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다. 하여, - 나는 인천 시민이라 사회자였던 김제동 씨와 마찬가지로 투표권은 없지만 -

단지 어떤 한 후보의 당선일 뿐만 아니라 '심판'이라는 이름 하에 전국적인 파장은 물론 정계의 재편

에까지 영향을 끼칠 것이 확실한 선거에 관한 토론이기에 관심을 갖고 지켜보았다.


16일 현재, 주관언론인 딴지일보의 인터넷 홈페이지에는 토론 다시보기와 함께 '화성'이라는 필자의

관람후기가 게재되어 있는데, 아마도 진보 진영 - 민주당이 절대 다수를 차지하고 있는 통에 진보 진

영이라는 표현이 좀 껄끄럽다. 반 한나라 진영도 딱 떨어지지는 않고, 반 김문수 진영이라면 차라리

나을까 - 의 통합 후보 선출을 바라는 이라면 비슷한 생각을 하고 있지 않을까 싶다. 읽어 보기를 권

장한다. 다음은 나의 관람 후감이다.


김진표 씨를 보면서는, 민주당이 백분 토론에서 항상 한나라당과 대치하여 앉아 날선 비판을 하고 있

어 종종 진보나 좌익으로 보여지지만 진보신당이나 노동당, 국민참여당과 함께 세워 놓으면 한나라

당에 훨씬 가깝다는 걸 새삼 느꼈다. 근래 어떤 정치 칼럼에서 민주당 의원들의 가장 큰 목표는 바로

제1야당으로 안주하며 한나라당의 대안 세력으로 여겨지는 현상의 유지라는 지적을 읽고 일리가 있

다, 고 주억거렸는데 토론을 보며 그 생각이 조금 더 굳혀지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어려운 토론에

서 타협을 통해 건설적인 목표를 달성하려 하기보다는 노회하고 진부한 회피를 일삼는 모습이 좋아

보이지는 않았다. 김진표 씨의 발언을 길게 듣는 것은 처음이었는데, 인상과 화법에 있어 정체된 당

의 한계를 잘 대표하는 후보였다고 생각한다.


안동섭 씨에 대해서는, 사실 잘 몰랐다. 토론을 보고 흥미가 생겨 오늘 저녁에 정보를 찾아 보려고

한다. 진보신당이 독립해 나간 뒤로 민주노동당에는 큰 관심이 가지 않았던 것이 사실인데, 안동섭

이라는 인물 때문에 민노당의 근황은 어땠는지를 알아보고 싶게 됐다. 통합 후보로 뽑힐 가능성도

적을 것이라 생각하고, 큰 정치인이 될지도 알 수 없지만, 함께 술을 먹으면 그의 말에 감동할지도

모를 형이라고 생각했다.


앞서 언급한 딴지일보의 관람 후기에서도 가장 길게 다루어진 후보가 심상정 씨였다. 심상정 씨는

시종일관 통합 후보 선출에 대해 '이념이 다른 당이 통합 후보를 선출하는 것은 정당하지 않다'는

논리로 반대의 의사를 표시하였다. 관람 후기에, 국민들이 보기에는 민노당과 별반 다를 것 없는

신당의 후보로서 당의 정체성을 세우기 위한 고충이었음을 이해한다, 는 지적을 읽고서야 조금 누그

러지기는 했지만 토론 내내 찬물을 끼얹으며 자신과 자신이 속한 집단의 도덕적 정당성을 강조하는

태도는 대단히 불쾌했다. 통합 후보 선출에 대해 반대한 시점부터 토론의 직전까지 수많은 비판을

받은, 말하자면 수세에서의 방어적 자세라는 것은 알고 있지만, 이 토론을 통해 심상정이라는 정치인

에 대해 처음 알게 된 사람들은 그 이전부터 그를 알아오던 이들의 인식에 비해 과히 좋은 것을 갖

지 못할 것이라고 나는 생각한다. 일각에서는 이 또한 통합 후보 선출에 극적인 연출을 위한 포석이

라는 지적이 있는데, 혹여 심상정 씨가 많지 않은 자신의 지지기반마저 버려가며 당장의 연출을 위

해 그같은 선택을 의도적으로 한 것이라면 정치적 감각이 떨어진다는 비난을 피할 수 없을 것이다.


나는, 본래 좀 '유빠'다. 담백한 듯 하나 실은 갖은 초식이 난무하는 글빨과, 유머와 나른한 말투로 상

대방을 무장해제 시켜 놓고는 찌른 듯 안 찌른 듯 급소를 슥 내지르는 말빨에는, 평범한 먹물로서는

감탄하지 않기가 어려웠다. 그럼에도 큰 소리로 유빠임을 자처하지 못한 것은 참여 정부 시절 그가

보여주었던 공격적인 언행들에 대한 부정적 여론 탓이 컸는데, - 개인적인 평가이지만 - 노무현 전

대통령의 사후 정치인 유시민의 진일보한 화술은 그러한 껄끄러움을 말끔히 날려주었다. 예전의 유

시민이 같은 필드의 헤비급은 둘째 치고 프라이드든 UFC든 무조건 붙어 보자고 날뛰는 라이트급

복서를 연상시켰다면, 요새의 유시민은 스스로는 큰 힘을 쓰지 않고 상대방이 돌진해 오는 힘을 이

용해 도리어 넘어 뜨리는 유도의 고수를 떠올리게 한다. 넘어진 상대의 등을 털어주며 어쿠, 넘어졌

구나, 아프진 않니? 하고 물어보며 자기 말을 시작하는데, 정두언이나 원희룡 급의 더듬이들은 기만

임을 알아채지만, 많은 한나라당 의원들은 자신이 끌려가고 있는 것조차 모른다. 내가 요새 TV의 시

사 프로나 토론 등을 보며 그 말장난을 진정으로 혐오하는 인물이 박형준 청와대 정무수석과 나경

원 한나라당 의원인데, 유시민 씨가 손석희 교수의 마지막 백분토론에서 이 둘을 상대로 펼쳤던 화술

은 유빠임에도 그에게 대권주자는 무리이지 않나, 하고 생각하고 있던 내게 큰 충격을 안겼다. '야간

분만'에서도, 인터넷 방송이라 시간 문제에서 비교적 자유롭다 보니 다들 중언부언하는 가운데 유시

민 씨만이 자신의 입장을 밝히면서도 토론의 진행 방향과 논점의 재부각까지를 신경쓰는 모습을 보

였다고 생각한다. 앞서 다소 추상적으로 설명한 그의 화법이, 실은 내가 요새 지향하고 있는 성질의

것이라 이러한 평가들이 대단히 편파적일 수 있다. 그런지 아닌지, 직접 보고 판단하시라.


정식 공지는 없었지만, 사회자인 김제동 씨의 언급을 통해 '야간분만' 은 시리즈화될 것 같은 암시를

남겼다. 사회자가 바뀐 뒤 백분토론이 영 밍숭맹숭했는데, '야간분만'이 조금 더 나은 녹화 환경과

명확한 구성을 가지고 다시 등장하면 반드시 본방사수하리라 다짐했다.


여담이지만, 고향인 인천에서는 송영길 씨가 인천시장 출마를 선언했다. 다른 세 민주당 후보들이

한 후보로 통합하여 그와 당내 경선을 갖게 되는데, 아마도 송영길 씨가 되지 않을까 싶다. 상대는

3선에 도전하는 지역의 토호 한나라당 안상수 현 인천시장이다. 인천시장 송영길, 경기도지사 유시

민, 서울시장 한명숙을 볼 수 있으면 참으로 오랜만의 반가운 일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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