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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서일지

이경석 外, <섬과 섬을 잇다> (한겨레출판. 2014, 5.)

 

 

 

 

2013년 봄, 일군의 만화가와 르포 작가들이 모여, 지금 한국 사회에서 제도와 권력에 의해 소외받는 이들의 이야기를 함께 알려나가자는 기획을 하였다 한다. 소외받는 이들의 고통 중 가장 큰 것은 상시적인 폭력이나 궁핍함이 아니라 외로움이었기에, 작가는 그들과 그들의 사연이 하나의 섬과 같다고 여기고, 그 섬들을 이어 나가자는 의도로 해당 기획에 '섬섬 프로젝트'라 이름붙였다. 그 결과물이 모여 이 책으로 출간된 것이다.

 

 

책의 구성은 알기 쉽다. 총 일곱 편의 사회 문제가 소개되고, 하나의 사회 문제마다 한 명의 르포 작가(혹은 학자)와 한 명의 만화 작가가 짝을 이루어 각각 글과 만화를 낸다. 그러니까 하나의 소주제마다 두 편의 꼭지씩, 총 열네 개의 꼭지가 있는 셈이다.

 

한 편의 글은 약 20쪽 내외, 한 편의 만화는 16쪽 내외의 분량이다. 반드시라고는 할 수 없지만, 아무래도 장르의 특성상 '글' 파트에서는 사건의 경과와 영향, 그리고 생각할 거리 등이 논리적으로 전개되는 한편, '만화' 파트에서는 사건에 얽힌 개별적이고 구체적인 사연들이 감성적으로 전달된다.

 

 

소개되는 일곱 개의 사회 문제는 책에 실린 순서대로 다음과 같다. 쌍용자동차, 밀양 송전탑, 재능교육, 콜트-콜텍, 제주 강정마을, 현대차 비정규직, 코오롱. 모두, 사회 문제에 조금이라도 관심을 갖고 있는 사람이라면 들어 보지 못한 이름일 리가 없는 것들이다.

 

 

작가들의 면면이 화려하다. 애당초 이러한 주제에 관심을 갖고 모여든 이들인만큼, 사회나 노동 문제 관련 기사, 서적의 독자라면 낯익은 이름들이 눈에 띈다. '글' 파트를 맡은 이들 가운데에는 쌍용차 노조 대변인이었던 이창근, 최근의 화제작인 <노동자, 쓰러지다>의 희정, 성공회대의 하종강 교수, <괭이부리말 아이들>의 김중미 등의 이름이 익숙하다.

 

'만화' 파트를 맡은 이들 중에는 이 블로그에도 독후감을 올린 바 있었던 <먼지 없는 방>의 김성희, <사람 냄새>의 김수박, <남동 공단>의 마영신 등이 있다. 다른 작가들도 <사람 사는 이야기>나 <사이시옷>, <내가 살던 용산>과 같이 하나의 사회문제를 주제로 삼아 여러 만화가들이 공동으로 작품을 게재하였던 책에서 만나던 이름들이다.

 

 

총평. 가장 큰 장점과 단점이 한몸이다. 한 권의 책에서 우리 사회의 큰 갈등 현상 중 일곱 개나 배워갈 수 있다는 것, 혹은 한 권의 책에 일곱 개씩이나 되는 사건이 소개되어 있다는 것. 이제껏 공개되지 않았던 정보나 해당 사건을 바라보는 이 책만의 독특하고 깊은 해석을 접하고 싶었던 이에게는 조금 모자랄 수 있겠고 이제 막 사회 공부를 시작한 사람에겐 천금 같은 자료일 수 있겠다.

 

 

여기에 사소하고 개인적인 독후감 두 개만 더.

 

하나. 기획 자체는 훌륭한데, 막상 책을 읽어보면, 흥미진진하게 만화 파트를 읽고 나서 곧바로 이어 글 파트를 읽자니 아무래도 재미가 좀 떨어진다. 혹시나 싶어 나중에 글 파트만 로 읽어보았더니 이름난 저자들의 노작인만큼 아니나다를까 모두 흥미진진했다. 글과 만화를 교차하여 배치하는 구성 때문에 생긴 어쩔 수 없는 효과인 것 다.

 

둘. 이러한 갈등들이 왜 생겨났고 또 왜 아직도 해결되지 않는가에 대한 본질적 논의와 관계 없이, 해당 사건들이 이미 모두 어딘가의 이익과 관련해 '정치화'된 것들이어서, 그 결과적 현상을 언급하는 이 책마저도 '불온 도서'로 읽힐 가능성이 있다. 특히 구체적인 사연을 감성적으로 풀어내는 만화 파트는 특정한 정파적 이익을 고려하는 이에게 무척 불편하게 다가갈 것이다. 친하지 않은 사람들에게 함부로 추천하기 어려운 이유가 여기에 있다.

 

 

내 경우엔 두어달 뒤 수능을 끝낸 제자들이 대학 입학 전에 읽어보면 좋을 몇 권의 책을 물어올 때, 애당초 사회 문제에 비판적 의식을 갖고 있거나, 혹은 그렇지 않더라도 나와 각별한 친교가 있어 함부로 빨갱이 신고를 하지 않을 만한 이들을 골라 이 책을 추천하려 한다. 이만한 사람들이 모여 이만한 내용을 담았는데도 정가는 만오천 원. 추천하지 않을 이유가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