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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서일지

오찬호, <우리는 차별에 찬성합니다> (개마고원. 2013, 12.)

 

 

 

 

 

 

1.

 

익숙한 듯 낯선 제목과 강렬한 표지 디자인이 눈길을 잡아챈다. 서강대 사회과학연구소의 연구원인 오찬호 씨의

 

근작. 동 대학원에서 사회학 박사 학위를 취득한 저자가 시간강사로서 대학생들을 만나며 그들을 관찰하고 그들

 

과 토론하며 얻어낸 '20대 세대론'을 정리하였다.

 

 

책의 본문은 총 4부로 나뉘어져 있다. 각 챕터마다 재기 넘치는 소제목이 붙어있어서 무슨 내용이 들어있는지

 

왜 그 차례에 들어가 있는지를 추측하는 것이 쉽지 않다. 본래 그의 박사논문이었던 내용을 대중서로 다시 풀어

 

서 쓴 것이라는 저자의 발언을 참고하며 다시 읽어 보니 문제제기 - 원인적시 - 현상파악 - 대안제시 의 전형적

 

인 논문식 구성을 취하고 있다.

 

 

 

 

 

2-1.

 

1부 '강의실에서 바보가 된 어느 시간강사 이야기'에서는 이 연구를 시작하게 된 저자 본인의 트라우마적 경험

 

을 회상하며 본문의 문을 연다. 2008년 5월, 저자는 한 대학에서 '인권과 평화'라는 과목을 강의하고 있었다.

 

그 주의 토론 주제는 'KTX 여승무원들의 철도공사 정규직 전환 요구' 문제였다. 정규직으로의 전환을 요구하는

 

여승무원들의 주장은 논리적 정합성을 갖고 있었고, 사측과 벌인 법적 분쟁에서도 승무원 측이 4번 중 3번에 승

 

소하였다. 그래서 저자는 사실 이것이 '토론'의 주제가 될 것이라고는 상상하지 못했다 한다. 이 사례를 통해 곧

 

사회로 나아갈 20대 대학생들에게 인권과 노동권의 정의와 적용 등에 대해 생각할 기회를 마련해 주는 정도로

 

생각했다는 것이다. 그런데 대학생들의 반응은 예상치 못했던 것이었다. 그들 중 한 명이 일어나 '날로 정규직

 

되려고 하면 안 되잖아요!'라고 강경하게 반문하였고, 당황한 저자가 그의 의견에 얼마나 동의하는지를 묻자

 

수강생의 2/3가 손을 들었다고 한다. 이 경험이, 저자가 4년간의 시간을 바쳐 이 책의 모태가 된 박사논문의

 

연구 주제로 20대 대학생을 주목하게 된 계기였다.

 

 

저자는 의문했다. 전체 노동자 대비 계약직 노동자의 비율은 가장 보수적인 조사에서조차 전체의 33%인 600만

 

명에 달한다. 비정규직을 정규직으로 전환해 주는 조치는 곧 노동 시장으로 진입할 20대 대학생들에게도 유리한

 

조건을 형성해 줄 것이다. 그런데도 그들은 승무원들의 그런 요구를 '도둑놈 심보'라고 표현했다. 내 삶과 전혀

 

관계없는 것이지만 시민으로서의 연대 의식을 발휘해서 뛰어들어야 하는 그런 주제도 아니고, 자신의 노동 환경

 

과 비교적 직접적으로 연결된 사안에조차 드러나는 '20대 특유의 냉정함'은 도대체 어디서 발원한 것일까. 저자

 

는 이 매커니즘의 주요한 동력원으로 '자기계발'을 적시했다.

 

 

 

2-2.

 

2부 '자기계발서의 눈으로 세상을 보다'에서는 자기계발의 논리가 어떠한 과정을 통해 20대에게 내면화되는지

 

를 밝히는 데 주력한다. 여기에서 저자는 강의 과정에서 있었던 일이나 강의가 끝난 뒤 학생들과 나누었던 내밀

 

한 대화 등의 경험을 소재로 삼아 여러 전략을 통해 문제의식을 확립시켜 나가고 있다. 이 과정이 매우 흥미롭지

 

만 이 독후감에서는 분량의 한계 상, 내용을 좀 더 이해하기 쉽도록 입말로 바꾸고 거칠게 도식화해 보기로 한

 

다.

 

 

20대는 지금의 세상이 어떤지를 잘 '안다'. 이들에게 세계는 개인이 발버둥쳐서 바꾸거나 영향을 끼칠 수 있는

 

무엇이 아니다. 그것은 '그냥 그런 것'이다. 그런 세상에서 살아남는 방법은, 자기 계발의 노력 뿐이다. 어차피

 

세상이 그런 거라면 살아남기 위해서라도 노력해야 한다.

 

 

따라서 이들에게 노력이란 본래적 의미의 자기 계발이라기보다는 생존의 필수 행위에 가깝다. 더 적나라하게

 

말하자면 취업 시의 이력서에 적어넣을 수 있는 활동상과 자격증에 한정해서만 '노력'이라는 용어가 인정된다.

 

암벽 타기나 클래식 음악사 배우기와 같이 그 자체로 만족을 느끼거나 자신에게 가치가 있는 어떤 것은 이들에

 

게 있어 자기계발의 카테고리에 들어가지 못한다. 자기 계발의 노력이란 취업이라는 성과를 위해 동반되어야

 

하는 필수 과정이며 그 과정에서 고통 등의 자기 희생이 따르는 것은 당연하다.

 

 

과정 자체를 즐기거나 아니면 애당초 목적이 없을 수도 있는 여타의 자기계발과 달리 이 자기계발은 취업이라

 

는 특정한 목표의 달성을 위해 설정된 것이므로, 목표가 달성되지 않는 한은 끊임없이 반복된다. 목표는 단 하

 

나이기 때문에 고통스럽다 해서 다른 대안을 찾을 수도 없다.

 

 

반복되는 고통은 심한 스트레스 뿐 아니라 무기력증과 우울증에까지 이르기도 한다. 이십대들은 이러한 위기

 

적 상황을 어떤 식으로 해소해 나가고 있을까. 저자는 그 해소 행위 중 핵심적인 것으로 ''게으른 자'와의 비교

 

에서 오는 위안과 만족'을 꼽았다. 여기에서 '게으른 자'는 '노력'을 하지 않아 충분한 학력을 갖추지 못했거나

 

혹은 안정된 고용 환경에 들어가지 못한 사람들을 이른다.

 

 

말하자면 이렇다. 지금 나는 힘들다. 하지만 누구나 겪는 일이다. 게다가 확실한 목표를 위해 노력하고 있고,

 

이는 언젠가 분명히 구체적으로 보상을 받을 것이다. 그래도 힘들다면 그렇지 못한 '게으른 자'들의 말로를 보

 

자. 나는 적어도 '그들보다는' 행복하다.

 

 

바로 그래서, 이들은 용산 철거민들에게 '처음부터 철거 지역에 안 살았으면 됐을걸'이라고 말할 수 있고, 미네

 

르바에게 '전문대 출신 주제에 전문가 행세를 하지 않았더라면 당하지 않았을 걸'이라고 말할 수 있고, 쌍용자

 

동차의 해고노동자들에게 '해고당한 순간에 뭔가 다른 방도를 궁리했어야지, 아무 일도 하지 않고 파업을 하며

 

권리만 주장하는 것은 게으르다'고 말할 수 있다. 심지어 저자도 한 마디 들었다. '시간강사가 교수보다 대우가

 

좋지 못한 것을 다 알고도 선택한 거 아니냐. 그러면 받아들이고 교수가 되기 위해 노력해야 한다'고.

 

 

이 과정에서 그들이 반복적으로 다시 강조하는 것이 '노력'이다. 세상에 안 힘든 사람 없다. 나도 살아남기 위해

 

죽도록 노력한다. '게으른 자'들의 처지는 안 됐지만, 노력했더라면 그렇게 안 됐을 것이다.

 

 

 

2-3.

 

3부 '괴물이 된 이십대의 자화상'에서는 그렇게 자기계발서의 논리를 내면화한 이십대가 드러내는 인식과 행위

 

의 양상을 밝혔다. 다시 정리하자면, 1부는 '왜 20대가 문제인가'이고, 2부는 '왜 그렇게 되었나'이고, 3부는 '그

 

래서 어떻게 되었나'이다.

 

 

저자가 관찰한 20대의 인식과 행위 양상 중 주목되는 첫번째는 '타인의 고통에 무감각'하다는 것이다. 남의 심장

 

마비보다 내 새끼손가락이 칼에 베인 것이 더 아픈 것이 사람이다. 그런데 자기계발서와 그 사회에서는 지금 20

 

대인 내가 겪고 있는 이 지독한 고통조차 '성장통'이라 한다. 그걸 다 지나가야 어른이 된다는 것이다. 게다가 자

 

기계발서의 주인공인, 즉 '성공한' 사람들의 고생과 고통을 읽어보면 참으로 지독하다. 이렇게 누구나 힘든 판에

 

서 '존버'하고 있는데, 너희들은 뭐가 힘들다고 그렇게 우는 소리들이냐. 힘든 상황에 가기 전에, 그렇게 되지 않

 

기 위한 '노력'은 충분히 했던 것이냐.

 

 

바로 그 질문에서 두번째의 특징이 나타난다. '편견의 확대재생산'이다. 패자는 패할 만한 이유가 있어서 패한

 

것이다. 귀책 사유는 개인에게 있다. 사회 탓하지 말아라.

 

 

세번째 특징 또한 위의 두 특징의 확장선 상에 있다. 이렇게 힘든 세상이다. 누구나 힘들고, 남 탓할 수도 없고,

 

탓해서도 안 되고, 탓해봐야 들어줄 이도 없다. 그래서 이십대는 '정해진 길'에 집착한다. 나 또한 패자로 여겨

 

지지 않기 위해서는 안전한 길을 택해서 충실히 따라가야 한다. 시장질서나 자본주의의 폐해에 대해 고민하는

 

것은 부질없고 때로 두렵기까지 한 일이다.

 

 

이런 20대가 그들 세대의 일반적 신분인 '대학', 즉 '학력'에 집착하는 것은 필연적 결과이다. 곧 연봉과 직장,

 

거주지 등에 집착하게 될 그들이 보이는 예후적 증상이다. '명문'과 '인서울'이 갈린다. 그렇다고 '인서울'이 학

 

벌 위주의 사회를 비판하는 것은 아니다. 그들은 다시 '인서울'과 '지방'을 갈라주길 요구한다. 그리고 '지방'은

 

'지잡'과의 차별을 요구한다. 이렇게 구분된 학력은 그 학교에 속한 학생의 취업 능력 뿐 아니라 교양과 심지어

 

는 인성을 판단하는 준거가 되기도 한다. 그것이 비록 충분한 논리를 갖지 못한 것이라 하더라도 상관없다. 그

 

런 '오해'를 받고 싶지 않았다면 오해를 받을만한 상황에 놓이지 않도록 '노력'을 했어야 했을 것이다.

 

 

3부의 마지막에 저자는 이들이 '이렇게 된' 주요한 환경을 밝혔다. 하나, 이들은 IMF때 유소년 기를 보냈다. 이들

 

이 최초로 학습한 생존 양식은 극단적 상황에 처한 부모 세대의 필사적인 노력이었다. 그런 그들이 대학에 진학

 

하고 노동 시장으로 나갈 무렵, 사회는 그 때 못지 않은 극단적 상황의 모습을 띄고 있었다. 배운 대처법을 떠올

 

리는 것은 당연한 순서였다.

 

둘, 대학의 경영학과 화. 서울 소재 한 사립대에 대한 저자의 조사에 따르면, 이 학교에는 총 25개 학과가 있는

 

데, 그 중 경영학을 단일 전공하고 있는 학생이 전체의 19%였으며 복수 전공으로 경영학을 택한 학생은 18%였

 

다. 25개 분과 중 하나일 뿐인 경영학과에 이 대학 학생 중 34%가 속해있는 것이다. '기업가적 자아'나 '효율성'

 

등의 단어를 강조하는 경영학과의 학풍에 좀 더 쉽게 노출되게 된 셈이다.

 

셋, '성공 후'만을 강조하는 사회 환경이다. 서적과 방송 프로그램 등에서는 얼마나 고통받고 있는지, 고통을 없

 

애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지 등에 대해 '힐링' 이상의 대안을 제시하지 않는다. 사회가 적극적으로 부각시키는

 

것은 '그런 고통을 참고 나면 얼마나 달콤한 과실이 기다리고 있는지'를 증명하는 소수의 사례들이다.

 

 

 

2-4.

 

4부 '자기계발 권하는 사회를 치유하자'는 이러한 문제 상황에 대한 나름의 대안을 제시한다. 저자는 가장 중요

 

한 대안으로 '자기계발의 오류'를 명확히 밝히자고 제안하고 있다. 살펴본 바와 같이 지금 20대의 행동과 인식

 

에 가장 중요한 준거틀은 자기계발이다. 그런데 이 자기계발의 논리과정에 결함이 있다면 그것을 따라야 할 필

 

요가 없지 않을까.

 

자기계발의 오류를 증명하는 방식으로, 저자는 먼저 자기계발서의 베스트셀러인 서울대 김난도 교수의 <아프니

 

까 청춘이다>의 사례를 들어 그 논리를 공박하고, 뒤이어 '기회의 균등성', '과정의 공정성', '결과의 정의로움'

 

이라는 기준으로 한국 사회를 분석한다. 이 책의 핵심 주장이 담겨있는 부분이므로, 어설픈 요약으로 그 논리에

 

흠결을 가하기보다는 관심있는 분께 직접 독서하시길 권하는 것 정도로 갈음해두고자 한다.

 

 

 

3.

 

인터넷 상의 이 책에 대한 서평 중엔 좋지 않은 것이 꽤 있다. 구체적인 내용을 읽기 전에 나는 그 악평들이 20대

 

본인들로부터의 반발이거나, 저자가 직접 밝히지는 않았지만 '기회의 균등성', '과정의 공정성', '결과의 정의로

 

움'이 지난 대선에서 문재인 후보의 주요한 구호로 쓰였던 만큼 우익들의 앞뒤없는 비난이겠거니 하고 생각했는

 

데, 사실은 '객관성'에 대한 지적이 가장 많았다.

 

대중서로 출간되긴 했지만 이 책은 기본적으로 사회과학 연구서이다. 사회과학에 요구되는 가장 중요한 덕목 중

 

하나가 바로 '객관성', 즉 '주장에 부합하는, 과학적으로 검증 가능한 논거를 갖추었는가'라는 사실에는 이의를

 

제기할 이가 많지 않을 것이다.

 

적어도 이 책에 한해, 그러한 지적은 타당하다. 저자는 서문을 통해 이 연구에 4년을 쏟았으며, 2000편이 넘는

 

에세이를 읽었고, 그 중 100편을 골라 집중 분석하는 한편 50명을 선정해 심층 인터뷰까지 진행하였다고 밝혔

 

다. 하지만 박사 논문이 아니라 이 책 내에서는, 준거 집단이 충분한 수를 확보한 것인지, '집중 분석'이나 '심층

 

인터뷰'의 방법론은 무엇이며 그것은 학문적으로 검증된 것인지 등에 대한 단서를 찾기가 어렵다. 꽤 많은 수의

 

장이 저자가 만난 학생과의 대화, 그리고 그에 대한 저자의 주관적 분석에 근거를 두고 있다. (특히 '경영학

 

커리큘럼에 자주 노출된 것'을 '괴물이 된 이유' 중 하나로 꼽은 부분은 좀 더 정치한 설명이 필요했다고 생각

 

한다. 주장을 부정하는 것이 아니라 경영학의 '일반적 학풍'이 무엇인지, 그리고 그것은 어떤 과정을 거쳐 수강

 

자에게 영향을 미치는지, 미치고 나면 어떻게 되는지 등의 과정이 제시되었어야 한다는 것이다. 주요한 근거가

 

되었어야 할 이들은 본문에서 대체로 생략되어 있고 경영학에 대한 저자의 혐오감 정도만을 희미하게 읽을 수

 

있을 뿐이다.)

 

아울러 대안에 대한 지적도 적지 않았다. 이십대에게 자기계발 논리가 이식된 것이라 치자. 그 자기계발의 논리

 

에 매커니즘 상의 결함이 있다는 저자의 지적 또한 사실이라 치자. 하지만 냉혹한 사회는 거기 그대로 있는데 이

 

십대를 지탱해 주고 있는 자기계발을 걷어치우면 그 자리에는 도대체 무엇이 들어가야 한단 말인가. 대안 없는

 

비판은 공허하다.

 

 

나는 위의 두 지적이 나름의 타당성을 갖고 있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그보다 더 강하게 드는 인상은 -이 인상이

 

대단히 자의적이라는 것을 전제하고- 가혹하다, 는 것이다.

 

우선, 저자가 선언한 바와 같이 이 책은 논문이 아니다. 사회의 한 현상을 고발하고 함께 고찰해 보자는 데 목적

 

이 있는 대중교양서이다. 스스로 문제라고 생각해 왔거나 혹은 이전에는 몰랐지만 책을 읽고 저자의 문제의식에

 

공감하게 되었다면 한 번 자리를 잡고 앉아 생각해 보면 될 노릇이고, 충분히 객관적이고 과학적이지 못하다고

 

여겨진다면 필요한 부분을 골라 읽거나 안 읽으면 그만이다. 혹은 다음 저작에서는 논문의 객관성과 대중서의

 

상업성을 잘 아우른 작품이 나와주길, 하고 바래보는 것도 좋을 것이다. 유의미한 문제의식이라고 생각한다면

 

날선 비판으로 그것을 꺾는 것보다는 좀 더 나은 모습을 갖춰 가도록 조언하고 격려하는 '따뜻함'이, 결과적으

 

로 독자 본인에게도 더 낫지 않을까. (그러나 다시 한 번 적듯이, 이는 개인적인 독후감이며 얼마든지 논쟁적일

 

수 있는 시각이라고 인정한다.)

 

둘째로 '대안이 없다'는 비판에 대해서는, 분명히 가혹하다고 생각한다. 분명히 해결되어야 할 문제를 지적한 사

 

람이 대안까지 내놓는다면 그것은 칭찬이나 존경을 받을 수 있는 행위일 것이다. 그러나 적소를 관통하는 대안

 

과 그 구체적 실천방안까지를 내놓지 못했다고 해서 저자로서의 책무를 다하지 못했다고 비난할 수는 없다. 문

 

제의 적시와 그 매커니즘의 증명은 그 자체만으로도 분명한 사상적-경제적 가치를 갖는다. 여기에 대안을 내놓

 

지 못했을 때 비난받아야 할 사람이 누구인지, 우리는 대체로 잘 알고 있다.

 

게다가 저자는, 명시적으로 드러나지 않았을 뿐 본문 전체를 통해 '공감'과 '연대', 그리고 그를 통한 '구조의 개

 

혁'의 중요성을 반복적으로 강조하고 있다. '왜 괴물이 되었나'는 의문은, 뒤집어 생각하면 '어떻게 하면 괴물이

 

안 되나'이기도 하다. 그러니까 '공감이나 연대와 같은 추상적 구호로는 부족하다' 라든지, '그렇다면 왜 그런 대

 

안을 구체적으로 적시하지 않았나'는 불만은 가능해도, '대안이 없다'는 지적은 불합리하거나 가혹하다.

 

 

 

본문 가운데 '야구 잠바의 사회학'이라는 소챕터가 있다. 2010년을 전후로 하여 학교 캠퍼스에 학교의 이니셜

 

이 새겨진 '야구 잠바'를 입고 다니는 대학생이 많아졌다는 현상을 바탕으로 해 20대 대학생의 학력에 대한 집

 

착을 설명하는 소챕터였다. 이 책의 내용과 책에서 인용하고 있는 다른 연구들을 만나기 이전에, 나 또한 그 시

 

기를 전후해 학교를 점령한 '야잠(혹은 '과 잠바'를 줄여 '과잠'이라고도 한다)' 현상을 주목하고 있던 터였다.

 

 

내가 십수년 째 재학중인 연세대는 예전부터도 '라이벌'로 호칭되는 고려대와 함께 과잠을 입는 문화가 잘 자리

 

은 편이었다. 그러나 내가 입학하던 2000년대 초반만 하더라도 과잠을 사 입거나 단체로 맞추는 것은 막 대학

 

합격한 신입생들의 과장된 통과 의례이거나 혹은 축제나 연고전을 앞두고 벌이는 일종의 단결 이벤트에 불과

 

다. 그나마도 과잠을 맞춰 입기보다는 과마다 그 과의 특성을 반영한 '과 티셔츠'의 제작 쪽이 더 보편적이었

 

것으로 기억한다. 부족 사회부터 내려온, 자기 집단만의 정체성을 확립하고자 하는 인간의 일반적 본능이라

 

할 수 있겠다. 아울러 이것은 개인적인 감상이지만, 과잠을 즐겨 입고 다니는 학생을 보는 다른 학생들에게는

 

'촌스럽다'는 인식이 있었다.

 

 

그런데 저자가 지적한 바와 같이 2010년을 전후하여, 과잠을 입은 학생이 캠퍼스를 뒤덮기 시작했다. 학생회에

 

있는 후배들을 통해 알아보니, 신학기와 동시에 과잠을 맞추는 것이 거의 일반적인 문화가 되었다고 한다. 이전

 

에는 안 그러다가 갑자기 왜 그렇게 됐니, 라는 질문에 그들은 특별한 답을 하지 못했다. 말하자면 이전에 없던

 

'유별난' 짓들이므로, 나는 애들한테 뭔가 심정적으로 결여된 바가 있었나 보다, 라고, 연애사나 인간사에서 얻

 

은 범박한 원칙을 적용한 뒤 사고를 멈추었다.

 

 

그리고 이 책을 읽으면서 나는 그 때에는 별로 주목하지 않았던 한 현상을 떠올렸다. 왜 과잠을 입니, 과잠을 입

 

으면 뭐가 좋으니라는 질문에 대한 후배들의 답 중에, '우리 연세'라는 표현이 반복적으로 등장했다는 것이다.

 

당시에는 '어지간히 연대 들어오고 싶었나 보구먼'이라고 가볍게 생각했는데, 지금 와 생각해 보면 이전에는

 

분명히 보편적이지 않았던 저 표현 속에서 과잉된 집착을 읽어낼 수도 있었다. 왜 그렇게까지 집착하는가, 를

 

계속해서 탐구했다면, 아마도 오찬호가 가 닿은 그 지점 언저리까지 갈 수 있었을 것이다.

 

 

이렇게 나는 내가 실제로 관찰하고 의문을 가졌던 한 현상에 대해 해답을 얻었다. 분량상 다 소개하지는 못했

 

지만 책 속에 소개된 20대의 '차가운' 자화상들 또한 계속하여 강단에 서 오면서 분명히 느꼈던 현상이기도 하

 

다. '비록 이 책에서는 엄밀하고 정확하게 증명되지는 못했지만', 지금 20대에게 무언가가 있다, 그리고 그것은

 

문제적이다, 라고 느끼시는 분이라면 자신있게 권해드린다. 기대에 준하는 소득이 분명히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