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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서일지

강준만, <멘토의 시대> 2

 

 

 

 

쓰다 보니 생각할 점들을 누락하고 요약만 일삼는 건 오히려 별 의미가 없는 일이라고 여겨져, 꼭 필요한 부분과

 

이런저런 내 군말들을 덧붙이다 보니 내용이 길어졌다. 두 편으로 나눈다. 앞 장에서는 열두 명의 인물들 중 다

 

섯 명을 소개했고, 여기에서는 나머지 일곱 명을 소개하기로 한다.

 

 

 

 

 

6. 멀티, 관리자형 멘토. 박경철.

 

 

 

 

 

개인적으로는 3사의 토론에 등장하는 패널들 전체 중에 세 손가락 안에 꼽게 좋아하는 박경철 안동신세계연합

 

클리닉 원장. 첨예한 논쟁을 벌이는 중이거나 혹은 상대방이 말도 안 되는 꼴통일 경우에도 절대로 남의 말을 끊

 

고 들어가지 않고 경청하는 자세야, 물론 아름답긴 하지만 그만이 갖춘 미덕은 아니다. 나는 그가 나오는 TV 토

 

론의 영상을 몇 개 정도 가지고 있고 틈이 나면 이따금 거듭해서 보기도 하는데, 그의 말은 꽤 빠른 편인데도 중

 

간에 끊기는 법이 거의 없다. 여기가 내가 매료되는 지점이다.

 

 

나도 말을 하는 직업을 갖고 있지만, 사람이 말을 하면서 끊기지 않기란 쉬운 일이 아니다. 입으로는 3,4초 전쯤

 

생각해 두었던 말이 나가고 있는데, 3,4초 뒤 생각할 말이 떠오르지 않을 때. 바로 이 '마가 뜨는 때'에 진짜 모습

 

이 나온다고, 나는 생각한다. 대개의 경우에는 '어', '음' 등의 소리를 내고, 숨길 것이 많거나 자의식이 과잉된

 

사람들은 '원만하게', '국민을 위해서' 따위의 알맹이 없는 소리를 주워섬긴다. 이런 순간이 좀처럼 없거나, 있더

 

라도 상황에 알맞으며 또한 알맹이가 있는 발언으로 정면으로 돌파하는 토론자는, 나는 유시민과 박경철 두 명

 

정도 뿐이라고 본다. 이건 비판 없이 쌓인 학식만으로는 돌파할 수 없는 경지이다. 적어도 자기 자장 안에 있는

 

지식은 모두 자신이 다시 씹어 재구조화시킨 것이며, 아울러 경험에서 비롯한 성찰까지 더해져 있지 않으면 어

 

려운 일이라고, 나는 생각한다.

 

 

박경철이 이런 면을 갖추게 된 것은, 강준만이 '멀티형'이라고 강조한 것과 같이, 그 자신이 여러 분야를 거쳐 끊

 

임없이 자신의 생각을 단련해 왔기 때문일 것이다. 알려진대로 그는 의사 출신인 한편 '재테크의 신'으로 불리웠

 

던 이력이 있으며, 방송인에, 저자에, 제1야당 공천심사위원에, 심지어는 청소년 멘토의 역할까지 행하였다. 어

 

느날 갑자기 등장한 영웅같은 사람이 아니라, 밥 먹으면 화장실 가는, 우리와 똑같은 사람, 그것도 40대 중반의

 

사람이 갖는 스펙트럼이라고 생각하면 도무지 믿을 수가 없을 지경이다. 게다가 어떤 분야든 그는 언제나 정상

 

의 자리에까지 올라갔다. 하나의 과정을 성취해나가는 과정과 그 다음의 과정으로 옮겨갈 때에, 그의 고민과 성

 

찰이 보통 사람의 몇 배에 달했을 것임은 쉬 짐작할 수 있는 일이다. 내가 그의 '끊기지 않는 말'을 존경하는 이

 

유는, 그 근원이 여기에 있을 것이라고 짐작하고 있기 때문이다. 나는, '노무현의 친구 문재인이 아니라 문재인

 

의 친구 노무현'이라는 말과 같이, 언젠가는 안철수의 친구 박경철이 아니라 박경철의 친구 안철수가 될 날이 반

 

드시 오리라고 예상한다.

 

 

강준만은 여기에 더해 박경철이 끊임없이 자기 객관화와 성찰에 투철한 면을 들어 그를 '관리자형'으로 분류하

 

기도 한다. 그리고 강준만은 박경철의 몇몇 과격한 언행들을 예로 들어, 안철수를 도와 정치판에 관여하게 되면

 

핏대를 터뜨릴 일이 많을 것이라고 예언하였다. 지켜보기로 하자. 아울러 박경철이 스스로 영어회화 실력이 중

 

2 정도라고 술회했다는 기록을 읽고 '세상이 공평한 점은 있구나'하고 흐뭇했다는 강준만의 결어는 이 책의 가

 

장 말랑말랑한 부분이다. 강준만을 귀엽다고 생각하게 될 줄은 전혀 몰랐다.

 

 

 

 

 

7. 상향 위로형 멘토. 김제동.

 

 

 

 

 

나는 사실 개그맨으로서의 김제동은 그리 좋아하지 않는다. TV 프로그램에서 개그맨으로서의 김제동의 전략은

 

전체의 맥락을 자신과 연결지은 뒤 반전을 시키거나 감동을 줌으로써 재미를 주는 데 특화되어 있다. 말하자면,

 

김제동은 자신에게 주목될 수 없는 프로그램에서는 힘을 발휘하지 못한다. 개개인의 기량보다는 패널간의 관계

 

나 현장의 분위기가 더 중요한 리얼 버라이어티에서의 실패나, '간다 투어'의 이경규, '밤이면 밤마다'의 탁재훈,

 

박명수와 같이 통일된 맥락을 만들지 않거나 만들더라도 자신이 가져가는 MC들과의 조합이 성공적이지 못했던

 

결과 등이 그를 증명한다. 그렇다면 자신에게 주목을 시키는 전략 자체를 바꾸거나, 혹은 주목을 끄는 방법을 더

 

세련되게 연마했어야 하지만, 그에게서는 특별한 변화를 볼 수 없었다. (물론 정치적인 상황 때문에 그에게 기회

 

가 덜 주어진 것은 충분히 감안해야 한다.) 그는 여전히 자신의 외모를 비하하거나 혹은 '내가 더 아는 것이 많다

 

'나 '내가 더 심한 것을 경험해 보았다'는 식으로 주목을 이끈다.

 

 

하지만 공연진행자로서의 김제동은, 존경한다. 나는 멀찌감치서 몇 차례 그의 공연을 본 적이 있었는데, 관객과

 

의 호흡을 재빠르게 잡아채는 능력은 지금까지 내 눈으로 본 사람 가운데 가장 뛰어났다. 진행자로서의 스탠스

 

뿐 아니라 시대정신과 공명하는 컨텐츠까지. 강준만이 뽑은 열두 명의 '멘토' 중 유일한 삼십대인 것에, 나는 아

 

무런 불만이 없다.

 

 

강준만이 지목하는 김제동의 멘토로서의 강점은 타인의 감정을 읽어내고 공감하는 능력과 자신을 낮출 줄 아는

 

자세이다. 두 요소는 기실 한 몸일 것이다. 본인이 약하고 여리기 때문에 다른 사람의 마음을 더 잘 살피고 위로

 

할 수 있게 되지 않았을까. 하지만 김제동의 이런 '아름다운 약점'은 그가 정치적으로 해석될 수 있는 발언들을

 

하기 시작하면서 여러 파장을 불러왔다. 소문으로만 돌던 정권 수준의 사찰도 결국 사실로 밝혀졌고, 그가 진행

 

하던 프로그램들에서 석연치 않은 이유로 하차하게 되는 일이 잦았다. '딴따라가 나댄다'는 상식 밖의 비판도 공

 

공연히 행해졌으며 포퓰리즘의 근원지로 지목되는 일도 있었다. 지인인 소설가 공지영의 언급에 따르면, 그는

 

지금도 약이 없이는 잠들지 못한다고 한다. 강준만은 이런 김제동에게 소셜테이너 이전으로 돌아가도록, 아니

 

그는 스스로 그렇게 할만큼 염치없는 이가 아니므로 그를 정치적 당파성 없는 자리에만 부르기로 하자고 건의

 

한다. 그라는 재능을 오랫동안 향유하기 위해. 김제동에 대한 강준만의 애정에 동의한다.

 

 

 

 

 

8. 자유, 개척형 멘토. 한비야.

 

 

 

 

 

 

'자유, 개척'이라는 유형 분류에 별다른 첨언은 필요없을 것 같다. <바람의 딸 걸어서 지구 세 바퀴 반>이 100만

 

부 이상, <바람의 딸 우리 땅에 서다>가 20만 부, <한비야의 중국견문록>이 48만 부, <지도 밖으로 행군하라>

 

가 41만 부 팔렸다고 하니, 그의 이력에 대해서도 굳이 다시 적을 필요는 없을 것이다.

 

 

<지도 밖으로 행군하라>가 출간된 후 4년동안 이 책을 읽고 해외 아동 후원을 신청한 이가 6만 명이 넘었다고

 

하니, 한비야를 '멘토'로 규정하는 것은 당연할 것이다. 젊은이들은 그의 책에서 열정을 배워 가고, 좀 더 나이든

 

사람들은 나이를 극복하는 면에 감동한다.

 

 

고백하자면, 나는 이렇게 박애와 열정과 도전으로 가득찬 사람에게는, 별로 흥미가 없다. 한비야라는 인물이 정

 

치적 성향을 가졌거나 논란의 대상이 아닌지라 강준만의 글 자체가 짧은 탓도 있지만 나 개인이 별로 관심이 없

 

는 부분이기도 해서 짧게 쓴다. 한비야를 폄하하는 것은 아니다.

 

 

 

 

 

9. 경청, 실무형 멘토. 김난도.

 

 

 

 

 

 

서울대 소비자학과 교수. <아프니까 청춘이다>의 저자.

 

 

강준만이 지적하듯, <아프니까 청춘이다>는 2011년의 베스트셀러인 한편으로 일부 지식인들의 비난과 조롱의

 

대상이 되기도 했다. 그는 이 책을 쓰기 위해 많은 청춘들을 직접 만나고 미니홈피, 트위터, 블로그를 통해 소통

 

했다고 밝히고 있지만, 그의 평소 멘토링은 늘 서울대 학생을 대상으로 한 것이다. 아무리 이태백이란 말이 유행

 

한지 십 년이 넘어가고, 20대 사망 중 반이 자살이라고 한다지만, 서울대의 청춘들이 지방대나 고졸의 청춘들만

 

큼 아플까.

 

 

'사회와 조직을 끌고 가는 톱의 자리에는 비명문대, 심지어 대학을 졸업하지 않은 분들이 여전히 훨씬 많다', '요

 

즘에는 좋은 회사일수록 인사에 그런 영향(인맥)이 없도록 철저히 막고 있다'같은 발언들은, 해당되는 학생들에

 

게는 당장에 위로가 될 수 있겠지만, 그들이 살아갈 세상이 과연 그 정도의 위로로 버텨낼 수 있는 성격의 것인

 

가? 김난도는 서울대학교 행정대학원에서 운영하는 국가정책 과정 지원자 중에 SKY 출신이 거의 없는 것에 놀

 

랐다고 하지만, 강준만이 다시 한 번 날카롭게 지적하듯, 그것은 전혀 놀랄 일이 아니다. SKY 출신들은 이미 인

 

맥이 있고 다른 기회들이 많이 있기 때문에 애당초 굳이 그런 과정에 지원하지 않는다.

 

 

김어준 총수 등의 다른 인사들이 비판하는 지점도 대개 그런 면과 상통한다. 서울대에서 석학사를 마치고 외국

 

대학에서 박사를 마친 뒤 모교의 교수가 된 이가, 주로 서울대 학생을 대상으로 한 멘토링에서, '청춘이란 원래

 

다 아픈 거니까 이 위로를 받고 견뎌 보렴'이라는 메시지가 얼만큼의 실질적인 도움이 될 수 있을 것인가.

 

 

그러나 강준만은 어쨋든 단기적으로나마 생산적일 수 있는 위로, 글쓰기에 대한 구체적인 조언, 등을 들어 <아

 

프니까 청춘이다>는 분명 좋은 책이라고 말한다.

 

 

 

 

 

10. 열정형 멘토. 공지영.

 

 

 

 

 

요사이의 활동상을 보자면 '열정형'으로 분류되어도 전혀 무리가 없을 것 같다. 나꼼수의 친구 역할을 위시하여

 

계속해서 벌여온 사회 참여상과 근래 출간되어 화제에 오른 쌍용자동차 르포 <의자놀이>까지. 지금 대한민국에

 

서 가장 뜨거운 작가임에는 틀림이 없다.

 

 

공지영에게는 여전히 비토의 시선이 많다. 90년대 페미니즘을 상품화하여 성공하였다는 문학계 내의 비토. 전두

 

환 정권 때 연대를 다녔음에도 운동 이력이 거의 없다가 이제야 활동하여 명성을 챙긴다는 운동계 내의 비토. 그

 

리고 세 번의 결혼과 각각의 결혼에서 얻은 성이 다른 세 명의 아이가 있다는, 사회 일반의 비토. 나는 각각에 대

 

해 그만큼의 이유가 있었을 거라 생각한다. 공지영의 소설이 여성을 집요하게 다루고 그들이 듣고 싶어하는 지

 

점을 들려주었던 것은 그 자신의 고민이 거기였기 때문일 수 있다. 전두환 정권 때이고 연대에 있었다고 해서 모

 

두가 극렬 투사가 될 것을 강요하는 것은 또하나의 폭력이다. 세 번의 결혼과 세 명의 성이 다른 아이는 어쨌거

 

나 개인사이다. 게다가 우연히 세 전남편의 성이 다른 것을 빌미로 삼아, '성이 다른 세 아이'라는 선정적 호칭을

 

유행시킨 시선은 아주 비열한 것이라고, 나는 생각한다. 그러나 '사람이라면 그럴 수 있다'는, 이해의 영역일 수

 

는 있어도 존경의 영역에는 들어가지 않는다. 나는 공지영을, 사회의 합리적인 주장을 하는 한 구성원으로서 존

 

중한다. 그러나 그를 존경하지는 않는다.

 

 

강준만은 나에게 공지영을 멘토로 삼도록 강요하지는 않는다. 다만 그런 삶의 이력이 어떤 사람들에게는 더 절

 

실한 멘토링일 수 있다는 점을 지적한다. <무소의 뿔처럼 혼자 가라>는 여성과 많은 학생들에게 용기를 주었고,

 

아이의 이야기도 외롭다고 생각하는 이들에게는 큰 위로가 되었다.

 

 

그리고 강준만은 공지영의 삶에서 '정치적 올바름'이라는 일관된 코드를 찾아낸다. 공지영은 이론으로 좌파가

 

된 것이 아니라, 정치적으로 올바를 것을 지향하는 기질을 타고 난 경우라는 것이다. 페미니즘의 자의식적 발현,

 

약자에 대한 강한 감정 이입 등이 그 사례이다.

 

 

 

 

 

11. 자유, 도인형 멘토. 이외수.

 

 

 

 

 

작가 이외수의 호는 격외옹(格外翁), 격식이나 틀 바깥에 선 노인이라는 뜻이다. 사실이다. 지하철의 광고에서는

 

이따금 스키니 바지를 입고 젊은 여자들과 껴안고 있는 그의 사진을 볼 수 있으며 팝업 광고에는 중국식 도인 복

 

장을 하고 장풍을 쏘는 모습이 나오기도 한다. '하악하악'과 같은 인터넷 신조어들을 과감히 책 제목으로 차용하

 

기도 하고, 절친하게 교류하는 것으로 알려진 이들도 김장훈, 이하늘과 같이 사회의 보편적인 '규격'에서 벗어난

 

듯한 인물들이 많다. 단지 '기이하다'고 평가되던 이 작가는, 시대가 변하면서 '쿨'하며 '간지나는' 멘토의 자리

 

에까지 올라갔다.

 

 

강준만이 보는 그의 멘토링의 핵심은 아포리즘이다. 아포리즘이란 격언이나 경구 등의 간결한 형태로 메시지를

 

전달하는 형식, 혹은 그 격언, 경구 자체를 가리키는 말이다. 이외수는 설명하거나 설교하지 않는다. 경험이 있

 

는 사람이라면 알아볼 수 있는 형태의 '깨달음'을 건넬 뿐이다. 거기에 공명하는 이라면 단순히 마음에 드는 작

 

가나 책을 발견한 것이 아니라 스승을 발견한 기쁨을 알게 될 것이다. 이외수의 책을 읽고 처음으로 독서에 취미

 

를 붙였다고 술회하는 이가 많은 것은 결코 우연이 아니다. 이외수의 책은 책의 형태를 취한 '말씀'이다.

 

 

트위터는 이런 특성을 지닌 이외수에게 천상의 놀이터와 같은 곳이었다. 게다가 '격외'를 자처했던 성향이라, 정

 

부나 기득권층의 부조리한 면에 대해 그가 신랄한 표현을 날릴 것은 기실 자연스러운 일이었다. 트위터들은 이

 

런 그에게 열광했고 '꽃노털 옵하'와 같은 호칭을 붙이기에 이르렀다. 하지만 그는 애당초 이념으로 세상사를 재

 

단하던 인물이 아니었기 때문에, 몇몇 사건에서는 일반적으로 '진보적' 성향을 지닌 이가 많은 트위터리안들과

 

배치되는 의견을 내었다가 포화를 맞기도 하였다. 연평도 사건이 터진 이후 '노구 이끌고 전장 간다'는 표현을

 

썼다가 전쟁을 부추긴다며 비난을 당하기도 했고, 올 4월의 총선에서 자신이 거주하는 지역의 후보 중 새누리당

 

한기호 후보를 응원하였다가 된서리를 맞기도 했다. 이외수는 이명박을 비판해 인기를 얻겠다든지, 트위터리안

 

의 마음을 사기 위해 수위높은 발언들을 한 것이 아니었다. 이유없이 머리를 감지 않았던 것처럼, 글이 안 써지

 

자 감옥을 만들고 스스로 걸어들어갔던 것처럼 이외수로 살아왔기 때문이다. 강준만은 여기에도 공지영에게처

 

럼, 진영 논리에 함몰되지 말고 항상 양쪽의 비판자로 남아주길 기원한다.

 

 

 

 

 

12. 재미계몽형 멘토. 김영희

 

 

 

 

'쌀집아저씨' 김영희. 현업에 복귀하는 것만으로 무릎팍 도사에 출연하였던 예능 PD계의 전설. 양심냉장고를 선

 

물했던 <이경규가 간다>, 선행을 실천한 시민을 찾아가는 <칭찬합시다>, '기적의 도서관' 짓기라는 성과를 냈던

 

<책책책 책을 읽읍시다>, 0교시 폐지를 이끌어낸 <아침밥을 먹자> 등의 일련의 프로그램 들을 통해 개인적으로

 

는 '공익예능 PD'라는 칭호를 얻은 한편으로 예능의 사회적 역할을 개척하였다는 평가를 받았다. 2008년부터

 

2010년까지 한국방송프로듀서연합회 회장을 지내고 MBC에 평PD로 복귀하였다. 그는 이미 5년 전인 2005년에

 

MBC 예능국 국장을 맡은 바 있었다. 그럼에도 현장에 남고 싶다는 본인의 의지로, 직급 상으로만 보면 '강등'을

 

택한 것이다.

 

 

퇴근 길 길거리나 소주집에서 만난 아버지들의 애환을 들었던 '우리 아버지', 개발도상국에 우물을 뚫어 주거나

 

책을 전달하였던 '단비'등이 시청률 부진과 과도한 제작비 등의 이유로 실패한 뒤, 그는 '나는 가수다'라는 포맷

 

을 들고 나타났다. 일요일 저녁 황금시간대에, 예능인들의 활약을 극도로 자제시키고 방송에 출연 기회가 상대

 

적으로 낮았던 명가수들을 모아 배틀을 시킨다는 이 포맷은, 방송 시작과 동시에 격렬한 호응과 논란을 낳았다.

 

가수의 가창력에 어떻게 순위를 매길 수 있는지, 경쟁 만연의 시대에 주말 저녁에까지 서바이벌 현장을 봐야 하

 

는지 등의 토론이 연일 포털을 장식했지만, 적어도 김영희가 다시 한 번 '재미'의 영역을 확장시켰다는 데에는

 

이의가 없었다. 생각해 보면 김영희는 언제나 거기 있었던 재미를 다시 한번 일깨운 것 뿐이다. 주말 저녁에는

 

반드시 개그맨을 봐야 하고 연예인의 사생활을 들어야만 한다는 법은 없다. 사람은 착한 일을 할 때에도, 좋은

 

노래를 들을 때에도 '재미'를 느낀다. 강준만은 그런 차원에서 김영희의 다음 발언에 주목한다.

 

 

'재미라는 것은 무시되어야 할 가치가 아니다. 내가 생각하기에는 휴머니티와 거의 동등한 가치가 재미다. 인간은 재미라는 가치가 없으면 행동하지 않는다.'

 

 

강준만은 여기서 나아가 '재미계몽'이라는 개념을 제시한다. 세상에 계몽이 없을 수는 없다. 사람들은 계몽을 거

 

부한 것이 아니라, 재미없고 일방향적인 계몽을 거부한 것 뿐이다. 여기에 참고할 수 있는 사례가 바로 '김영희

 

식 법칙'이라는 것이다. 강준만은 소셜테이너들과 진보 정당에게 바로 이 '김영희식 법칙'을 배우길 주문한다.

 

도덕적 우월감보다는 재미의 가치를 좀 더 고민해 볼 것. 이 건 '나는 꼼수다'를 통해 이미 증명된 '김어준식 법

 

칙'이기도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