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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서일지

강성률, <은막에 새겨진 삶, 영화> (한겨레출판. 2014, 7.)

 

 

 

인천과 관련이 있는 하나의 소재를 정해 인천의 문화를 들여다 보고 크게는 인천이란 지역의 공간적 특수성을 고찰해 보는 '문화의 길' 시리즈. 그 8권이다. 이 카테고리에는 시리즈의 7권으로 인천의 야구사를 정리해 놓은 <삶의 여백 혹은 심장, 야구>를 소개한 바 있었다.

 

 

책은 총 4부로 나뉘어져 있다.

 

 

1부 '인천, 근대와 영화의 시발점'에서는 개항부터 2014년 현재까지 인천의 영화사를 개괄한다. 약 5, 60쪽의 분량인 만큼 인물과 사건을 모두 소개하지는 못하고 개항기, 일제 시대, 산업화 시대, 그리고 현재의 순으로 시대를 뚝뚝 끊어 해당 시기의 주요한 영화 공간과 몇 가지 사건을 소개하는 데 주력하고 있다.

 

 

2부 '인천은 항구다'와 3부 '섬의 도시 인천'은 한국 영화가 인천을 바라보는 시선에 관한 챕터이다. 전국의 광역시 중 인구 수로는 부산에 이어 두 번째이고 간척과 합병 등을 통해 행정 구역 또한 계속해서 팽창 중이지만 뭐라고 하더라도 영화 속에서의 인천은 항구와 섬이다. 객관적으로 드러나 있는 결과가 그렇다. 인천 사람에게 인천을 설명하라고 하면 항구나 섬을 말하는 사람은 거의 없을 것이다. 하지만 영화는 어쨌든 서울에서 만들어지는 것이고, 서울 사람들이 보는 인천은 항구와 섬이다. 그것도, 부산까지 가려면 돈이 드는데 마침 가까운 곳에 있어줘서 고마운 정도의 항구와 섬이다.

 

 

4부 '인천의 속살을 담은 영화, 영화인들'에서는 제목 그대로 인천 출신의 영화인이 찍은 영화나 혹은 인천의 지리적 명소가 등장하는 영화를 직접 소개하고 있다. 언급되는 영화는 <고양이를 부탁해>와 <파업 전야>, <북경반점>, <수퍼스타 감사용>, <비상>, 그리고 임순례 감독의 작품들이다. 그런데 이 장에서는 영화를 통해 '인천의 정체성'을 보여주겠다는 기획 의도가 다소간 흐릿해지는 부분들이 있어서 좀 아쉽다. 

 

이를테면 <파업 전야>나 <북경 반점>은 분명 남동 공단과 동인천 차이나 타운이라는 인천의 구체적 공간에서 출발한 영화들이다. 그러나 해당 영화의 주요한 메시지가 부조리한 노동의 해악을 폭로하고 노동자의 연대 의식을 강조하는 것, 그리고 사람의 감성을 위로하는 음식 영화로서의 매력이라는 필자의 분석은 그 영화가 갖는 유한 특성에 대한 설명을 될 수 있어도 왜 이 영화가 인천에서 찍혀야 했는지, 이 영화에는 인천의 무엇이 녹아 있는지에 대한 답은 될 수 없다.

 

<수퍼스타 감사용>과 <비상>의 경우에도 필자는 역경을 딛고 승리를 거두는 스포츠 영화의 장르적 매력을 설명하는 데 주력하였다. 하지만 삼미슈퍼스타즈와 인천 유나이티드의 실화에는 거기에서 더 '극적인' 장면이 나올 수 있었던 이유, 그러니까 이런 영화를 찍고자 했을 때엔 반드시 인천으로 가야만 하는 이유가 있었다. 지역민들의 유난히 낮은 애향심, 최근까지 대단히 열악했던 스포츠 시설, 스폰서가 되어줄만한 대기업의 부재, 그리고 지자체의 무관심 등, 인천의 스포츠 환경에는 일이 안 되기 쉬운 구조적 요소들이 널려 있었다. 드라마는 하늘에서 떨어진 것이 아니다. 이 정도까지는 충분히 가 닿을 수 있었던 것이 아닌가 하는 아쉬움이 따른다.

 

임순례 감독의 작품군을 분석하는 글의 도입부에서는 '그의 영화에는 인천의 느낌이 있'는데, 그것은 '주변부 인생의 고군분투기'를 '사람 냄새가 나'게 그리는 것이다, 라는 짧은 분석이 있긴 하다. 하지만 필자는 그것이 왜 인천의 느낌이고 이 느낌은 어떻게 해서 생겨난 것이며 영화에서는 어떤 식으로 표현되었는지 등에 대한 추가적인 설명 없이 '주변부 인생'이라는 키워드로 임순례의 영화들을 분석하기 시작한다. 분석의 과정에서 종종 언급되는 것은 이 '주변부'를 만들어낸 것이 사회의 구조라는 지적인데, 이는 분명 일정하게 유효한 것이긴 하지만, 여전히 왜 그 영화를 '인천 영화'로 분류했는지에 대한 답은 되지 못한다.

 

이런 갈증을 해소해주는 것은 <고양이를 부탁해>에 관한 분석 글이다. 이 영화의 내용 자체가 애당초 인천 출신여학생들이 성장하며 겪는 구체적 고민들을 다루는 것이었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영화 속에서 서울 생활에 관한 이야기가 빈번하게 나오는 것에 대해 '인천의 지역적 특성은 결국 서울과의 관계 속에서 형성'된다는 지적은 학술적일 뿐만 아니라 정서적으로도 진실에 대단히 가까운 통찰이라고 생각한다.

 

 

상술한 바와 같이 깊이에 있어 아쉬움이 없지는 않았지만 영화라는 흥미로운 소재로 내 고향 인천을 다시 본다는 재미는 분명히 있었다. 독서를 마친 뒤에도 달뜬 열을 가라앉히지 못하고 외부인, 특히 '서울 사람'의 인천에 대한 시선과 인천 사람이 인천을 보는 시선 간의 간극에 대해 한참동안 생각에 빠져있었던 것도 즐거운 경험이었다. 단, 지난 번 <삶의 여백 혹은 심장, 야구>의 경우와 마찬가지로, 야구나 영화를 좋아하는 사람, 아니면 인천 사람을 제하고 나면 누구에게 선뜻 권할만한 책인가 생각해보면 꺼려지는 데가 있다. 개인적인 의미와 재미를 위해서라도 이 시리즈는 계속 읽어나갈 생각인데 그 자취를 남겨두는 정도의 의미는 있겠지 싶어 독후감을 써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