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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기장/2010

근하신년 마침내 서른이 되기도 했지만, 개인적으로도 풍파가 많았던 한 해라 올 해에 스스로에게 일어난 가장 큰 변화라면 대 체로 심드렁해졌다는 것을 꼽겠다. 크게 슬프거나 고뇌하지 않게 된 대신, 뛸듯이 기쁘거나 숨이 멎을 것처럼 놀라는 일도 적어졌다. 세상살기는 편해지고, 꿈자리는 비루해졌다. 그런 한 해라도, 한 해는 한 해. 빼거나 버리는 일 없이 쌓 아두었던 갑자 위에 턱 얹어두고 새 해 타먹으러 간다. 올리는 사진은 동백섬 앞바다의 일출 사진. 때로 날이 흐리고 구름이 많아 비추는 곳이 좁아지더라도, 해는 반드시 빛을 드리운다. 그건 변하지 않는다. 이 당연한 사실에 위로받을 이가 적지 않은 한 때인 것으로 안다. 사진을 그대로 새해 인사 삼아 부친다. 더보기
한밤 창 밖 연극의 뒷 무대같은 연희동 오밤중. 한참을 쳐다봤다. 더보기
화분 큰 방으로 이사를 오면서 방 안에 꼭 두고 싶었던 것 중의 하나였던 큰 화분. 쌀 사러 나갔다가 연말 할인 찬스를 잡아 돈을 아낀 기념으로 샀다. 키워보고 죽이지 않을 정도는 된다 싶으면 점점 큰 것들을 사 보려고 한다. 사진으로는 많이 작아 보이지만 실제로는 내 손뼘으로 두 번이라 보기도 흐뭇하고, 나무보다 비싼 새하얀 사기 화분도 빤딱빤딱한 것이 정갈해 보여 자꾸 쳐다보게 된다. 물을 주면 화분에서 머금는 소리가 나는데, 위쪽에 깔린 자갈이 내는 소리와 아래쪽 의 흙이 내는 소리가 각각 다르다. 귀를 대고 가만히 듣고 있으면 마음이 적지않게 편안해진다. 나이를 많이 먹고 돈 많이 벌면 책보다 화분이 더 많은 서재와 과일나무와 계절 꽃들이 그득그득한 텃밭을 갖고 싶다. 더보기
난로 는 뻥. 실은 방에 있는 조리용 전열기이다. 교양 떨고 싶은 아침엔 스크램블 에그와 베이컨을 익혀 주고 눈내리는 밤엔 교토 어디인 것마냥 가쓰오 우동을 끓여주기도 하는, 30대 독신귀족의 마음 속 세계화 파트너이다. 호흡기가 좋지 않 은 나는 건조한 시기가 오면 머리맡의 물컵에 항상 물을 채워 놓는다든지 수건을 적셔 널어 놓는다든지 하는 수단을 강구해야 하는데, 라면을 끓여먹고 난 뒤 옛 생각이 나 장난을 쳐 봤다. 가습기가 없던 시절에 가정에서는 빨래줄을 방에 걸거나 대야에 물을 떠 놓거나 하는 방안이 있었지만 교실에서는 난 로 뚜껑에 물을 붓는 것 외에 딱히 수가 없었다. 반드시 해야 하는 일이긴 하나 위험하다면 위험한 일이라 담임 선생님 만이 주전자를 쥘 권한을 갖고 있었는데, 6학년 때의 어느 쉬.. 더보기
새로운 길 질질 끌어오던 석사 논문을 마치고 3년 과정의 우클렐레 전문 학교에 들어가기로 했다. 끝까지 수강할 수 있을지는 모 르겠지만 처음 등교를 하는 아침의 기분은 아주 즐거웠다. 교내의 다른 반은 평범한 고등학교와 다를 것이 없었다. 까 까머리의 사내녀석들과 단발의 소녀들이 오즈의 마법사에 나오는 원숭이들처럼 꺅꺅 소리를 지르며 복도를 뛰어다니 고 있었다. ㄱ자로 꺾어진 복도를 돌자 '우클렐레 반'이라는 명패가 보였다. 시작한지 몇 분이 지나, 교실에 이미 앉아있던 학생들 이 뒷문을 열고 들어가는 나를 일제히 쳐다 보았다. 자리를 찾아 주섬주섬 앉는데, 콧수염을 기른 선생님이 자기소개 와 연주를 시켰다. 천천히 의자에서 일어나며 쭉 둘러보니 15-6명의 학생들은 모두 외국인이었다. 이름과 나이, 그리 고 비교.. 더보기
부산 다녀왔으예 1박 2일의 짧은 일정에 비해 여러 군데를 돌아다녔기 때문에, 후에 일기를 쓸 때 잊지는 않을까 걱정이 되어 여정만을 간단히 적어둔다. 삼백여 장의 사진을 편집하고 그에 딸린 글을 쓰는 것은 푹 자고 난 뒤로 미룬다. 16일 10:00 서울역에서 부산행 KTX 탑승. 동반석. 12:30 부산역 도착. 부산 지하철 탑승. 부산은 지하철 기본비용이 990원. 13:30 숙소인 한화리조트 도착. 짐을 푼 뒤 택시를 타고 달맞이고개로. 택시는 기본요금. 14:00 달맞이 고개의 '面食家'에서 점심식사. 해물짬뽕과 볶음밥. 15:00 산책 시작. 달맞이 고개부터 해운대를 거쳐 동백섬 입구를 지남. 17:00 바다가 잘 보이는 커피 빈스에서 일몰 감상. 18:00 숙소 인근의 홈플러스에서 광어회와 과일 구입. 19.. 더보기
최군의 최근의 취미생활 우쿨렐레 (Ukulele) 다. 네이버 백과사전에서 우쿨렐레를 찾아 보면 여러 개의 설명이 나오는데, 대강을 종합해 보면 다음과 같다. 우쿨렐레 : 류트족에 속하는 4현의 발현악기. 우쿨렐레란<뛰는 벼룩>을 뜻하는 하와이어이다. 1870년대에 포르투갈 인에 의해 도입되었다고 한다. 태평양 포르투갈계의 폴리네시아인 사이에 유행하며 형태는 기타를 작게 한 4현의 악 기이다. 주로 하와이언 음악에 활용되는데 간단하게 화음을 얻을 수 있어 가정 악기로도 널리 보급되고 있다. 종류는 스탠더드 말고도 테너, 바리톤 등이 있다. 위에서 테너와 바리톤 등으로 제시된 종류의 기준은 크기와 음색이고, 모양에 따라 일반형, 즉 기타의 축소형과 사진 에서 내가 들고 있는 파인애플 형으로 나뉜다. 실제 나는 소리에는 별 차이가.. 더보기
리영희 선생님 별세 웃고 계신 사진이 있어 다행이다. 요사이 빠져 있는 취미가 있어 일기장 돌보기를 소홀히 하느라, 며칠이나 차이가 나 는 부음인데도 이렇게 연이어 올리게 됐다. 그래도 적어두지 않으면 안 될 일이다. 작은 아버지는 집안의 윗 대에서 유일하게 대학을 나오셨다. 일찌감치 공부로 길을 잡은 내게 다른 조카들보다는 조금 더 많은 관심을 보여 주셨는데, 회사에서 인재로 뽑혀 일본으로 장기 해외 근무를 나가시던 때 갖고 계신 천여 권의 책 들을 우리 집에 맡긴 데에는 모종의 기대가 있었다고, 나는 생각한다. 청소년기의 나는 거기에서 '전환시대의 논리'와 '새는 좌우의 날개로 난다'를 만났다. 선생을 마음의 은사로 섬겼던 세대와는 못해도 반 세대 정도의 차이를 갖지만 오 마이뉴스나 미디어오늘도 없었고 하다못해 십이년 .. 더보기
코미디 배우 레슬리 닐슨 별세 향년 84세. 사인은 폐렴으로 인한 합병증이라고 한다. 중학교 3학년의 겨울, 고등학교 입학시험을 치루고 온 뒤 등교를 해도 수업이 없던 때에, 학교의 후진 TV를 통해 처음 보았던 '스파이 하드'의 충격이 아직도 기억난다. 세상에서 가장 멋진 배역 중 하나라고 생각하는 코믹 스파이에 대한 동경은 이후 '오스틴 파워스'의 마이크 마이어스와 '겟 스마트'의 스티브 카렐로 옮겨 갔지만, '무서운 영화' 시리즈와 '수퍼 히어로'등의 패러디 무비에서 녹슬지 않은 감을 뽐내시는 모습을 보며 항상 기뻐해 왔는데. 그로 인해 세상에 뿌려진 웃음이 얼마나 많을 것인가. 없으면 좋을 사람이나 없어야만 하는 사람이 넘쳐나는 판에, 있 어서 정말 좋은 사람이었다. 꼭 있어야 했던 사람이라는 무거운 호칭은 드려도 아마 당신께.. 더보기
북한의 연평도 포격 사건 이 사건의 공식 명칭은 아직 정해지지 않았다. 언론사 별로 임시로, 혹은 각자의 사상적 차이로 '남북 연평도 포격전', 또는 '북 연평도 도발'등의 이름을 사용하고 있다. 내용은 다음과 같다. 일기를 쓰고 있는 오늘인 2010년 11월 23일 화 요일 오후 2시 34분, 북한이 서해의 연평도에 수십 여 발의 해안포를 발사하였다. 관계자에 따르면 최소 백발, 많게는 이백 발에 이르렀다고 한다. 합동참모부는 우리 군이 13분이 지난 2시 47분, 80여 발의 대응사격을 했다고 발표했다. 병장과 이병, 두명의 군인 사상자가 나왔으며, 민간인 포함 중경상자는 현재까지 이십여 명에 이른다. 연평도 주민들 은 여덟시 반 경 연안부두로 대피했지만 두 명이 행방불명 중이라고 한다. 국방부는 서해 5도 지역에 진돗개 하.. 더보기
쪽잠 꼭 자야 하고, 몸 상태로도 푹 자는 것이 이상하지 않은 밤에 갑작스레 깨어 내내 잠들지 못하면, 나는 만났어야 했지 만 만나지 못 했던 사람에게 무슨 일이 생겼거나, 겪었어야 했는데 겪지 못 한 일이 일어나고 있는 것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든다. 삼십 분도 못 자고 깨 버린 새, 자기 전 읽었던 마츠모토 타이요의 [吾]가 꿈에 나왔다. 더보기
태율 엄마에게 전화가 왔다. 잘 때 몸에 무언가 걸치는 것을 좋아하지 않는다. 때문에 사놓고도 쓰지 않던 수면 안대를, 호기심 삼아 착용하게 된 뒤로 이사온 뒤 원치 않게 일반인 스케쥴에 맞춰졌던 수면 시간이 다시 아침해와 함께 잠드는 것으로 돌아갔다. 커텐 을 치지 않고 자더라도 걱정 없다. 눈을 뜰 때까지 천지는 무사 깜깜이다. 덕분에 꿈을 꾸는 일이 다시 많아졌다. 아마도 비정상적인 시간에 수면을 취하는 탓에 얕은 잠이 많아졌기 때문일 것 이다. 그러던 며칠 전이다. 아주 즐거운 꿈을 꾸어서 웃으며 일어났는데 잠시 물을 마시는 사이에 까먹어버렸다. 꼭 기억을 해 내고 싶었기에 미간을 찌푸리고 머리를 굴려 봐도 영 떠오르질 않았다. 책상에 앉아 컴퓨터를 켜며 나도 모르게 노 래를 흥얼거렸는데, 뜬금없는 동요가 입에서 흘러 나왔다.. 더보기
노무현 전 대통령 묘역 인분 투척 사건 요사이는 정국에 관한 일기를 잘 쓰지 않는다. 생색내기에 그쳤을 뿐이고 그나마 생색도 제대로 못 낸 G20이나 영부 인 로비 사건, 청와대 대포폰 사용, 삼성의 MBC 도청, SSM법의 파행적인 통과 등 하나하나 몇 편씩 일기를 써도 모자 랄 사건들이 매 주 터지는 판이지만 결국 법 위에 서는 자들이 있다는 것만 다시금 확인하는 결과로 수렴되기 때문에 진이 빠져 버린 것이 큰 원인이다. 덕분에 여름까지도 활발하게 읽고 이리저리 곰씹어보던 사회과학 서적들도 날이 추워지면서 뜸하게 잡 는다. 몇 달 전 도서관에 예약을 걸어 놓았던 책들의 도착 소식이 문자로 전해지면, 이제는 귀찮음을 부끄러워 하면서도 귀찮 다. 와중 봉하마을의 노무현 전 대통령 묘역에 60대의 남성이 인분을 투척하다가 잡혔다는 뉴스를 읽었다.. 더보기
The Simpsons S22 e04, <Treehouse of Horror XXI> 카우치 개그 미 시트콤 심슨 가족의 한 시즌 가운데 매해 할로윈 언저리에 규칙적으로 등장하며 언제나 가장 기대되는 에피소드인 , 어느덧 스물한번 째이다. 프로그램 자체의 정체성 상 여타의 에피소드들에서도 블랙 코미디 나 사회, 정치의 풍자, 그리고 유명 작품 패러디 등을 심심치 않게 발견할 수 있지만 이 에피소드에서는 그러한 요소들 이 반드시라고 해도 좋을 정도로 등장하며 셀러브러티의 목소리 출연과 호러에 바탕을 둔 잔혹한 연출까지 종종 함께 만날 수 있어 즐겁다. 사실 어떤 프로그램을 아무리 즐겁게 시청하더라도 따로이 스샷까지 몇 장씩 정성스레 따다가 일기에 쓰는 경우는 거 의 없는데, 매번 다른 내용이 나오기로 유명한 심슨 가족의 카우치 개그가 이번 에서는 가 장 좋아하는 시트콤 의 인트로를 패러디했길래 깔깔대고.. 더보기
부당거래를 보았다. 유령백화점 가든 파이브에서 이번 주말에 있는 시제사를 위해 정장을 한 벌 구입하고 영화를 보았다. 과 비슷한 설정에 같은 콤비이길래 큰 기대는 되지 않았던 . 나는 꽤 많은 사람들과 같이 무릎팍 도사를 보고 난 뒤 팬이 된 것이 아니라 는 물론 의 DVD까지 기꺼이 구 입한, 말하자면 류승완 감독의 꽤 깊은 팬이라고 할 수 있는데, 사실 어떤 한국 영화 감독을 좋아하세요, 라는 질문을 받았을 때 류승완입니다라고 대답하는 것은 그리 녹록한 일이 아니었다. 소림축구 이전에는 대형을 대형이라 부르지 못 했던 주성치 팬들의 그 심정 백분 이해한달까. 류승완 감독은 하고 싶은 이야기가 명확하다는 뚜렷한 장단점을 가졌다. 대표적인 장점으로 꼽히는 그의 박력, 곧 알 기 쉬운 구조의 이야기를 액션의 힘을 빌어 한방에.. 더보기
그림을 그려 선물로 전한다. 는 것은 아주 신나고 가슴떨리는 일이다. 새로 자른 머리 사진은 처음 올린다. 삼청동에서 산 머플러와 함께. 더보기
삼청동 뒷골목 2층 카페   괴상할 정도로 붐비는 인파에 휩쓸리다 엉겁결에 들어간 커피숍에 앉아 생각해 보니, 주말에 삼청동에 간 것은 처음이 었다. 여러 블로그를 통해 들끓는 사진 찍사들과 곳곳에 일어나는 공사 때문에 삼청동이 예전 삼청동이 아니다, 라는 이야기는 접한 적 있지만 평일 낮 한적한 삼청동을 종종 찾아 즐거운 시간을 가졌던 나로서는 삼청동이라는 트렌드 아이콘을 일반인들과 공유하게 된 몇몇 블로거들의 건방진 자의식이라고 치부해 왔는데 주말의 삼청동은 과연 불평할 만 했다. 홍대나 인사동처럼 볼 거리, 혹은 카페가 곳곳에 널려 있는 것도 아닌데 왠 사람들이 그렇게 많은지. 그 정도 수의 사람들이 거리에서 누릴 수 있는 문화경험이 거의 없는데도 굳이 몰려든다는 것은 역설적으로 서울이 시민들의 문화 수요에 제대로 응하.. 더보기
이태원 어느 술집을 막론하고 이태원 뒷골목의 노천 좌석은 언제나 홈런이다. 적당히 들썩들썩한 분위기와 술집마다 있는 기네스 드래프트. 훌륭하다. 만족스럽다. 더보기
이 낙서를 발견한 곳은 전간기(戰間期)의 일본에서 튀어나온 듯한 홍대 뒷골목의 사케 집. 나는 화장실이나 술집의 벽에 남긴 낙서는 대체로 지나친 자의식의 표출이라고 생각하여 눈여겨보지 않는 편인데 이날은 정말 깔깔 웃고 나서 혼자 감탄하였다. 유머로 시작하여 인생의 철리로 끝나는 이 위대한 리플의 향연. 더보기
통장에 돈이 새벽녘 첫 눈만큼 쌓였다. 해만 뜨면 이삼분 내에 녹아버릴 양이지만, 그래도 등록금 등과 같이 특정한 목적이 있 는 목돈을 잠시 담아두던 경우를 제하면 몇 년 만에 처음 있는 일이다. 꽤 오랜 기간 그 달에 다 써버릴 만큼의 돈만을 벌며 살아왔기 때문에 큰 욕심 없이 지낼 수 있었는데, 쌓인 모양새를 보니 더 쌓아놓고도 싶고 쌓아놓은 걸 굴려보고 도 싶은 간사스런 마음이 든다. 역시, 군자가 되는 것보다는 소인이 될 환경을 만들지 않는 편이 훨씬 쉽다. 날만 따뜻 했더라면 오토바이 좋은 거 한 대 사서 탕진해 버렸을 것인데. 더보기
2006년 8월 2일, 제대 두 달 전. 인천의 방을 정리하다가 CD 한 묶음이 나와서 버릴 건 버리고 남길 것은 DVD로 합쳐 놓으려고 내용을 살피던 중 찾았 다. 혹여나 감찰 나왔을 때 걸릴까 싶어 CD에 아무 라벨도 붙여놓지 않았던 모양이다. 덕분에 제대한지 몇 년이 지나 서 군 생활의 사진을 다시 보는 뜻밖의 즐거움을 얻었다. 백차에서 겁도 없이 이런 사진을 찍다니, 말년은 말년이었나 보구나, 하고 끄떡끄떡거리게 된다. 아주 긴 시간동안 악몽으로 남을 2년이라고 생각했는데. 이제 겨우 예비군 4년차 인데 눈에는 말년 수경이 아니라 스물여섯의 내가 비친다. 참으로, 추억맞은 인생이다. 더보기
새로 이사간 방에는 아직 인터넷 선을 깔지 않았다. 서문이 코 앞이기 때문에 학교 무선 인터넷을 사용할 수 있지 않을까 하고 안이하게 생각했던 것이 화근. 덕분에 올릴 사진이 꽤 되는데도 일기를 쓰지 못하는 요즘이다. 꼭 확인해야 하는 메일이 있거 나 자료를 다운받아야 할 때에는 무거운 엉덩이를 움직여 중앙도서관을 찾는데, 사막의 미어캣처럼 항상 주변의 동 태를 살피는 나로서는 단순 작업조차도 하기 어려운 환경이라는 것을 재삼 느낀다. 지금도 바로 옆에 앉은 학생이 힙합 비트에 맞춰 바운스 하며 책을 읽는 동태가 눈에 거슬려 무슨 내용으로 일기를 쓰려 했는지 몇 초만에 까먹고 말았다. 다음부터는 밤에 써야지. 사진은 구월 말 찾았던 화정 미술관의 'LUST'전. 한중일 삼국의 춘화를 모았다는 선전에 혹해 가봤지만 작품은 몇.. 더보기
승호의 아버지가 돌아가셨다.  4년차 예비군에 가 있던 그제 문자로 부음을 전해 들었다. 친구들과 함께 벽제까지 운구를 하고 왔다. 한 숨 자고 중앙도서관으로 공부를 좀 하러 왔는데, 책은 잘 읽히는데 일기는 써지지가 않는다. 써져 도 안 쓰는 것이 맞지 않은가 싶다. 소식을 듣고 가던 첫 날, 나는 병원으로 가는 지하철에서 PSP로 미드를 보았다. 아주 재미있었다. 예비군에 다녀와 피곤한 몸은 병원 근처로 시원하게 흐르는 개천 을 보자 얼마간 개운해졌다. 그러고 생각없이 걷다가 장례식장에 도착해 하던 대로 향에 불을 피우고 절을 하고 나서 승호의 얼굴을 보자, 갑자기 눈물이 나왔다. 그 때의 마음 그대로 사랑하는 친구 승호 에게 다시 전한다. 더보기
가을이 너무 맛있어 입 밖으로 흐르는 줄도 모르는 기네스 드래프트처럼 주루룩. 찬 바람 맞아가며 보따리 짐 싸들고 한 달 동안 돈 벌러 다녀왔다. 시간 팔아 번 돈으로 스무 살에 문 박차고 나온지 십 년 만에야 사람 사는 곳 같은 방 하나 얻어 짐을 풀었다. 관 같은 방에 구겨져 있던 두꺼운 이불부터 빨려 했는데 이삿 날도 다음날도 가을비가 오다말다 하는 통에 다시 허리춤에 휘어 감았다. 공부하다 눈을 들어 노을을 보고, 햇살에 잠 이 깨는 것이 몇 년 만이다. 새 집의 창으로는 학교 뒤의 무악산이 온통 보인다. 큰 창이 있는 탓에 모기로 잠을 설치는 것은 생각치 못 했던 고난이다. 잘 살기는 어려워도, 그럭저럭 별 일 없이는 산다. 남들처럼. 서른처럼. 더보기
저금통을 땄다. 복음자리 딸기잼 유리병에 모으던 것이니 딱히 따고 말고 할 것은 없어도, 아무튼. 군 복무 시절부터 꾸준히 저금통을 운 영해 온 터라 백원짜리 저축은 저금통이 아무리 커져도 결과 가 초라하다는 것을 숙지하고 있었지만 반 년을 모았는데 칠 만원은 너무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근래 몇 년 동안 꽉 채운 저금통을 땄던 경험은 3, 4회 정도인데, 저금을 하며 세웠던 이런저런 목표들에 맞게 쓴 적은 한 번도 없었다. 그맘때 필 요했던 일련의 생필품들이나 조금 비싸서 미뤄뒀던 책 몇 권 을 사는 데 그치곤 했던 것이다. 나는 그동안 그런 결과가 저 금통을 딸 때쯤이면 주기적으로 찾아오는 개인적 차원의 경제환란 때문이라 생각해 왔는데 다시 돌아보니 언제나 예 측 금액보다는 훨씬 적었던 탓에 그냥 지갑에 슥 찔러넣고 .. 더보기
도환 형 구월 초, 홍대. 전혀 없거나, 남보다 부족하다고 늘 생각하는 친척 운이지만, 형 한 명 있으면 됐다. 석달만 더 있으면 반칠십. 힘을 내요 미스터 윤. 더보기
정성일, <필사의 탐독> (바다출판사, 2010) 구월도 며칠 있으면 반인데, 장마같은 가을비가 거세게도 내린다. 반년 여 동안, 그간 쌓아두었던 것 뿐 아니라 새로이 검색을 해서까지 읽고 싶은 책은 대부분 읽었다. 학부생보다 댓권 정도는 많은 대출 한도까지 빌려다가 읽어대면서 조금씩은 정리를 해 둬야 나중에 기억도 나고 써먹을 수도 있었을 텐 데 생각만 하다가 결국은 한 자 못 적었다. 아무도 이해 못 하는, 시구 같은 감상 몇 줄 써놓아 봐야 세상엔 물론이고 스스로에게도 무슨 도움이 되겠나 하는 개똥철학도 있었지만 대부분은 게으름 탓이다. 이 달 들어서의 독서는 대부분 실패였다. 베스트셀러 등의 타인이 정한 기준이 아니라 관심을 두고 있는 몇 개의 카테 고리 내에서 신간을 주기적으로 읽기 때문에 너댓 권을 집어 들도록 속상한 독서를 하는 일이란 좀처.. 더보기
서울에 왔다 서른이 된 것을 가장 실감하게 만들었던 것은 각종 서류들을 뗄 때 보게 되는 삼십이라는 숫자가 아니라 친구의 어릴 적 얼굴을 빼닮은 그의 딸을 본 것과 둘째 고모가 반년여 병상을 오가다 마침내 돌아가신 일 이었다. 팔을 휘두르고 침을 뱉고 욕을 하여도, 아래로는 닿는 것이 없고 위로는 답답하게도 쌓여 있어 나는 끝줄에서 만년 천둥 벌거숭이로 편하게 살 줄 알았던 모양이다. 와중에 고작 피 몇 방울이 한 팔에 안기도 힘든 생명을 만들고, 생에의 왕성한 욕구를 자랑하던 이들도 순서를 받고서는 큰소리 못 내고 줄 에서 비켜 서는 것을 보고 있자니 제 발로 걷지 않아도 밀려서 위로 가는 게 있었구나, 하고 새삼 놀라게 된다. 더보기
고모가 돌아가셨다. 여름 내 아무데도 못 가고 있다가, 기상이가 별장을 빌리고 현관이가 차를 가지고 와 속초엘 갔다. 해질녘에 도착을 해 짐을 풀고서는 장사항에 가 회 한 접시를 떴다. 바다가 지척인 등대 앞에는 활 어 센터에 딸린 야외 평상이 몇 개나 있었는데 모두 텅 비어 있어 우리끼리만 소리를 질러가며 안주 반 술 반 해 가며 먹다가 전화로 고모의 부음을 들었다. 근래 몇 차례 일기에 올린 적이 있는, 말기 암으로 고생하던 둘째 고모이다. 차가 끊긴 탓에 숙소로 돌아가 한 숨 자고, 아침 차를 탔다. 세 시 간 반 예정이라던 동서울행 직행 버스는 비가 오는데도 두 시간 반을 끊었다. 현관이의 차로 오갈 것이라 생각했기에 잔뜩 짐을 우겨넣은 가방을 거북이 등껍질처럼 지고 2호선을 가로질러 신촌으 로 돌아와, 한 차례 다.. 더보기
여름비가 쥬룩쥬룩 태풍이 내일 모레 경기 지방에 도달할 속도로 올라오고 있다고 한다. 지나가고 나면 바캉스 계획을 세워봐야겠다. 사진은 무려 도쿄 갈매기. 근래 찍은 사진이 죄 피촬영자들의 게재 불허가 판정을 받은 탓에 새로 받은 일본 사진 만 줄창 우려먹는다. 한동안 이어질테니 적응들 하시라. 더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