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遊記

7. 택배가 왔어요. 자전거 여행 선배님들 이야기로는 잊고 살 때쯤 도착한다더니. 부산에서 마지막 인증 도장 찍었던 게 정확히 언제인지 가물가물할 무렵 과연 택배가 왔다. 두 달하고도 열흘 정도만의 일이다. 박스 안의 구성물은 세 개였다. 묵직한 나무 상자 하나. 비닐봉투에 든 상장 하나. 메달에 다는 끈 하나. 앞면이야 그렇다 치고. 이름 석 자 백힌 상 받는 것이 얼마만의 일인지. 그것도 체육 과목에서 받는 것은 정확한 기억이 없는 것으로 보아 아예 처음일지도 모른다. 오랜만이예요 행자부. 인증해 줘서 고맙습니다. 혼자 있어서 목에 메달을 건 사진은 찍지 못하고 일단 이층 침대에 걸었다. 상장은 책장 한 가운데 한 칸을 비우고 정중앙에. 설마 끝이 나겠나 싶었던 일을 그럭저럭 마무리 지은 증명이니 몇 달만 세워 놓고 생색.. 더보기
6일차 - 3. 우지의 맛 물론 도지에 역사적인 기록만 있는 것은 아니다. 규모가 큰 절인만큼 부적과 기념품을 파는 가게도 다른 절과 신사보다는 큰 것이 있다. 위의 사진은 그 중 오미쿠지おみくじ를 찍은 것이다. 일본의 영화나 만화 등에서 흔히 접할 수 있는 소재 중 하나로, 포장은 제각각이지만 결국에는 그 안에 운세가 적힌 종이를 뽑는 것이 목적이다. 첫 번째 오미쿠지는 복을 부르는 고양이 마네키네코招き猫 미쿠지. 두 번째는 단출하게 행운 오미쿠지. 세 번째는 리락쿠마 오미쿠지. 네 번째는 칠복신 오미쿠지. 칠복신이나 마네키네코 등의 전통적인 캐릭터야 그렇다 치더라도 오미쿠지와 같은 전통 문화에 리락쿠마를 접합시키는 세련된 손길에는 무척 놀랐다. 나중에 돌아다니면서 보니 도라에몽 오미쿠지도 있고 건담 오미쿠지도 있고. 나는 여행.. 더보기
6일차 - 2. 도지同寺, 구카이空海, 오헨로お遍路 도지東寺에 갔다. '동사東寺'라는 이름부터가 심상치 않다. 고수는 꾸미지 않는 법이다. 절이 지어진 것은 796년의 일으로 물경 천이백 년 전의 건축물이다. 당시에 헤이안쿄平安京라고 불리웠던 교토는 계획도시로서 바둑판 모양 모양으로 구획되었다. 지금도 교토의 거리에 산조三条, 시조四条, 고조五条 등의 숫자가 들어간 이름이 나란히 있는 것은 그 때문이다. 이 바둑판 모양의 정문, 즉 출입구가 동명의 영화로도 유명하며 수많은 괴담의 무대가 되는 라쇼몽羅城門이고 라쇼몽 양쪽에 배치된 것이 사이지西寺와 도지東寺이다. '서사西寺'는 이후 몰락하여 지금은 폐사터만 남아있지만 도지는 오늘날에도 수많은 관광객들이 찾는 명소이다. 다시 찾은 교토에서 첫번째 방문지로 도지를 고른 것은 봄맞이 특별 전시회를 하고 있었기 때.. 더보기
6일차 - 1. 교토에 간 구보처럼 여행 6일차이자 교토 여행의 1일차. 아침부터 비가 주룩주룩 내렸다. 하루만 비 오고 만다면야 목 좋은 술집 차고 앉아 다른 여행객들과 노닥거리면 그만이지마는 1주일 동안 맑은 날이 하루 있을 것이라면 비 온다고 놀 수는 없지. 게다가 발이 젖는 것이라면 이미 나오시마에서 이골이 났다. 끙차 하고 일어난다. 꼼짝없이 일주일 동안 우산 쓰고 다닐 판이라 가게에 들어가자마자 딱 쳐다 봤을 때 가장 기분 좋은 색깔의 우산으로 골랐다. 샛노란 우산. 교토 여행이 끝날 때까지 좋은 친구 되어 주었다. 덕분에 여행을 다녀온 지 반 년이 넘은 지금도 길을 걷다 샛노란 우산을 마주치면 문득 교토 생각이 나 즐겁다. 그러고 보면 여행을 갈 때마다 독특한 색이나 모양의 가방이나 팔찌, 티셔츠 등을 일부러 사서 입고 쓰고 .. 더보기
5일차 - 교토 상경 4월 12일 일요일. 8일부터 20일까지 13일 간의 여행 중 5일차이다. 이 날은 나오시마에서의 여행을 마치고 교토로 올라가기로 했다. 아침에 일찍 떠나 교토에서의 오후를 누려도 되지만 섬에 체류한 나흘 동안 가장 좋은 볕이 든 것이 분하여 점심 무렵까지 노닥거리기로 했다. 마침 나오시마의 골목은 어슬렁거리며 노닥거리기에 최적화된 곳이기도 하다. 산책 길, 멋진 자연이나 안도 다다오의 작품보다 더 내 눈을 잡아끌었던 것은 언젠가 꼭 키워 보고 싶은 샴 고양이의 실루엣. 반투명 창이라 뚜렷하게 보이지 않아 한층 애틋하였다. 이전의 경험에 비해 이번 여행에서 가장 크게 달라진 태도라면, 즐길 수 있을 때에는 즐기자, 로 요약할 수 있겠다. 여행을 할 때의 나는 잠자리나 먹을 것, 혹은 한국에 돌아와서도 할.. 더보기
4일차 - 쇼도시마小豆島 마실 과연 일기예보대로 날씨는 맑았다. 하지만 한쪽 하늘에는 여전히 구름이. 황해의 아들인 나는 바닷가에 서서 바람 냄새를 킁킁 맡았다. 새벽녘까지도 마르지 않아 골치가 아팠던 운동화. 드라이어를 켜서 그 위에다 씌워놓는 등 난리를 치고서야 그나마 좀 말랐다. 기껏 해 났을 때 작심하고 걸어다니려고 아침 나절부터 신발끈 단단히 묶는다. 세토 내해에서 가장 유명한 것은 나오시마이지만 볼거리가 나오시마에만 있는 것은 아니다. 시간이 허락한다면 가볼 만한 곳이 꽤 있다. 나는 이날 나오시마 인근의 두 섬인 테시마豊島와 쇼도시마小豆島에 가보기로 했다. 왼쪽이 나오시마, 오른쪽이 테시마, 테시마 옆의 작은 섬이 쇼도시마이다. 주목적지는 쇼도시마이고 시간이 남으면 테시마도 볼 예정이지만 나오시마에서 쇼도시마로 바로 가는.. 더보기
3일차 - 젖어봅시다 나오시마 지난해 11월에 교토를 찾았을 때에는 겨울이라 그랬는지 3주 가량 체류하면서도 비 걱정이 없었다. 이번의 여행에서는 아침에 일어나자마자 날씨부터 체크하는 것이 습관 됐다. 2015년 4월 10일 금요일. 여행 3일차의 아침. 이층 침대에서 내려다보니 폭우 소리가 들리고 창문은 온통 어둑어둑하다. 뱀부 빌리지에는 조식이 제공된다. 빵과 커피는 무한정으로 먹을 수 있지만 냉장 보관이 필요한 잼과 물은 양심껏 먹어야 한다. 주인이 상주하지 않고 별채에 머물면서 이따금 드나들기 때문인 것 같다. 나오시마에 관한 기록에서 공통적으로 발견되는 팁은 식당 만나기가 쉽지 않기 때문에 먹을 수 있을 때 먹어두어야 한다는 것이다. 잼 못 먹어 죽은 귀신처럼 잼 반 빵 반 해서 몇 번씩 구워 먹었다. 세토 내해를 바라보는 .. 더보기
2일차 - 4. 들어갑시다 나오시마 나오시마로 가는 길. 섬이니까 배를 타고 가야 한다. 오사카 성은 시간이 맞으니 가 본 것이고, 제대로 된 첫 관광이라 나는 신이 났다. 나오시마에 도착하면 항구에 작은 터미널이 있다. 이 또한 예술작품이라 한다. 에도 막부 시절에는 이 곳에 제염업 또한 번성하였었다 한다. 그 흔적일 것이다. 나오시마 소금 캬라멜. 신기해서 사 먹어 봤는데 정말로 소금 맛 캬라멜이었다. 나오시마의 캐릭터인 스나오 군을 따라서 한 컷. 나오시마直島라는 이름답게 캐릭터도 순박하고 정직하기 짝이 없다. 사실 나오시마의 항구가 가까워오면서 모든 관광객들이 뱃전에 매달려 보는 것은 오로지 저 것. 세계적인 예술가 쿠사마 야요이草間彌生의 대표작 중 하나인 왕 큰 호박 전시물이다. 진품이다. 입장료도 필요 없고 올라가도 상관 없다... 더보기
2일차 - 3. 배워봅시다 나오시마直島 목적지인 나오시마에 대해 잠깐 설명하고 넘어갈까 한다. 설명이 좀 길어질테니 나오시마, 메세나, 안도 다다오 등의 단어에 별달리 흥미를 갖지 않은 분은 읽지 않고 지나가셔도 좋다. 나오시마는 세토 내해瀨戶 內海에 위치한 섬이다. 위 지도에서는 '세토 나이카이'라는 글자 중 '카'자 근처에 위치해 있다. 세토 내해는 시코쿠四國, 혼슈本州, 큐슈九州의 큰 세 개의 섬에 둘러싸인 일본 최대의 내해이다. 규슈 뿐 아니라 대륙의 문물을 교토 지방으로 연결해 주던 해양 운송의 중심지로 수많은 항구취락이 발달한 지역이다. 운송업 뿐 아니라 벼농사와 연안어업이 가능하여 오랫동안 흥성을 누렸던 기록이 있다. 섬의 이름이 나오시마로 된 데에는 이러한 이야기가 전해진다. 12세기에 스토쿠천황崇德天皇(이 글에서는 고유명사로 .. 더보기
2일차 - 2. 에키벤駅辨 오사카 성을 둘러보고 나서 향한 곳은 나오시마直島이다. 오사카에서 나오시마 방향으로 가는 기차를 타러 가는 길. 잡지 강국 일본의 면모를 새삼 느낀다. 반가운 얼굴도 점점이 섞여 있다. 지난 번의 여행에서는 기차를 타지 않았기 때문에 일본의 유명한 기차 도시락, 에키벤駅辨을 구경조차 하지 못했다. 기차가 출발할 때까지 꽤 많은 시간이 남아있었음에도 도시락 종류를 구경하다 정신을 차려보니 곧 출발이었다. 위의 가게는 기차역을 가득 채운 많은 에키벤 가게들 중 하나에 불과하다. 반찬별로 모양별로 실로 다양한 도시락이 준비되어 있다. 사진에는 찍지 않았지만 5-600엔의 저렴한 도시락도 얼마든지 있다. 1000엔 정도라면 내가 여행을 하던 때 만 원이 약간 안 되는 돈으로 한 끼 식사 치고는 다소 높은 금액이.. 더보기
2일차 - 1. 오사카 성에서 아침 일찍 일어나 호텔 앞의 덮밥 체인점에서 조식을 먹었다. 만화책이나 신문을 들여다 보며 젓가락으로 밥을 후룩후룩 먹고 있는 사람들을 보니 반 년 만에 다시 일본에 왔다는 실감이 났다. 부른 배를 두드려가며 돌아오는 길에 편의점 구경을 가보니 귀여운 크기의 야채즙이 있어 한 팩을 샀다. 두 손가락으로 들고 있는 것도 한 입에 확 털어넣는 것도 무척 재미가 있었다. 참, 즐겁게 돈 쓰게 만드는 건 얘네들이 확실히 잘 한단 말이야, 따위의 소리를 중얼거리며 짐을 쌌다. 인도 여행을 떠났을 때에도 델리는 입국과 출국만 했을 뿐 거들떠 보지도 않았던 것처럼, 지난 번의 교토 여행에서도 오사카에는 몇 시간도 있지 않았다. 이번에는 여행을 떠나는 마음부터가 훨씬 여유로왔고 또 오사카를 떠나 교토로 바로 갈 것도 .. 더보기
1일차. 출국 작년인 2014년에 이어 또 한 번 교토에 다녀왔다. 4월 8일부터 20일까지 13일의 일정이었다. 지난번의 일정은 11월 말 쯤부터 12월 중순까지였다. 날이 춥고 건조하여 매일같이 발뒤꿈치가 갈라지는 와중에도 몹시 즐겁게 쏘다녔던 기억이 있다. 다녀와서 여행기를 쓰고 또 눈에 띌 때마다 교토와 일본에 관한 책들을 사 모으다 보니 다시 한 번 가서 더 보고 더 느끼고 싶은 것들이 충분히 쌓였다. 많지 않은 해외여행 경력에 두 번을 연이어 같은 장소에 가는 것이 꺼려질 법도 하지만 그런 생각을 할 틈도 없이, 교토가 좋아졌던 것이다. 여행을 떠나기 전 운동화도 운동화 빨래방에 싹 맡기고, 이번엔 봄 여행이니 그 중에 제일 가벼운 것을 골라 신고 가기로 했다. 머리를 깎으러 가서는 옆머리를 짧게 쳐 올리고.. 더보기
6. 낙동강 우회 자전거길 - 안녕 이틀째의 밤부터 경남 지역에는 소나기가 예고되어 있었다. 종주를 떠나기 전 확인했을 때 30-40%였던 강수 확률은 어느새 80-100%로 치솟았다. 아니나 다를까 일곱 시 언저리가 되자 해는 이미 지고 한 방울, 두 방울씩 떨어지기 시작했다. 이 사진은 그나마 밝기를 보정한 것이다. 어느새인가 길과 강, 산과 하늘의 경계가 흐릿해지는 지경이 되고 말았다. 자전거길에 환하게 밝혀져 있는 보조등이 아니었다면 엄두도 내지 못했을 것이다. 이용객도 별로 없는데 예산절감을 위해 비 오는 밤 같은 때에는 다 꺼버리라는 명령이 있었다면 여기에서 멈추었을 가능성이 높다. 경남도지사 홍준표 씨가 결정했는지 부산시장 허태열 씨가 결정했는지, 아무튼 평생 감사해할 일 없을 줄 알았던 사람들에게도 일단 감사는 하긴 한다. .. 더보기
6. 낙동강 우회 자전거길 - 삼랑진에서 이 다리는 삼랑진교이다. 삼랑진교를 넘어가면 삼랑진역이 나온다. 삼랑진역은 춘원 이광수의 의 마지막 무대이다. 비교적 능숙하게 교직해 왔던 인물 간의 첨예한 갈등을 홍수 앞에서의 대화합이라는 장치로 한 쌈 크게 싸서 꿀떡 삼켜버린 그 장면이 펼쳐진 곳이다. 그 삼랑진에 진짜 왔구나, 하는 감회가 들어 사진을 찍었다. 사진을 찍으려고 멈춘 건 아니고 무릎이 욱신거려서 멈춘 거지만 멈춘 김에 찍었다. 젊은 사람이 다리 사진을 찍고 있으니 신기했던 모양이다. 먼저 앉아 쉬고 있던, 화려한 자전거 의상을 입은 오십대 초반 쯤의 부부가 으데서 왔습니꺼, 하고 말을 붙여왔다. 서울에서 왔어요. 안동 사람인 아저씨와 하동 사람인 아주머니가 부산 옆의 양산에 살기 시작한 지는 십 년이 조금 못 되었다 했다. 마침 나와.. 더보기
6. 낙동강 우회 자전거길 - 강나루 건너서 밀밭 길을 적교장에서 푹 자고 출발. 빵빵한 배터리 사진은 여행이 다 끝난 지금 봐도 흐뭇하다. 계기판 왼쪽에는 휴대폰과 4대강 수첩 등을 넣을 수 있는 주머니가 있다. 그 안에 보이는 작은 지도는 적교장 명함의 뒷면이다. 국토종주 자전거길은 표지판과 도로에 새겨진 표식만 잘 따라가면 인천부터 부산까지 갈 수 있게 해 놓은 것이 특징이다. 그런데 따로 지도가 필요한 이유는. 한강과 낙동강의 모든 자전거길이 효율적으로 건설되어 있는 것은 아니다. 어떤 곳은 터무니없이 크게 돌아가는 곳이 있는가 하면 어떤 곳은 에누리 없이 강에다 딱 붙인답시고 엄청난 경사를 올라가야 하는 곳도 있다. 그래서 네티즌들은 짤막짤막한 지름길과 우회로 등을 공유하곤 한다. 해당 정보를 찾아 볼 만한 시간이 없거나 정보를 알게 되더라도 막상 .. 더보기
6. 낙동강 우회 자전거길 - 왜관에서 적교장까지 출발길. 새로 이사온 중곡동으로는 중랑천이 지난다. 아침 일곱시 이십분 ITX를 타기 위해 나서는 길. 군자교 너머로 모르도르 산이나 에 나오는 외로운 산 같은 풍광이 펼쳐지기에 첫 사진을 찍었다. 실제로는 배봉산 아니면 용마산. ITX는 이번에 처음 타봤다. 지난번에 구미보까지 갔기 때문에 이번에는 칠곡보에서부터 시작하면 되는데 칠곡보 인근으로는 시외버스가 가는 것이 없었다. 기차는 어떤가 검색해보니 마침 인근에 ITX 왜관역이 있어 그리로 가기로 한 것이다. ITX에는 자전거 거치대가 있었다. 거치대 인근에는 콘센트가 있다. 출발지까지 가는 동안 소모되는 배터리 양이 언제나 고민되는 전기자전거 라이더들에게는 희소식이라고 할 수 있다. ITX를 타실 것이라면 부스터 만땅으로 올려놓고 기차역까지 쌩쌩 달.. 더보기
5. 4대강 새재도보길 - 후루룩 마무리 4대강 자전거길을 다녀온지 딱 1년이 넘었다. 작년인 2014년 한 해 동안 시간이 날 때마다 꾸준히 달렸던 것이다. 9월에 새재자전거길의 중간까지 다녀온 뒤로 날이 추워져 멈추었던 국토종주는 이후 긴 휴가마다 교토를 찾게 되면서 잠시간 거리를 두게 됐다. 이틀이나 사흘 동안 다녀오는 것이 문제가 아니라 한 번 다녀오면 며칠 동안이나 근육통에 시달리는 것도 부담스러웠고 떠나는 거리가 길어질수록 점점 더 커지는 부상과 사고도 걱정됐지만, 무엇보다 중간에 한 차례 쉬게 된 일의 매무새를 잘 짓지 못하는 천성 탓이 컸다. 그러면서도 며칠에 한 번씩 자전거를 탈 때마다 마음에 걸렸다. 한 만큼만 더 하면 끝나는데, 하고. 그래서 딱 1년이 지난 2015년 9월 중순에 다시 떠났다. 전국의 자전거 코스 중 최장 .. 더보기
17. 귀국 귀국일 아침. 다다미 방은 옆방의 소리가 훤히 들리는데 옆방 사람들이 알람을 맞춰놓고도 제때 끄지 않는 바람에 새벽같이 일어났다. 정원 구석에 이런 것도 있었구나. 떠나려니 보인다. 닌자의 비밀통로처럼 여기저기 샛길이 있던 우론자. 12시부터 4시까지는 주인이 청소한다고 무조건 다 나가 있으라는 규정이 귀찮기는 했지만 분위기는 멋진 곳이었다. 교토를 떠나기 전 의미없는 마지막 한 컷. 여행의 추억을 곱씹으며 회상에 빠지기는 웬걸, 공항으로 가는 차에 타자마자 곯아떨어졌다. 중간에 휴게소에서 잠깐 쉰다고 차가 멈출 때에야 눈을 부비며 깨어보니 내가 영어를 못 알아들을 것이라고 생각했는지 함께 탄 미국인들이 저 친구 코 너무 골아서 시끄럽다고 불퉁거리고 있었다. 제 탓이 아니라 알람을 맞춰놓고도 제때 끄지 .. 더보기
16-3. 마무리 마지막날이라 힘내서 돌아댕겼더니만 교토 밖의 두 군데나 들렀다 왔는데도 카모가와에는 해가 안 졌다. 카모가와 강가에서 꺅꺅 소리 지르며 놀고 있는 학생들. 여행 막판이 되면 돈 많이 가진 사람도 체력이 남은 사람도 눈에 안 차고 그저 시간 많은 사람들만 부럽다. 너희는 몇 달만 있으면 따뜻한 카모가와에서 밤에 맥주 마시며 놀 수 있겠구나. 정지용이 걸었고 윤동주가 걷던 카모가와 봄밤. 좋겠다. 서운한 마음을 달래며 야키소바와 오코노미야키를 먹었다. 여기는 관광명소는 아닌데, 교토 여행을 가는 분들께 꼭 추천하고 싶은 장소라 소개해 본다. 편리당便利堂, 일본어로는 벤리도라고 읽는 가게이다. 가게 자체의 연혁을 밝히는 안내물이 따로 있을 정도로 유명한 곳이라고 한다. 주로 엽서를 파는 곳인데, 교토의 풍물이.. 더보기
16-2. 월계관月桂冠 교토 여행의 마지막 관광 코스로 잡은 곳은 후시미 지역의 유명한 주류 메이커 월계관月桂冠이다. 앞서 우지를 소개하면서 교토 인근은 물이 좋아 우지에서는 말차가 유명하고 후시미 지역에서는 술이 유명하다고 한 바 있었다. 1637년부터 운영을 해 왔다는 월계관은 이 일대에서도 가장 유명한 메이커이다. 이곳은 그 옛날의 주조방식을 재현해 놓은 오오쿠라 기념관이다. 입장료를 내면 이런 명함과 안내도를 주는데, 한국어본이 있어서 반가웠다. 월계관 댓병. 홍대에서 저 정도면 열 명이 밤새 마실 수 있을 것 같다. 무척이나 탐났던 옛날식 병모양. 지금도 저렇게 나오면 좋을텐데. 나는 오른쪽이 더 마음에 들었다. 홈런왕 베이브 루스의 일본 방문을 기념하며 만든 표지판이라고 한다. 한쪽 면에는 그동안의 상업 포스터들이 .. 더보기
16-1. 후시미伏見 이나리稲荷 신사 출국 전날인 16일차, 12월 13일의 첫 행선지는 후시미伏見 이나리稲荷 신사이다. 신사로 가기 전에 어떤 가면을 쓰고 나갈지 클럽 나가기 전에 옷 고를 때만큼 고민한다. 후시미 이나리 신사는 후시미 지역에 있는 이나리 신의 신사이다. 이나리稲荷는 한자에서도 알 수 있듯 농경과 관련된 신인데, 여우가 쥐를 잘 잡아먹기 때문에 이 신의 모습으로 차용되었다는 설이 있다. 혹은 이나리 신의 전령 역할을 한다고도 한다. 아무튼 지금은 이나리 신이라고 하면 여우 신을 가리킨다. 이 여우 신은 '팔백만 신'이라고 할 정도로 신적 존재가 많은 일본에서도 꽤나 끗발 있는 신이어서 전국적으로도 신사가 많고 인기가 있다 하는데 그러한 전국의 신사들의 총본산이 바로 이 후시미에 있는 이나리 신사이다. 이 가면 저 가면 써봤.. 더보기
15-2. 고다이지高台寺 15일차, 해가 지고 난 뒤에 찾은 곳은 고다이지高台寺. 이곳은 히데요시의 아내였던 네네ねね의 절이다. 네네는 히데요시와 마찬가지로 가난한 농군의 집안에서 태어났다. 미천한 출신이었으나 남편으로 만난 히데요시가 하급 관리에서 출발해 천황 아닌 자로서는 가장 높은 자리라고 할 수 있는 간파쿠關白에 오를 때까지 많은 역할이 요구되는 전국 시대의 아내 역할을 훌륭히 수행했던 여성이다. 히데요시의 사후 출가하여 고다이인高台院이라는 법명의 중이 되었다. 가 영웅들의 성공담이라면 은 인간들의 실패담이라고 할 수 있다. 정말 작은 실수나 잠깐의 잘못된 선택 만으로도 목이 날아가고 가문이 멸망하던 전국 시대에, 네네는 믿을 수 없는 성공담을 남편과 함께 만들어낸 현명한 여성으로 그려진다. 읽는 사람으로서는 당연히 응원.. 더보기
15-1. 데라마치도리寺町通り 15일차 아침. 다다음날 아침에는 바로 출국을 해야 하기 때문에 시간의 여유가 있을 때에 쇼핑을 좀 하기로 한다. 마침 우론자 근처에는 데라마치도리寺町通り라는 쇼핑 거리가 있다. 건들건들 걸어가는데, 앗, 길거리 광고판에 사토 고이치佐藤 浩市가. 일본 드라마는 거의 본 것이 없고 영화도 많이 보았다고는 못하지만. 연극부에 있을 때부터 지금까지 세상에서 가장 좋아하는 감독이 일본의 미타니 코키三谷 幸喜이다. 나 , 등은 국내에도 개봉해서 꽤 괜찮은 평을 받은 바 있다. 이 감독은 특히 연이어 출연하기 어려운 특 A급의 주연배우들을 제하고는 함께 일하는 배우들을 계속해서 기용하는 것으로 유명하다. 사토 고이치는 그러한 '미타니 코키 사단'에서도 주연급의 배우이다. 에서는 실제로 주연을 맡기도 했다. 일본 배.. 더보기
14. 우론자 천 년 수도 교토에는 숙소 또한 각기의 매력을 가진 곳들이 많다 하여 여행 전에 계획을 짤 때 여러 군데에서 머물 수 있도록 예약을 했었다. 17일의 여행 기간 동안 14일차부터 16일 밤까지 머물게 될 '우론자'로 이동한다. 여행용 가방에다 여기저기서 사 모은 기념품과 선물 봉지들을 따로 들고 낑낑대며 버스를 타는데 비까지 추적추적 내린다. 버스를 타고 가며 이런 생각을 했다. 교토에 처음 도착했을 때, 익히 들어 알고 있으면서도 막상 보고 놀랐던 것은 일본인의 질서의식이다. 특히 버스 정류장에서 질서정연한 모습을 여러 차례 볼 수 있었다. 타려는 버스가 멀찌감치서 오고 있다면, 우리나라 같은 경우엔 버스가 설 것으로 예상되는 지점 쯤으로 사람들이 우루루 몰려가는 것이 일반적이다. 하지만 적어도 내가 .. 더보기
11-13. <프로젝트 Y> 11일차. 이 날 아침 숙소를 '킹교야kingyoya'로 옮겼다. 킹교야는 다다미 방과 일본식 정원, 코타쓰 등을 체험할 수 있는 멋진 숙소이다. 그런만큼 가격이 좀 세서, 삼일만 머물렀다. 위 사진은 여행객들이 모이는 거실에서 정원과 욕실, 화장실 쪽을 내다본 광경이다. 교토에 가면 예약을 하자 결심 그 두번째. 위의 사진은 방이 아니라 이불과 짐을 놓는 '옆방'이다. 하지만 문을 닫으면 본방과 분리되어 위의 책상에서 책도 읽을 수 있다. 이것이 본방. 다다미가 여덟 장, 그러니까 팔첩방이다. 여행용 가방이나 이불의 크기와 비교하면 얼마나 넓은지를 알 수 있을 것이다. 이런 방이 약 4000엔. 교토여행을 꿈꾸시는 분이라면 다시 한 번 조언드린다. 숙소부터 미리미리 예약하셔라. 팔첩방이니까 여기서 다다.. 더보기
10. 우지(宇治) 2일차 아침 일찍 일어나 차를 마시며 다시 한 번 복습. 기모노와 함께 제공되었던 게다 용 양말. 기모노는 여관 것이지만 양말은 가져가도 되겠지 싶어 그대로 신고 나왔다. 체크아웃을 한 뒤 숙소에 짐을 맡겨두고 길을 나섰다. 우지가와 강변을 따라 쭉 걷는다. 목적지가 따로 있었지만, 이 산책로만을 위해 우지를 찾았다 하더라도 나는 후회하지 않았을 것이다. 여름날 달밤에 호젓하게 혼자 걷는다면 꿈을 꾸는 기분이 들 것 같은 길이었다. 강이 깊지 않아 물놀이하는 사람들을 쉽게 볼 수 있었다. 걸으면서 들은 몇 개의 팟캐스트에서는 예외 없이 서울에 대폭설이 내려 교통이 정체되고 곳곳에서 사고가 잇달았다는 뉴스가 나왔다. 가깝지만 다른 나라이긴 다른 나라이구나. 나이 먹어서 오한이 자주 들면 일본으로 은퇴하는 것도 고.. 더보기
9. 우지(宇治) 1일차 9일차의 행선지는 교토의 남쪽에 위치한 우지(宇治)이다. 지하철을 타고 가야한다. 가는 길에 관월교觀月橋라는 역 이름이 예뻐 찍어보았다. 우지역에서 나와 다리를 건너면 큰 표지판을 만나게 된다. 우지는 아주 작은 휴양관광도시라 지도를 몇차례 읽어두고 조금만 걸어보면 대강의 지리를 금세 파악할 수 있다. 표지판의 오른쪽으로는 방금 지나온 관월교가, 왼쪽으로는 목적지 중 하나인 평등원平等院과 아마가세 댐이 표기되어 있다. 우지역에서 만나게 되는 왕자 캐릭터. 정확한 이름은 모른다. 주로 녹색이 칠해진 이유는 우지가 말차로 유명하기 때문일 것이다. 교토 인근은 예로부터 물 맛이 좋기로 유명해서, 후시미 지역에서는 술이, 우지에서는 말차가 일찍부터 이름을 날렸다. 일본의 3대 차 중 하나로 꼽히는 '우지 말차'.. 더보기
8. 유메지夢二 전展 이날의 일정은 교토 여행 전에는 있지 않았던 것. 교토에 가서야 친구의 소개로 알게 된 다케히사竹久 유메지夢二라는 화가의 전시회에 갔다. 모르던 화가이지만 그림의 첫인상에 홀딱 반하게 되었던 차에 근처에서 전시회까지 한다니 가지 않을 이유가 없었다. 전시회는 교토의 외곽에서 열리고 있어 지하철을 탔다. 타러 가는 길에 재미있었던 포스터. 포스터의 구석에는 'KYOTO SUBWAY MOE MOE PROJECT'라고 써져 있다. '모에'는 게임이나 애니메이션 등의 일본 서브컬쳐에서 파생된 말로, 하나의 의미로 규정하기는 어렵지만 대체로 귀여운 이미지의 여아女兒나 소녀가 등장하는 작품 혹은 그 작품의 분위기 등을 지칭하는 말인 것 같다. 주변의 서브컬쳐 매니아에게 문의해 본 바 다음과 같은 조언을 들을 수 있.. 더보기
7-2. 청수사 삼십삼간당과 박물관을 돌고 나니 어느덧 해가 졌다. 교토의 골목길을 타고 다음 행선지로 간다. 다음 행선지는, 교토에서 시간에 쫓겨 한군데만을 골라야 한다면 대부분의 사람이 손에 꼽을, 청수사(淸水寺). 일본어로는 기요미즈데라, 라고 읽는다. 청수사에 처음 간 것은 밤의 일이었다. 가을맞이 단풍 야간개장 기간이어서 밤에도 들어갈 수 있었기 때문이다. 이후에 낮에도 두어번 더 가보았는데, 낮의 청수사가 좋아요, 밤의 청수사가 좋아요라고 누군가 물어온다면 두 번 다 가보세요, 라고 말해줄 것이다. 청수사를 둘러싸고 있는 풍경들이 조명을 받아 아름답게 빛난다. 멀리로는 교토의 풍경이 내려다보인다. 기요미즈데라의 오미쿠지. 위의 사진에서 여성이 들고있는 육각형의 상자 안에는 숫자가 새겨진 나무젓가락들이 잔뜩 들.. 더보기
7-1. 삼십삼간당, 교토국립박물관 7일차는 시작이 늦었다. 어영부영 점심을 먹고 나니 두세 시가 된 것이다. 놀기만 할 것이라면 하루가 많이 남았지만 명승지를 방문하기로 한 날이라 마음이 급해졌다. 앞에서 말했던 것처럼 교토의 절이나 신사 등은 대개 너댓 시가 되면 입장시간이 끝난다. 지도를 보며 이리저리 머리를 굴리다가 이차선 하나를 사이에 두고 붙어있는 교토국립박물관과 삼십삼간당에 가기로 했다. 시간에 쫓기기도 했고 내부 촬영이 금지되어 있기도 해서 이 두 장소에 내가 찍은 사진은 별로 없다. 그럼에도 굳이 따로 언급하는 이유는, 관광의 여러 요소 중에 '유물, 문화재를 보는 즐거움'에 한정해 말하자면 바로 이 두 장소의 관람이 시간과 노력 대비 최상급이었기 때문이다. 삼십삼간당三十三間堂은 이름 그대로의 건물이다. 기둥과 기둥 사이를.. 더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