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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기장/20172017.01.29 01:26

그러나 흰둥이는 겁보였다. 선생님이 처음 발견하고 구조를 할 때에도 도망갈 수 없는 구석에 몰린 뒤로는 발톱이 다 닳고 사이에 피가 맺히도록 바닥이나 벽을 긁어대었다 한다. 새로운 장소에 가면 며칠이고 구석에서 나오지 않는 것이 고양이의 일반적인 습성이라 하지만 흰둥이는 함께 지낸 지 몇 달이 지난 지금도 내가 밖에 나갔다가 새 냄새를 묻히고 돌아오면 어두운 구석에 숨어 한참이나 눈치를 본다. 게임을 하거나 영화를 보다가 나도 모르게 큰 소리를 내고 나면 아니나 다를까 구석에 가서 숨어 있다.

 

하루의 대부분을 숨어서 자고 있고, 밥을 먹거나 화장실에 가는 것은 내가 없을 때를 이용하는 것 같았다. 두근두근 기대하던 쟈미난 생활은 없었지만 한편으로는 이전까지 내가 혼자 살던 삶과 별로 달라지던 것도 없어서 나는 그럭저럭 지냈다. 이따금 간식을 던져주면 배를 뒤집으며 벌러덩벌러덩 하는 것은 웃으면서 보았다.

 

택배 상자로 만들어 준 임시 집에서 흰둥이는 잘 잤다. 다만 뭘 하고 있나 들여다 보는 것만으로도 눈을 크게 뜨고 콧김을 퓽퓽 내쉬는 탓에, 나쁜 짓 하는 것 같아 근처에도 안 가게 된 것은 좀 서운했다. 이래서야 혼자 사는 것과 다른 것이 무언가.

 

일주일 가량이 지났을까, 손에 간식을 쥐고 있으면 다가와서 얼른 하나 먹고 다시 도망갈 정도는 친해졌을 때, 나는 박스 안으로 손을 넣어 흰둥이를 쓰다듬어 보았다. 영화나 만화에서 보았던 어설픈 지식대로 귀 사이의 머리통을 긁어 주고 목덜미와 턱을 만져 주었더니 의외로 순순히 옆으로 누워 그르렁 그르렁 소리를 내기 시작했다. 친해진 표시일까, 하는 생각도 좀 기쁘고, 내 집에 와서 안정을 찾은 모양이다, 하는 생각도 기뻐서 나는 여기저기를 긁어 주었다.

 

그러다가, 벌렁 누워서 배를 보이고 있으니 배를 만져달라는 것일까 하고 배도 한참 만졌는데 흰둥이는 갑자기 얼굴을 귀신처럼 일그러 뜨리면서 캬악, 캬악, 하고 수 차례나 위협하는 소리를 냈다. 친해졌다는 생각이 배신당한 것 같기도 하고, 박스 깊숙이 들어가 있는 손이 걱정되기도 하고, 무엇보다 큼직한 고양이가 눈 앞에서 그렇게 이빨을 드러내며 위협하는 것을 처음 본 탓에 놀라기도 해서, 나는 그 감정을 뭉뚱그려 화가 났다. 먹이 주고 똥 치워주고 쓰다듬어 줬는데 이게 주인한테, 하고. 화가 난 나는 박스를 후려쳤고 흰둥이는 정신 없이 집 안의 구석을 찾아 도망다녔다. 이때까지 나는 고양이가 무시하거나 위협을 할 때 말고도 무서울 때에 캬악 소리를 낸다는 것을 몰랐던 것이다. 지금도 이 일을 생각하면 미안한 생각에 마음이 좋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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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최대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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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기장/20172017.01.29 00:37

반 년 전에 썼던 일기와 같이, 중곡동에 은거하는 일상에 큰 변화도 없거니와 영글은 생각들은 운영하는 팟캐스트에서 대본으로 말로 충분히 풀어내고 있어서, 일기에 딱히 쓸 것이 없다. 작년인 2016년의 여름에 한 번, 최근인 2017년 1월에 한 번 해서 두 번이나 교토에 다녀온 것은 개별의 일기로 쓸 것이 아니라 잘 갈무리해 하나의 컨텐츠로 묶어내고 싶은 마음이 크다.

 

와중 달라진 것이 있다면 고양이를 키우게 된 것을 꼽을 수 있겠다.

 

넘의 집 전세 얹혀 살고 있는 처지에 활동력 좋고 밤낮으로 짖는 개는 어차피 키울 수가 없었다. 그러한 현실적인 이유 말고도 고시원 쪽방 생활을 할 때부터 개보다는 고양이를 한 마리 키우고 싶다는 개인적인 취향을 가져오던 차였다.

 

변곡점을 만난 것은 팟캐스트의 음악 감독을 맡고 있는 '오래된 기타' 선생님의 작업실에서였다. 집 근처이기도 하고 음악가의 작업실이라니 신기하기도 하고 또 출강하는 고등학교의 바로 앞에 있어 동선이 좋기도 하여 기왕에도 자주 들락날락하던 곳이었다.

 

이전에도 선생님의 작업실에는 고양이나 개가 한 마리씩 있는 경우가 있었다. 선생님의 여자친구가 고양이 구조 활동을 활발하게 하는 분이고 선생님도 그에 영향을 받아 동네에서 발생하는 고양이 구조에 열심히 참가해 왔기 때문이다. 그렇게 구조한 고양이를 작업실에서 1-2주일 간 임시 보호하는 경우가 여러 차례 있었다. 다만 이전에는 막 구조된 고양이들답게 철창 안에 갇혀서도 무척이나 날카로왔고, 또 대부분 눈에 익은 코리안 숏헤어 종이라, 막연히 품어오던 고양이 양육의 계획에는 별다른 영감을 주지 못했다.

 

그런데 그 날은 작업실의 문을 열고 들어가자마자 바닥을 자유롭게 돌아댕기고 있던 붕실붕실한 털뭉치 두 마리가 내 발치로 다가와 빙빙 휘감고 돌았다. 만화에서나 보던 광경으로, 나는 처음 보는 고양이가 나뿐 아니라 어느 누구에게도 그런 식으로 친밀감과 호기심을 표현하는 것을 본 적이 없다. 들어올려 품에 안아보니 손바닥 하나 반 만한 새끼 고양이가 내 가슴에 착 안겨 고롱고롱하였다. 꼬리털뭉치가 제 몸만한 노르웨이숲 고양이였다.

 

사연은 기구했다. 세가 들어오지 않는 빈 집에, 거기에 살지 않는 주인이 어미와 새끼 세 마리를 방치해 놓고는 문을 잠가 버렸다는 것이다. 창문 사이로 들려오는 낑낑 소리에 동네의 '캣맘'들이 가서야 상황을 알고는 먹이를 좀 준 모양이다. 캣맘들은 그것만으로는 부족하다고 생각했는지 동네에서 구조로 이름난 오래된 기타 선생님을 불렀고, 선생님은 주인과 협상하여 새끼 두 마리 남매를 데려왔다고 했다.

 

지금까지는 치료와 임시 보호를 하다가 새 주인을 찾아주곤 하던 선생님은, 마침내 스스로 고양이를 키우고 싶은 마음도 들었고, 또 두 고양이가 워낙 예쁘기도 해서 그대로 입양을 결정했다는 것이다. 아닌게 아니라, 키운지 몇 달이 지나 내가 키우는 내 고양이에 정이 든 지금에도, 직접 본 고양이 중 가장 예쁜 고양이는 그 집 고양이들이다. 본 지 몇 분 만에 당장 지금부터 한 마리를 얻어다 키우고 싶다고 생각했지만 남매를 사이 좋게 행복하게 키우고 싶다는 선생님의 말에 포기할 수밖에 없었다. 그 서운한 표정이 마음에 걸렸는지 선생님은 얼마 뒤 구조한 고양이를 대뜸 우리 집까지 데려다 주었다. 사료와 모래 등의 기초지식을 정신 없이 배우고 난 뒤 선생님은 돌아가고, 세 살의 터키쉬 앙고라 흰둥이와 나만 방에서 서로를 노려보고 앉아 있게 됐다.

 

터키쉬 앙고라는 온 몸이 흰 털로 뒤덮인 '품종 있는' 고양이이다. 사자갈기 같은 것이 달린 장모종이 있고, 몸의 모양이 거의 그대로 보이는 짧은 털의 단모종이 있는데 흰둥이는 단모종이다. 접종과 중성화 수술이 되어 있고 귀 속이 깨끗한 것으로 보아 버려졌든지 집을 나왔든지 아무튼 최근의 일일 것이라 했다.

 

나는 당혹스러웠다. 무엇보다도 너무 컸다. 선생님네의 노르웨이 숲 고양이들은 털이 붕실붕실하여도 워낙에 새끼들이라 작은 데다가 눈망울이 동그래서 귀여운 맛이 있었다. 그런데 몇 시간 전에는 상상도 못 했던 내 방의 고양이는 다 큰 것이라 너무 컸고 무엇보다 보는 내가 흠칫할 정도로 사납게 생긴 눈을 갖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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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최대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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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안녕하세요. 최대호님

    고양이가 궁금하네요. 사진 좀 올려주세요~ ^^

    2017.03.03 14:58 신고 [ ADDR : EDIT/ DEL : REPLY ]
  2. 비밀댓글입니다

    2017.08.06 12:10 [ ADDR : EDIT/ DEL : REPLY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