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서일지2016.01.03 19:25

 

 

 

 

책을 사는 속도는 똑같은데 연말이니 일이 많으니 핑계를 대다 보니, 택배 상자를 열어 당장 읽고 싶은 책만 골라 잠자리 곁에 두는데도 어느새 작은 책무덤이 생겼다. 넉넉하게 시간이 난 틈을 타 전기장판 위에 벌러덩 누워 손에 잡히는 대로 읽었는데, 기묘하게도 부모, 그 중에서도 엄마에 관한 만화책 두 권을 연이어 집게 됐다.

 

첫 번째 책은 홍연식 작가의 <마당 씨의 식탁>이었다. 술 마시는 아버지와 건강이 좋지 않은 어머니는 서울의 한 반지하에서 산다. 작가인 나는 사랑하는 아내와 돌도 안 된 아들과 함께 경기도 외곽에 밭이 딸린 전원주택을 샀다. 새로 생긴 나의 세계에는 행복이 가득하다. 아내는 돈을 많이 벌지 못하는 나를 깊이 이해해 주고, 하루가 다르게 커 가는 아들은 새로운 기쁨을 가르쳐 준다. 반대로 오래된 나의 세계에는 반지하 같은 일만 가득하다. 젊었을 때부터 술을 마시고 어머니를 때리곤 하던 아버지는 나이가 들어서도 여전히 술을 마신다. 엄마는 환갑이 넘었을 때부터 이미 심각하게 아팠다. 나는 그 두 세계 사이를 오가며 괴롭고 또 행복하다.

 

작품의 큰 얼개는 작가가 엄청나게 큰 간극의 두 세계 사이에서 오는 괴리감에 대해 솔직하게 생각하는 나레이션으로 이루어져 있다. 나는 작가처럼 부모 사이의 갈등 때문에 불우한 청소년기를 보내지는 않았다. 다만 크게 공감하여 눈을 돌리고 싶을 정도였던 것은 부모와의 거리감에 대한 부분이었다. 특히 엄마와의 관계가 더 그랬다.

 

나는 나를 무척 사랑해 주는 엄마를 가졌다. 엄마가 엄마로서의 자신보다 자기로서의 자신을 앞세우는 모습은 거의 본 적이 없다. 이따금 본가를 찾았을 때 내가 살이 빠져 있으면 엄마는 혼자 살면서 밥도 못 챙겨먹고 돌아다니는 모양이라고 침울해 하고, 살이 올라 있으면 패스트푸드 같은 거나 먹어서 그런 것은 아니냐고 침울해 한다.

 

사랑인 줄 알면서도, 나는 그럴 때마다 짜증이 난다. 지극한 관심과 숨막힐 듯한 애정보다는 적당한 거리감에서 오는 신뢰가 훨씬 더 편하기 때문이다. 천성이 그런지도 모르겠으나, 한편으로 그런 생각을 가진 '큰아들'로 키운 것은 당신들의 몫도 적지 않다. 그런데 왜 이제 와서.

 

몫돈을 벌어서 보약을 사 먹느라고 살이 쪘을 수도 있지 않느냔 말이다. 오래 살려고 유산소 운동을 하다 보니 살이 빠졌을 수도 있는 것인데. 앞뒤 안 재고 걱정부터 하는 모양새가, 관심과 사랑보다는 인정과 신뢰를 받고 싶었던 내게는 불쾌하다. 걱정을 하고 싶어서 걱정하는 것처럼 느껴지는 것이다.

 

어쨌든 사랑해서 하시는 말씀 아니겠나. 내가 자식을 안 낳아봐서 엄마의 마음을 모르는 것이겠지. 등의 생각을 하며 불쾌감을 억누르지만 어쨌든 입으로는 차갑고 쌀쌀맞은 말이 나간다. 누군가가 내 모습을 카메라로 찍어서 보여준다고 치차. 내가 정말로 보고 싶지 않은 영상은 엉덩이를 벅벅 긁는 모습이나 대변을 닦는 모습 등이 아니라 차려 놓은 음식이 맛있느냐고 열 번쯤 물어보는 엄마의 질문에 쳐다도 보지 않고 차가운 표정과 음색으로 어, 맛있네 하고 대답하는 모습이다.

 

부모의 사랑에 이런 식으로 답하는 것은 잘못된 일이라는 생각은 든다. 하지만 살갑게 대하는 것도 익숙치 않거니와 살갑게 대했다가 파도처럼 덮쳐올 관심과 애정을 감당할 자신도 없는 것이 사실이다. 이런저런 생각을 하다보면 이런저런 생각을 하게 만드는 것도 좀 원망스럽다.

 

그런 내가 가장 두려워하는 것은 역시 엄마의 죽음이다. 우리 엄마 또한 사람이고, 사람은 죽게 되어 있다. 그 날을 맞닥뜨렸을 때, 내 안의 죄책감과 미처 표현하지 못한 사랑이 뒤섞여 버리면, 나는 버텨낼 수 있을까. 강인한 사람들조차도 엄마의 죽음 앞에서는 속절 없이 무너진다. 나는 강한 사람이 아니다.

 

그런데 하필 <마당 씨의 식탁>에 그 장면이 나왔다. 주인공인 나의 엄마는 점점 더 잦게 병원을 들락거리게 됐다. 갑작스런 병원비, 갑자기 잘려나간 내 일상의 시간과 마음의 여유 등은 긴 병에 효자 없다는 말을 실감나게 한다. 그러다가 엄마가 죽었다. 누구의 엄마든지 사람이니까 죽는다. 하지만 우리 엄마가 죽었다. 장례식을 마치고 돌아온 주인공은 몇십 년 동안 엄마가 맛있는 반찬을 해 주던 식탁을 떠올리고, 그러다가, 자신이 엄마한테 어떻게 했었나를 떠올린다.

 

드러내 놓고 불효를 한 것은 아니다. 남에게 손가락질 받을 만한 짓을 한 것도 아니다. 그저, 연락도 없이 갑자기 내 집으로 찾아온 엄마에게 짜증을 낸 것 뿐이다. 더 자주 올 수 없느냐는 엄마의 전화에 일이 많아서 못 간다고 말한 것 뿐이다. 나는 선득했다. 왜냐하면 신정이라고 몇 달 만에 찾은 본가에서 엄마에게 그렇게 말했기 때문이다. 하루 자고 가라. 새해인데 만두국 먹고 가라. 엄마. 나 일 있어. 그리고 내가 요 몇 년 동안 본가 내려와서 잔 적 있어? 분가한 자식한테 자고 가라고 자꾸 얘기하지 마.

 

일기를 쓴다고 뭐가 달라질 건 아니다. 독립한 지 십수 년이 지난 나는 몇 년이나마 내가 같이 살았던 집에서 자는 것도 불편했었고, 몇 달 전 이사하여 내 짐이라고는 하나도 없는 새 집에서 잘 생각은 더더욱 없다. 읽을 책도 편히 누울 곳도 없는 것도 마음에 들지 않고, 평소 습관대로 새벽녘 쯤에 잤다가는 나중에 또 뭘 핑계로 삼아서 걱정거리를 만들어 낼지 생각도 하기 싫다. 그래도 이러면 안 되는데, 하는 생각은 든다.

 

평소 마음에 맺혀있던 것 중 하나를 찔린 탓에 먹먹한 마음으로 누워 있다가 다음에 집어든 것이 <페코로스, 어머니의 보물상자>이다. 거짓말이 아니다. <페코로스, 어머니의 보물상자>는 이 카테고리에도 소개한 바 있었던 <페코로스, 어머니 만나러 갑니다>의 후속작이다. 환갑이 넘은 아들이 치매에 걸려 요양원에 들어간 어머니를 모시면서 있었던 에피소드들을 귀여운 그림체로 그려냈던 만화이다. 작품은 아들의 시선에서 치매에 걸린 어머니와의 일상을 소개하거나 어머니와 예전에 있었던 일을 떠올리기도 하고, 또는 어머니의 시선에서 이미 죽은 남편을 만나기도 하고 아들을 낳기 전인 소녀 시절의 일을 추억하는 식으로 이루어져 있다.

 

그 후속작이 2년 만에 출간되었길래 사 본 것인데, 작품을 읽기도 전에 책날개의 작가 소개에 이 책에 실린 내용을 연재하던 중 어머니가 돌아가셨다는 소식이 실려 있었다. 우연처럼 그렇게 됐다. 덕분에, 동글동글한 그림체와 4컷 만화라는 형식에도 불구하고 내내 가라앉은 기분으로 읽을 수밖에 없었다. 작가 후기를 보니 본인도 작품 전체에 추모의 분위기가 짙게 배었다고 술회하고 있었다.

 

부모가 돌아가시기 전에 잘 하자, 는 건 특별히 이러한 저명한 사상가가 말했다거나 이런 베스트셀러에 실렸던 내용이라고 소개할 만한 것도 없다. 엄마의 죽음과 그 정서까지 이렇게 자세하고 공감이 가게 다룬 만화책을, 우연히 연이어 두 권이나 보고 나서도 뭔가를 실천하지 못한다면, 도대체 책은 왜 읽고 공부는 왜 하는 것이냐고 질타를 받아도 할 말이 없다. 하지만 질타를 받지 않기 위해 어떻게 해야 할지도 모르는 일까지 억지로 벌릴 수는 없다. 일단은 신정 때 싸 주었던 고구마가 맛있었다고 문자를 한 통 보내자. 그제 잠깐 함께 걸으며 엄마는 자전거를 한 번 배워보고 싶다고 말했다. 엄마의 키에 맞는 자전거를 찾자. 비싼 것으로. 지금은 그것으로 용서해 줘라.

 

 

 

 

 

Posted by 최대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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