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발길. 새로 이사온 중곡동으로는 중랑천이 지난다. 아침 일곱시 이십분 ITX를 타기 위해 나서는 길. 군자교 너머로 모르도르 산이나 <호빗>에 나오는 외로운 산 같은 풍광이 펼쳐지기에 첫 사진을 찍었다. 실제로는 배봉산 아니면 용마산.

 

 

 

 

 

 

 

 

ITX는 이번에 처음 타봤다. 지난번에 구미보까지 갔기 때문에 이번에는 칠곡보에서부터 시작하면 되는데 칠곡보 인근으로는 시외버스가 가는 것이 없었다. 기차는 어떤가 검색해보니 마침 인근에 ITX 왜관역이 있어 그리로 가기로 한 것이다. ITX에는 자전거 거치대가 있었다. 거치대 인근에는 콘센트가 있다. 출발지까지 가는 동안 소모되는 배터리 양이 언제나 고민되는 전기자전거 라이더들에게는 희소식이라고 할 수 있다. ITX를 타실 것이라면 부스터 만땅으로 올려놓고 기차역까지 쌩쌩 달려가도 된다. 목적지까지 가는 동안 나는 계란을 냠냠 먹고 배터리는 전기를 냠냠 먹는다.

 

하차에 대해서만 굳이 적어두고 넘어가고 싶은 것이 있다. 자전거 거치대가 설치된 칸이라고 해서 출입구가 더 크거나 하지는 않고, 승하차 시간이 길지 않다는 것을 꼭 유의해야 할 것이다. 특히 내 자전거처럼 차체가 크거나 양쪽으로 백이 달려있는 경우라면 목적지의 전 역부터 미리미리 준비를 해 두는 것이 좋겠다. 자전거 손잡이나 페달이 여기저기에 덜컥덜컥 걸리거나 아니면 승차하려는 사람들이 우루루 밀고 들어와서 빠져나가는데 시간이 걸린다거나 하면 못 내린 채로 열차가 출발하는 일도 충분히 있을 수 있다고 본다. 바짝 긴장하고 내릴 준비를 하자.    

 

 

 

 

 

 

 

출발지인 왜관역. 칠곡보는 왜관역에서 위쪽으로 2km 정도 올라가면 있다. 날씨도 좋고 작은 마을의 풍경도 좋고 1년만의 국토종주도 좋고. 씽씽 나간다. 이때의 기분과 컨디션이 계속 유지만 된다면 세계 여행인들 못할 것이 있겠나.

 

 

 

 

 

 

 

몇 차례 언급한 바 있었지만, 스탬프를 찍는 종주 수첩이 없어져도 사진을 찍어두면 해당 인증센터에 들렀다는 것을 인정받을 수 있다. 여름볕이 아니라고 마스크를 안 쓴 건방진 작태. 코카콜라 산타처럼 새빨간 코를 갖게 된 지금에 보자니 따귀를 한 대 후려갈기고 싶은 사진이다.

 

 

 

 

 

 

 

 

칠곡보에서 인증 도장 쾅 찍고, 드디어 시작.

 

 

 

 

 

 

 

 

낙동강 자전거길은 강과의 거리가 무척 가깝다. 국토종주 자전거길은 코스에 따라 산 옆을 지나기도 하고 밭의 한가운데를 지나기도 하는데, 강을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두 말 않고 낙동강 자전거길을 추천하겠다.

 

 

 

 

 

 

 

 

이전에 인천부터 구미보까지의 국토종주도 한 번에 쭉 이어서 했던 것은 아니다. 시간과 체력이 허락하는 만큼 하루, 이틀 정도씩 달렸었다. 그 때마다 겪었던 것인데, 집으로 돌아갔다가 다음 번에 다시 자전거길을 찾아 바퀴를 굴리기 시작하면 반드시 이런 과정이 찾아온다. 

 

첫 페달을 밟고서 사람 하나 없고 양 옆으로는 강과 산이 광활하게 펼쳐진 길 위를 죽죽 달리기 시작하면, 그래, 이 맛에 종주를 했었지, 이렇게 고요하게 달리다보면 복잡한 고민들도 정리되겠지, 한다. 허세 잔뜩 들어간 사진은 대체로 이 때의 소산이다. 십 키로 이십 키로가 넘어가면, 슬슬 진땀이 나면서 내가 무슨 영화를 보자고 이 지랄을 다시 했는가 후회가 들고, 삽십 키로 사십 키로가 넘어가면 힘들다, 아프다, 몇 km 남았나, 의 세 가지 생각만을 돌려가면서 하게 된다.  

 

 

 

 

 

 

 

 

36km를 달려 강정고령보로. 사진 찍을 시간 있으면 마스크를 쓰지 그랬니.

 

 

 

 

 

 

 

 

국토종주를 하다보면 지자체의 무리수들을 종종 목격하게 되는데, 논뙈기 옆에 서 있던 이 무명의 장수는 다섯 손가락 안에 넣어줄 법 하다. 이때 나는 직전의 커브에서 잠깐 휘청하는 바람에 정신이 딴 데 가 있었는데 갑작스레 시야에 말과 장수가 들어와서 흠칫 놀랐다. 말과 장수가 갑작스레 시야에 들어오는 경험은 흔치 않은 일이니 대낮에 흠칫 놀란 것도 크게 부끄럽지는 않다.

 

 

 

 

 

 

 

 

죽죽 죽죽. 200km 깨졌다고 찍은 사진인데 이후에 정작 50km 깨지고 30km 깨졌을 때에는 찍을 힘도 의지도 없었다.

 

 

 

 

 

 

 

 

힘이 드는 것과 별개로 풍광을 감상하는 재미는 낙동강 자전거길이 다른 코스에 비해 월등했다. 개인적인 감상을 말하자면 한강은 아가씨 같다는 생각이 든다. 대도시 서울을 가로지를 때에는 화려하고 웅장한데 북한강 쪽으로 올라가면 새초롬하고 호리호리하고 남한강 쪽으로 내려가면서는 앙칼지고 서늘한 굽이를 보이기도 한다. 그에 비해 낙동강은 큰누이 같다는 인상을 내내 받았다. 넉넉한 너비는 크게 변하지 않고 산과 밭 사이를 일정한 속도와 각도로 구비구비 흘러간다. 나는 강이 '구비구비' 흐른다는 표현을 이번 낙동강 자전거길에서야 처음으로 실감했다. 이것이 '구비구비' 이구나, 하고. 그 일정한 리듬감이 마음을 무척 편하게 했다. 물론 그렇다고 허벅지나 무릎이 편해지는 것은 아니다.

 

 

 

 

 

 

 

 

23km를 더 달려 달성보에 도착. 집에서부터의 누적 거리로는 80km를 넘은 시점이라 슬슬 승질내는 얼굴 나온다.

 

 

 

 

 

 

 

 

승질 나는데 햇살은 좋고 낙동강은 예뻐서 더 승질 난다. 풍광이 후지면 욕이라도 시원하게 할텐데.

 

 

 

 

 

 

 

 

 

38km를 더 달려 합천창녕보에 도착. 자전거길에서만 97km를 달렸다. 총 243km의 낙동강 자전거길에 2박 3일의 일정으로 떠난 것이라 첫 날로는 괜찮은 기록이라 생각해 숙소에 들어가 쉬기로 했다. 솔직히 말하자면 일정 계산 같은 건 하지도 않았고 그저 난 더는 못해 썅이었다. 

 

도장을 찍고 돌아보니 과연 아저씨 한 분이 1톤 트럭을 짚고 서 있었다. 낙동강 자전거길의 검색을 하다가 이 블로그로 오신 분들이라면 대부분 알고 계실 그 분, 적교장 모텔 주인 아저씨. 진짜로 있었다.

 

적교장 모텔은 합천창녕보에서 10km 가량 더 가면 있는 적포교 옆의 모텔이다. 이 숙박업소는 일단 자리가 좋다. 합천창녕보에서 최종 목적지인 부산 을숙도까지는 145km 정도이다. 하루에 끊기는 부담되고 이틀에 가자니 시간과 돈이 아깝다. 열심히 고민해보면 아무래도 무리해서 하루에 가는 쪽이 덜 비합리적인 선택이 되는 거리이다. 그런데 적포교는 합천창녕보에서 10km 더 가는만큼 을숙도까지도 10km 만큼이 가까워진다. 종주 후반부의 10km는 크다. 어차피 합천창녕보 근처에 딱히 묵을만한 곳이 없기도 하다.

 

그것 뿐만이라면 크게 이름날 것은 없었을 것이다. 자전거 라이더들을 위한 편의시설, 괜찮고, 인심 좋은 인근 식당, 푸짐해 좋았지만, 이 모든 것을 다 유명하게 만든 것은 적교장 사장님의 영업 전략이다. 들어보니 사장님은 원래 교육 쪽에 몸을 담고 있었다 한다. 은퇴하고 모텔을 열었는데 하루 종일 모텔 관리를 하는 것보다는 좀 더 재미있는 일을 찾다가 1톤 트럭으로 적교장부터 창녕함안보를 오가며 손님을 모았다는 것이다. 자전거가 위태위태해서 타는 손님도 있고, 10km를 더 갈 힘이 없어 타는 손님도 있고, 이름이 난 뒤로는 신기해서 타는 손님도 생겨났다. 나도 종주를 앞두고 블로그 검색을 하던 때에는 10km나 되는 거리를 차를 타고 이동한다는 것이 마음에 걸렸지만 막상 유명한 사장님을 눈앞에 두고 재미난 얘기를 나누다 보니 한번쯤 경험해보는 것도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두런두런 얘기를 나누다보니 금세 도착한 적교장 모텔. 사장님은 날 내려놓고는 또 다른 손님들 만나고 싶다면서 다시 창녕함안보로 떠났다. 왼쪽으로 보이는 서울식당 또한 적교장 모텔에 관한 블로그 기사에서 인심 좋기로 자주 회자되는 곳이다. 맛있게 먹고 있자니 얼마든지 더 먹으라면서 공기밥을 더 가져다 주었다는 글을 읽고 갔는데 나는 처음부터 아예 두 그릇이 나왔다. 칠천원 제육볶음에 청국장 푼 된장찌개가 같이 나와서 두 그릇을 다 먹었다.

 

 

 

 

 

 

 

 

 

적교장 모텔 뒤로는 이렇게 자전거를 넣어두는 칸이 따로 있었다. 대략 십여 개의 칸이 나란히 이어져 있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종업원이 인도해 준 칸에다 자전거를 넣고 짐을 빼내고 있자니 마치 마굿간에 말을 매어두는 듯한 기분이 들었다. 내 자전거는 차체가 무거워서 이전에도 모텔 방이 이층이나 삼층일 때 끌고 올라가느라 마지막 힘을 쥐어짜던 기억이 있다. 이렇게 따로 관리해주는 곳이 있고 칸의 열쇠도 내게 맡겨주니 무척이나 편안했다.

 

 

 

 

 

 

 

침구나 욕실의 청결도 등은 깔끔한 것을 중요하게 여기는 사람이라면 충분히 흠을 잡을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나는 현금으로 하든 카드로 하든 삼만 원이라는 싼 값도 좋았고, 창 밖으로 보이는 고즈넉한 풍경도 마음에 들었고 서울식당서 먹은 밥 두 공기도 아주 흡족하였다. 2박 3일, 243km 일정 중 두번째 날인 다음 날에는 최소한 110km가 목표였다. 코스를 살펴보고 TV 채널을 몇 차례 바꿔보다가 까무룩 잠이 들었다.

 

 

 

 

 

 

Posted by 최대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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