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遊記/2014 교토

5-2. 도시샤의 두 시비

 

 

 

 

간단하게 식사를 하는 사이 해는 꼴딱 넘어가 버렸다. 숙소 쪽으로 돌아오는 길에 5일차의 마지막 목적지였던 도시샤(同志社) 대학에 들렀다.

 

 

 

 

 

 

 

 

캠퍼스 내인데도 무척 깜깜했고 인적도 드물어 잠시간 당황했다. 다행히도 그리 큰 학교가 아니어서 몇 바퀴 돌아보니 대강의 지리를 파악할 수 있었다. 

 

 

 

 

 

 

 

 

교토에 있는 많은 대학 가운데 도시샤 대학을 정하여 찾아간 이유는 이곳에 정지용과 윤동주의 시비가 있기 때문이다. 도시샤에서 정지용은 1923년에서 29년까지 6년간, 그리고 윤동주는 1942년부터 43년까지 약 1년간 수학한 바 있다.

 

도시샤 대학의 정문으로 들어가 약 오 분에서 십 분 가량 걸으면 학교 채플 건물을 만나게 된다. 두 시인의 시비는 이 채플의 맞은편에 있다. 두 시비 모두 그리 크지 않고 또 한 데에 모여있기 때문에 정신을 놓고 있다가는 찾는 도중이라도 그냥 지나칠 수 있으니 주의하자.

 

 

 

 

 

 

 

 

큰길 쪽에서 걸어가면 먼저 만나게 되는 정지용 시비. 2000년대 중반에 세워졌다 한다. 시비에는 정지용의 <압천(鴨川)>이 새겨져 있다. 압천(鴨川)은 교토를 남북으로 가로지르는 강의 이름이다. 일본어로는 가모가와 또는 카모가와라고 읽는다. 그리 길지 않아 시의 전문을 옮겨 둔다.

 

 

 

 

압천 十里ㅅ벌에

해는 저물어...저물어...

날이 날마다 님 보내기
목이 자졌다... 여울 물소리...

찬 모래알 쥐여 짜는 찬 사람의 마음,
쥐여 짜라,바시여라,시원치도 않어라.

역구풀 우거진 보금자리
뜸북이 홀어멈 울음 울고,

제비 한 쌍 떳다,
비맞이 춤을 추어,

수박 냄새 품어오는 저녁 물바람,
오랑쥬 껍질 씹는 젊은 나그네의 시름.

압천 十里ㅅ벌에

해가 저물어... 저물어...

 

 

 

어디까지나 내 개인적인 감상이지만, 교토나 가모가와만의 특색있는 장면을 읊었다기보다는 시를 쓸 때 마침 눈앞에 흐르고 있는 강의 모습을 빌어다 고향 떠난 쓸쓸한 마음을 읊은 시로 보인다. 제목이 <압천> 아니라 <양재천>이었대도 별반 달라질 것은 없을 것 같다.

 

 

 

 

 

 

 

 

정지용 시비에서 딱 서너 걸음 정도 더 가면 윤동주의 시비가 있다.

 

 

 

 

 

 

 

 

윤동주의 시비는 정지용 시비보다 10년 정도 앞선 90년대 중반에 세워졌다 한다. 시비를 세운 단체의 이름은 '도시샤 대학 교우회 코리아클럽'이다. 도시샤로 유학을 온 한국인 학생이나 아니면 한국에 관심을 갖고 있는 일본인 학생들로 이루어진 단체일까?

 

이 '코리아클럽'은 시비를 건립했을 뿐 아니라 현재까지 유지 및 관리 또한 맡고 있는 모양이다. 여행의 중반이 넘어갈 무렵 시비를 다시 찾았다가 땀을 뻘뻘 흘리며 주위를 청소하고 물수건으로 시비를 닦고 있는 중년 남성을 볼 수 있었다. 어떤 이유로 이 시비를 닦고 계신지 여쭤보자 남성 분은 본인이 코리아클럽의 사무국장이라고 소개하며 명함을 건네주었다. 고마운 마음이 드는 한편으로, 청소하실 때 사람들이 시비 옆에 놓고 간 물품까지 수거해 가시는지, 수거해 간 물품들은 어떻게 되는지 묻고 싶은 생각 간절했지만 무례해 보일까봐 그만두었다.

 

 

 

 

 

 

 

시비의 오른편에는 <서시>가 새겨져 있다. 오른편은 한국어로, 왼편은 일본어로 새긴 것이다. 시비를 보다가 예전부터 알고 있던 어떤 사실에 문득 생각이 미쳤다.

 

윤동주의 시비가 후배나 연구자들에 의해 세워진 것과 달리 정지용의 시비는 그의 고향인 충북 옥천군과 옥천문화원의 지원으로 세워진 것이다. 교토에 있는 동안 도시샤 대학에서 정지용에 관한 학회가 열리는 것을 우연히 알게 된 일이 있었다. 신기해 하며 학회 소개글을 입수해 살펴보니, 이 학회가 몇 년 동안 중단되었다가 오랜만에 재개되는 것인데, 그 이유가 지난번의 지자체장이 후원을 해주지 않았기 때문이었다고 한다. 새로 당선된 이는 이 사업을 다시 재개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한 모양이다. 지자체장 한 명의 선택에 따라 학회가 열리고 말고 하는 것을 보니, 그에 관한 연구가 활발할 뿐 아니라 이름을 딴 글짓기 대회도 곳곳에서 열리고 있는 윤동주와 어쩔 수 없이 비교가 됐다. 

 

시인들이 뽑은 현대 시인 랭킹 같은 것을 보면, 정지용은 늘 첫번째 아니면 두번째의 상석에 앉아있는 한편 윤동주는 다섯 손가락 안에도 꼽히는 것을 좀처럼 보지 못했는데, 보통 사람들의 시각은 확실히 그와 다른 모양이다. 하기사 학생들에게 강의를 해봐도 윤동주는 수업이 끝나면 분명히 몇 명인가의 팬이 생기는 것에 비해 정지용은 그닥 인기를 끄는 꼴을 못봤다.

 

  

 

 

 

 

 

 

보는 순간 조금 울컥했던 한라산. 그리고 맨 뒤쪽에 가려진 참이슬.

 

 

 

 

 

 

 

 

게스트하우스에 돌아왔더니 마침 숙박객들을 대상으로 한 두부전골 파티가 열리고 있었다. 게스트하우스에서 팔고 있는 캔맥주 두세 개 정도를 연달아 사 마시자 주인장은 이제부터 같이 마시자며 청주 큰 병을 따주었다.

 

마음껏 마시다가 주변의 사람들에게 플라잉 타이거 수염을 나눠주었는데, 옆자리에 앉았던 일본 여성 둘이 수염과 내 얼굴을 번갈아 보다가 큰 소리를 지르며 깜짝 놀랐다. 너무 깜짝 놀라는 모습에 나도 놀랐다. 더듬더듬 들어보니, 두 사람도 이날 오후에 금각사 라인을 돌아다녔는데 이상한 안경과 수염의 남자가 계속 보여서 괴이하게 여겼었다는 것이다. 나는 재미있는 인연이라고 여겨 더욱 신나게 마셨다.

 

 

 

 

 

 

 

 

자정 무렵에 여성분들은 모두 방으로 돌아가고 한중일의 남자들 몇만이 남았다. 다 같이 통하는 언어가 없어서 내 노트를 돌려가며 간단한 한자로 필담을 나누었다. 술을 홀짝거리다가 노트가 오면 내가 하고 싶은 말을 써서 돌리고 다시 술을 홀짝거린다. 묘사해 놓고 보니 무척 고즈넉한 장면 같지만 실제로는 경마장이나 파친코에 와있는 것처럼 꺅꺅 소리를 질러가며 다같이 재미있게 놀았다. 아무래도 술 탓이었던 것 같다. 다음날 아침에 일어나서 몇십 장에 달하는 필담록을 다시 뒤져보니 전혀 재미가 없었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