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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기장/2014

귀신 꿈

 

 

 

대낮에 책상에 기대어 앉아 졸다가 꿈을 꾸었다.

 

 

꿈에 나는 고등학생이었다. 정신을 차려보니 나는 해가 뉘엿뉘엿 지는 무렵 학교 앞의 도로에 서 있었다. 앗차,

 

집에 가야지, 하고 나는 학교 쪽으로 몸을 돌렸다. 고작해야 백 미터 안짝일 거리를 걷는 동안 해는 삽시간에 졌

 

다. 학교를 올려다 보니 불 켜진 교실이 많지 않았다.

 

 

꿈 속의 나는 교실이 3층에 있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중앙 계단을 이용해 1층부터 올라가는데, 선생님과 학생

 

들이 띄엄띄엄 내려오고 있었다. 복도의 불이 다 꺼져있어 몸의 윤곽만 보일 뿐 얼굴은 볼 수 없었다. 안녕, 안녕

 

히 가세요, 라고 인사해 보아도 그들은 내 쪽을 쳐다보지도 않고 천천히 갈 길을 갔다. 팔을 전혀 움직이지 않는

 

것이 눈에 띄었다.

 

 

3층에 올라섰을 때 기분은 이미 이상했다. 오른쪽은 복도와 교실 모두 불이 꺼져 있었고 왼쪽 복도에도 불이 켜

 

진 방은 두 곳 뿐이었다. 저 멀리 복도 끝에 불이 켜진 방이 내 교실이었고 내 쪽에 좀 더 가까운 다른 한 방은 무

 

슨 장소인지 알 수 없었다. 앞뒤 문이 닫혀 있어 창문으로만 빛이 희미하게 새어나오는 내 교실과 달리, 교실의

 

반 정 도 크기인 다른 방은 철제로 된 문이 열려 있어 그 앞의 복도까지 환하게 빛내고 있었다. 좋지 않은 일이

 

일어날 것 같다는 확신이 들었지만 교실에 가기 위해서는 그 방을 지나야만 했다.

 

 

빠른 걸음으로 지나가며 곁눈질로 본 문에는 '밴드부'라는 명패가 붙어 있었다. 방 안에는 네 명의 학생들이 있

 

었는데, 발걸음을 멈추고 다시 몇 걸음 뒤로 걸어가 그 방으로 들어갈 수 밖에 없었던 것은, 한 명이 어릴 때부

 

터 아주 친했던 내 친구이고, 그리고 다른 한 명이 무언가 '이상한 것'이라는 느낌이 들었기 때문이다.

 

 

나는 최대한 '이상한 것'과 눈을 마주치지 않으려고 노력하며 친구에게 집에 같이 가자고 졸랐다. 친구는 다른

 

학생들과 이야기할 것이 있다고 했지만 나는 더 말을 듣지 않고 그의 손목을 잡아 내 교실로 향했다. 어리둥절

 

해 하는 친구를 잠시 세워두고 나는 허둥지둥 가방을 쌌다. 책상 위의 물건을 쓸어넣고 돌아서자 교실의 뒷문

 

에 '이상한 것'이 서 있었다. '이상한 것'은 쓸데없는 생각 하지마, 라고 말했다.

 

 

나는 친구의 손목을 잡아채어 앞문으로 도망쳤다. 3층 복도를 줄달음질쳐 중앙 계단에 이르렀을 때쯤 뒤를 돌

 

아보았다. 복도는 온통 깜깜해서 그것이 쫓아오는지 아닌지 알 수 없었고, 따라오고 있어야 할 친구도 보이지 않

 

았다. 손 쪽을 내려다보니 나는 손목까지만 남은 친구의 손을 잡고 있었다.

 

 

하지만 나는 확신이 있었다. 친구의 손과 손목은 축 늘어져 있는 것이 아니라 실제로 친구에게 연결된 것처럼

 

위쪽을 향해 있었으며 그것을 끌어당기는 내 손에 친구의 중량감이 전달되고 있었기 때문이다. 나는 이 학교를

 

벗어나면 친구의 모습이 돌아올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지체할 틈이 없어 다시 몸을 돌려 계단을 뛰어내려

 

가는데 뒤에서 노랫소리가 들려왔다. 처량하고 낮은 노래인데 몹시 크게 들렸다.

 

 

아주 긴 시간을 달려 1층의 문을 벗어나자, 생각했던대로 친구는 다시 모습을 드러냈다. 고개를 돌려 방금 통과

 

한 1층 문을 보니, '이상한 것'은 어느샌가 거기에 서서 새된 목소리로 노래를 부르고 있었다. 나와 친구를 똑바

 

로 바라보며 노래를 하고 있어 섬찟한 기분이 들었다가, 이내 저것은 저 문을 나오지 못한다, 는 생각이 들었다.

 

내가 그 생각을 하자마자, 그것은 노래를 딱 멈추고 나를 바라보며 히죽히죽 웃다가, 또 만나자, 고 말하고 어두

 

운 복도로 사라졌다.

 

 

잠에서 깨어보니 이마와 가슴팍에 땀이 나 있었다. 나는 티셔츠 안으로 손을 집어넣어 가슴팍의 땀을 몇 차례 훔

 

치면서 정말로 또 만나고 싶지 않다, 고 생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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