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일기장/2014

 

 

 

 

 

 

 

꿈을 꾸었다. 음은 똑같고 박자만 다른 네 마디의 기타 멜로디가 계속해서 흘러 나왔다. 꿈 속의 세상에서는, 행

 

복해지기 위해서는 그 멜로디를 평생동안 들어야 한다고 했다. 평생동안 듣기로 결정했다고 해서 반드시 행복

 

해지는 것은 아니었다. 단지 행복해지기 위한 기본 조건에 불과할 뿐이었다. 나는 그 소리를 평생 들을지 아닐

 

지 아직 결정하지 않았는데도 멜로디는 계속해서 들려왔다. 귀를 틀어막자 이번에는 머리 속까지 울려왔다. 지

 

겨울 뿐 아니라 무섭기까지 하다고 생각하자 소리는 더 크게 들려왔다. 잠시 후에는 길가의 소음이나 주변 사람

 

들의 대화는 거의 들리지 않고 시끄러운 기타 소리만 들리는 지경에 이르렀다. 이대로 평생을 살아야 한단 말인

 

가, 하고 소름끼쳐 하다가 나는 잠에서 깼다.

 

 

 

잠에서 깼다지만 눈을 뜨거나 정신을 똑바로 차린 것은 아니고, 단지 이불에 파묻힌 채로 방금 그것이 꿈이었음

 

을 알 수 있는 정도만큼의 혼곤한 상태였다. 잠시 멍하니 있자 방금 전까지 지긋지긋하게 듣던 멜로디가 옆방에

 

서 들려왔다. 간간이 흥얼거리는 노래 소리도 섞여 있었다. 조금 짜증이 났지만 꽤 오랫동안 글을 읽다가 잠시

 

눈을 붙였던 터라 잠이 귀해서 꾹 참고 다시 자기로 했다. 그렇게 몇 번을 비몽사몽하는 사이 예의 그 꿈을 몇 번

 

이나 다시 꾸었다.

 

 

 

마지막 꿈에서는 꿈 속에서도 이것이 내가 몇 번째나 꾸고 있는 그 꿈인 것을 알고 있었기 때문에 지겨움과 고

 

통이 한층 심했다. 더는 잠을 청해 봐야 아무런 효용이 없겠다 싶어 나는 비척비척 일어나 옆 방으로 가서 문을

 

두드렸다. 네 번을 두드리는데, 그 중 세 번째의 두드림이 시작되기도 전에 기타 소리가 멈추고 방에서는 '네,

 

죄송합니다'라는 사무적인 말투의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두 번의 문 두드리는 소리만 듣고도 대번에 멈출만큼,

 

저도 남에게 피해 끼치는 소리라는 걸 알고 있었던 것인가. 음악에 열중해서 저도 모르게 큰 소리가 났다면 그러

 

려니 하겠지만, 알면서도 그저 즐거워서 계속하고 있었던 것 뿐인가. 게다가 낯짝 한 번 안 보이고 이 새끼가 정

 

말, 하고 - 화가 났지만.

 

 

 

어차피 소리는 그쳤고 잠은 꼬리를 보일락말락 하면서 도망가는 중이라 나는 정신이 나지 않도록 눈을 감은 채

 

로 되도록 천천히 이불로 돌아왔다. 하지만 잠귀 밝은 분이라면 누구나 알고 있듯 한번 집나간 잠은 여간해서는

 

돌아오지 않는다. 눈을 감은 채로 뻣뻣한 뒷목을 주무르며 뒤척거리다가 못내 일어나 그림을 그리고 일기라도

 

다.

 

 

 

귓전에 들리는 소리가 꿈에 나오는 것이야 상시 있는 일이니 그러려니 하지마는, 그것이 왜 '행복의 필요조건'으

 

여겨졌던 것일까.

 

 

 

 

 

'일기장 > 2014' 카테고리의 다른 글

메탈웍스 <히메지 성>  (3) 2014.03.01
귀가길  (0) 2014.02.23
에펠 탑  (2) 2014.02.14
눈두더쥐  (0) 2014.02.10
얼려 먹기  (0) 2014.02.0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