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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기장/2013

프로젝트 I (가칭)

 

 

 

 

 

 

어젯 밤. 언젠가는 봐야지 생각하면서도 보고 나서의 감정을 주체할 수 없을까 두려워 밀고 밀어 놓았던 어떤 다

 

큐멘터리 영화를 보았다. 퇴직한 아저씨가 말기 암 선고를 받고 죽기 전에 해야 할 일들을 하나하나씩 정리해 나

 

가는 것이 주요한 내용으로, 세 명의 자녀 중 막내딸이 그 과정과 장례식을 모두 영상으로 담고 살아오며 촬영했

 

던 홈 비디오 등을 합쳐 편집한 것이다.

 

 

 

'손녀들과 놀아주기'나 '아내에게 사랑한다고 말하기' 같은 것은 극 영화에서 많이 본 것 같은 소재였던 탓에 나

 

는 오히려 좀 담담하게 봤다. 정말 울컥했던 장면은 두 개 정도였는데, 그 중 하나는 주인공이 임종을 앞두고 숨

 

이 쌕쌕거리는 와중에도 큰아들을 붙잡고 장례식에 불러야 할 사람들을 하나하나 다시 복기하는 장면이었다. 혹

 

시나 빠뜨리는 사람이 있다면 그에게 큰 결례가 될 것이라 생각했는지 주인공은 그 명단을 몹시 꼼꼼하게 챙겼

 

다. 큰아들이 집의 컴퓨터를 뒤져봤는데 초대자 명단의 화일을 찾을 수 없다고 하자, 주인공은 혹시 그럴까봐 백

 

업 파일을 만들어 두었다고 말했다. 그런 대화가 오고가는 과정을 지켜보며 나는, 당장 숨이 넘어가서 정말 중요

 

마지막 몇 글자만을 말해야 하는 때가 아니라면, 삶이란 저렇게 죽기 몇 분 전의 마지막까지도 치열하고 분분

 

하게 살아야 하는 것일까, 하는 슬픔을 느꼈다. 

 

 

 

마음을 움직였던 다른 하나는 중간중간 교차편집으로 들어가 있는 옛 영상들이었다. 영화가 시작하며 최초로 등

 

장하는 주인공의 모습은 얼굴에 검버섯이 잔뜩 피고 온 몸이 깡마른, 전형적인 모습의 말기 암 환자이다. 그러나

 

그로부터 고작 몇 년 전의 은퇴식 영상만 보아도 그는 말끔한 정장 차림기름기 두둑한 회사 임원이었다. 조금

 

더 거슬러 올라가면 언젠가 암이 찾아올지도 모르고 야근과 잦은 회식을 거듭하던 일본 고도 성장기의 샐러리맨

 

이었으며, 계속 올라가면 아름다운 여인을 차지한 기쁨에 웃음을 감추지 못하던 새신랑이기도 하였고 넘치는

 

기를 주체 못해 친구들과 과정된 포즈로 사진을 찍던 대학생이기도 하였다. 영화는 두 시간도 안 되는 상영 시

 

동안 오육십 년의 모습을 담아내는데, 시간이 지남에 따라 살이 쪘다가 빠졌다가, 안경을 썼다가 벗었다가, 머리

 

가 빠졌다가 세었다가 하는데도, 특징적인 이목구비에서는 모두 한 사람의 모습이라는 것을 쉽게 알 수 있었다.

 

그래서 더 묵직했던 것 같다. 정말이구나. 사람이라는 것이 태어나서는 어리다가 젊었다가 늙었다가 죽는구나,

 

하고.

 

 

 

무척 여운이 남아 영화가 끝나고도 나는 캄캄한 방 안에서 가만히 스탭 롤을 쳐다보고 있었다. 과연 보고 난 후

 

의 감정을 주체하기 어려울 것이라는 예상은 맞았구나, 하면서. 맞아줘서 고맙다, 하면서.

 

 

 

한편으로 들었던 잡감은. 이 영화는 2011년에 개봉했고 주인공 할아버지는 69세에 별세하셨다 하니, 얼추 계산

 

보면 40년대를 전후해서 태어났을 것이다. 그 때에 태어난 사람이 아이들의 성장 과정은 물론 20대 때의 결

 

혼식까지 영상으로 남길 수 있었던 것은 그가 급격한 발전 도상에 있던 일본이라는 국가에서 태어났기 때문일

 

것이다. 동년배의 한국인이라면 일단 그 나이 때에의 영상을 촬영한다는 것이 물리적으로 불가능했을 뿐만 아니

 

라 혹 그런 물적 기반이 제공된다 하더라도 굳이 돈을 들여 그런 모습들을 찍어 두었어야 하는지에 대한 의문을

 

가졌을 것이다. 그런 경향은 내 부모님 세대까지도 대체로 비슷한 것 같다.

 

 

 

주인공 할아버지가 기록을 남기는 것을 각별히 좋아했을 수도 있지 않나. 혹은. 우리나라에도 그런 할아버지들

 

이 있을 수 있지 않나. 우리 엄마아빠는 나 어릴 때 비디오 많이 찍어 줬다. 등등의 질문과 반문이 있을 수 있다.

 

좋다. 괜찮다. 나는 여기에서 경제적으로 더 발전한 국가의 국민들이 덜 발전한 국가의 국민들에 비해 기술, 문

 

화적으로 삶의 풍요로움을 더 누릴 수 있을 것이라는 가설을 증명하고자 하는 것이 아니다. 다만 내 개인적인 경

 

우에 비추어, 훗날의 나와 내 지인들에게 큰 기쁨을 줄 수 있는 기술적, 문화적 환경이 이미 조성되어 있는데도

 

지나치고 있는 것은 없는가를 생각해 보고자 그런 잡감을 떠올렸던 것이다. 

 

 

 

멀리 갈 것 없이, 바로 이 블로그가 내게 그런 환경이다. 그저 하루하루의 일을 적었을 뿐인데 처음 시작할 때로

 

부터 시간은 어느덧 십 년이 훌쩍 넘었고 기사는 곧 천 팔백 개가 된다. 오늘의 일상이 언젠가의 추억이 되는 것

 

 이 블로그를 운영하며 몇십 몇백 차례나 겪어왔던 일이다. 그렇다면 보다 적극적으로 나와 내 주변 사람들의

 

흔적을 남겨두면 더 강한 향의 추억이 되지 않겠나.

 

 

 

이런 사고를 거쳐 도출된 것은 아니지만, 일정한 주기를 두고 가까운 지인들의 흑백 사진을 찍고 싶다, 지인들

 

과의 인터뷰를 기록해 두고 싶다, 는 생각은 여러 차례 한 적이 있었다. 주기는 일 년이어도 좋고 삼 년이어도

 

좋다. 나는 이미 이 일을 십 년이 넘게 해 왔으니 다음 주기가 오기 전에 블로그를 그만 두는 일은 아마도 없을

 

것이라고 자신할 수 있다. 지금 그의 모습. 지금 그에게 소중한 것. 지금 그에게 두려운 것. 등을 남겨두면 주

 

기가 거듭될 수록 점점 더 소중한 기록이 되어가지 않을까. 물론 이도저도 지금 꼭 해야 할 일 다 하고 난 뒤에

 

해야 할 것이긴 하지만, 죽음의 직전에 돌아보았을 때에 어느 쪽이 꼭 해야 할 일이었을지는 모를 일이다.

 

 

 

당장 시작해 보고자 하여도 인터뷰이를 선정하고 질문의 포맷을 선정하는 것에는 정성을 들여야 할 터이니 오

 

늘은 그저 신발끈을 묶는 정도 만으로 일단 마무리 짓는다. 맨 위의 사진은 아마도 이 프로젝트가 시작하면 아주

 

초기의 대담객으로 등장하게 될 사촌형 윤도환 씨. 가장 최근에 만났던 인물이라 뜬금없이 초상권 빌려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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