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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서일지

황교익/정은숙, <서울을 먹다> (따비. 2013. 3.)

 

 

 

 

 

 

짬이 나면 '초능력이 두 개만 생긴다면 무엇을 택할까', '딱 한 곡, 내가 작곡하고 부른 것으로 만들 수 있다면 어

 

떤 노래를 고를까' 따위의 잡상까지도 마다 않는, 그래서인지 때이른 흰머리가 장마 뒤 잡초처럼 쑥쑥 잘도 나는

 

천성이지만, '지알고 있는 것을 그때도 알았더라면'이라는 잡상 계의 수퍼스타는 어쩐지 내 마음을 잡지 못했

 

다. 사람은 그때그때의 깜냥, 그러니까 능력과 그릇, 딱 그만큼의 지식과 품성을 담고 있기 마련이다. 어차피 그

 

때 모르고 있었던 거라면, 미래에서 내가 슝 하고 날아가 붙잡아 앉혀 놓고 일일이 가르쳐 주더라도, 제가 직접

 

생각하거나 겪기 전까지는 크게 깨닫고 몸에 새기지는 못할 것이다. 그 정도의 애매한 각오라면 모르고 살았던

 

것의 결과와도 크게 다르지 않은 경로를 걸었을 가능성이 높다.

 

 

 

 

그러니까, '어떤 초능력이 생길까'도 시간을 들여 심각하게 고민하는 주제에, 이 잡상에 한해서 나는 '알아봐

 

소용없어'하고 가혹하게 상을 들어엎는 셈이다. 편파도 보통이 아니지만 체득한 사실이니 어쩔 수 없다. 그래도

 

반드시 하나 골라야 하는 상황이 된다면, 이를테면 하나라도 고르지 않을 경우 수 분 내로 남산에 끌려가거나

 

혹은 거열형을 당하게 된다면, 나는 과거의 나에게 ''서울 것'에 대한 증오의 정체'를 알려주라고 말하겠다.

 

 

 

 

내 고향 인천에 대한 복잡한 심사는 이 블로그에서 직간접적으로 수 차례 피력한 바 있다. 스무 살 부터의 지인

 

들 가운데 술자리를 여러 차례 한 이들은 아마 진력나게 들은 이야기이기도 할 것이다.

 

 

 

 

고향이니까, 일단은 사랑스럽다. 인천 사람을 만나면 하다 못해 거리나 동 이름 하나 같이 아는 것만 해도 재미

 

가 있다. 하지만 이것은 어느 정도라도 뿌리박은 유년기를 보낸 이라면 누구나 갖고 있을 수준의 애향심이다. 내

 

경우 그 위에 하나 더 얹것은, 눈물이다.

 

 

 

 

물리적으로야 지도에서 꽤 넓은 한 자리 차지하고 있지만, 역사적 맥락에서 인천은 자신만의 이름을 가져본 적

 

이 별로 없다. 인천은 대부분 서울의 외항으로 그 자리에 있었을 뿐이다. 인천에서 정작 유명했던 것은 자유공원

 

이나 월미도, 동인천 차이나 타운와 같이, '서울 사람'들이 편하고 싸게 바다나 이국적 풍경을 보고자 했을 때 들

 

르는 곳에 한정되었다. 돈 있고 똑똑한 이들은 진작에 서울로 가거나, 혹은 서울에 적을 두고 인천에 와서 돈을

 

벌어갔다. 그래서, 인천에는 '돈 있는' 사람이나 '똑똑한' 사람을 위한 무언가가 크게 필요가 없었다. 그런 사람

 

이 없었기 때문이다. 전 국토가 서울과 비(非)서울로 나뉘는건 남한 모든 곳에 해당하는 이야기라는 반문도 종종

 

접한다. 그렇다면, 전국 시도 단위 학업 성취도에서 인천이 십수년 째 꽁찌나 꽁찌에서 두 번째라는 사실은, 인

 

천에서 특히 멍청한 애들이 태어나기 때문이라고 설명할 건가? 다시 한번, 인천은 인천이 아니라 서울의 외항이

 

다.

 

 

 

 

그래서 내 고향 인천을 생각하면 눈물이 났다. 말로만 6대 광역시이지, 인구로는 부산 다음 가면서 한 번도 그

 

덩치에 값하는 대접 받아본 적 없는, 그래서 그 땅에 난 새끼들한테 젖줄 한 번 제대로 대어 봐 준 적 없는. 그 팔

 

자를 보다 보면 답답하기도 하고 거기서 태어난 내 처지가 분하기도 하고 그래서. 이십 대의 초반에 입이 닳도록

 

주안이 어땠네 동인천이 어땠네를 외고 다녔던 것은, 그렇게라도 해야 눈물이 덜 날 것 같아서였을 것이다.

 

 

 

 

방향성 없는 분노는 필경 주적(主敵)을 만든다. 나를, 우리를 이렇게 만든 것. 그것은 너희 '서울 것'들이다. 하

 

지만 '서것'들을 진짜로 만나본 적은 없으니, 내 머리 속에 그린 그 실체는 '나 아닌 어떤 것'이다. 내가 갖고

 

싶었으나 갖지 못했던 어떤 것을 모두 가진 가상의 존재.

 

 

 

 

내 이십대의 초반은 대체로 '그'와의 차별성을 갖는 데에 전력으로 투자되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가 모든

 

것을 다 가진 것은 아니다. 그가 갖지 못하고 내가 가진 것 중에 무언가 소중한 것이 있을 것이다. 그것을 찾아내

 

내 아이덴티티로 삼자. 내 삶에는 이유가 있다. 아니, 있어야 한다. 문자로 정리되지는 않았지만 대체로 이런 무

 

의식을 갖고 살았던 것 같다. 그 결과는 대체로 참담해서 일일이 적고 싶지가 않다. 나 아닌 어떤 것으로 내 정체

 

성을 삼는 것의 결과가 좋을 리 없다. 이십대의 성과는 고스란히 삼십대의 숙제가 됐다.

 

 

 

 

그런데 어느 날 문득 생각해 보니, 내가 서울 한복판에 산 것도 십 년이 넘었다. 지금까지 산 만큼만 더 살면 인

 

천에서 자란 이십 년과 맞먹게 되고, 그 뒤로는 서울에서 더 오래 산 사람이 되고 만다. 그러면 나는 '서울 것'이

 

아닌가? 아니면, 지금은 아니지만 언젠가는 되게 되는 것일까? 아니, 무엇보다, 십 년이 넘는 서울 생활동안, 그

 

때 그렇게 미워하던 '서울 것'을, 단 한 번이라도 좋으니 살아있는 형태로 눈 앞에서 본 일이 있는가?

 

 

 

 

명확한 해답이 있지 않아 '강남 3구 어딘가에 숨어 있을거야' 따위의 생각을 하며 어영부영 살던 중 만난 이 책.

 

맛 칼럼니스트 황교익과 작가 정은숙이 공동으로 집필한 <서울을 먹다>이다.

 

 

 

 

구성은 간단하다. '서울을 대표하는 음식' 열일곱 가지를 선정해서, 황교익과 정은숙, 그리고 편집자 세 명이 함

 

께 그 음식을 먹고 그 음식과 관련된 이야기를 한 편씩 써낸다. 그러니까 이 책에는 들어가는 글과 나오는 글을

 

제하고 총 서른네 편의 글이 있는 셈이다. 이야기의 성격에 제한은 없다. 맛 칼럼니스트 황교익의 전공을 따라

 

음식의 유래를 써도 좋고, 그 날 먹은 식당 아주머니와의 인터뷰도 좋고, 음식에 얽힌 개인적 소회도 좋다.

 

 

 

 

그렇지만 그게 간단한 게 아니다. 애당초, '서울 음식'이란 무엇인가. 서울 사람들이 가장 많이 먹는 음식인가?

 

서울에만 있는 음식인가? 혹여 그런 것이 있다 하면, 서울 사람은 왜 유난스레 그 음식을 먹는가. 서울 사람이

 

어떤 사람이길래. 아니, 이도저도 전에, 당초 '서울'이란 무엇인가. 한양이 있던 그 자리에 새로 붙은 이름일 뿐

 

인가?

 

 

 

 

그러니까 그 질문들을 밟아나간 이 책은 결국, '서울은 무엇인가'에 대한 답이기도 하다. '음식으로 풀어낸 서울

 

의 삶과 기억'이라는 부제에는 이러한 고민이 반영되었을 것이다. 공동 저자 중 한 명인 황교익은 들어가는 글에

 

서 일단 '서울 사람들이 두루 먹으며, 또 그 음식을 먹으면서 자신이 서울이라는 문화공동체 안에서 살고 있다고

 

느끼게 해 주는 음식'을 '서울 음식'이라 정의하는 것으로 첫 걸음을 떼었다. '두루 먹'는 것은 서울시내 해당 음

 

식의 음식점 분포 수를 살피면 될 일이니, 결국 중요한 것은 '서울이라는 문화공동체 안에서 살고 있다'는 느낌,

 

그 느낌이다.

 

 

 

 

그래서 이들이 '서울을 먹는다'고 생각하며 먹은 음식들을 소개하면 다음과 같다. 서울 설렁탕. 종로 빈대떡. 신

 

림동 순대. 성북동 칼국수. 마포 돼지갈비. 신당동 떡볶이. 용산 부대찌개. 장충동 족발. 청진동 해장국. 영등포

 

감자탕. 을지로 평양냉면. 오장동 함흥냉면. 동대문 닭한마리. 신길동 홍어. 홍대 앞 일본음식. 을지로 골뱅이.

 

왕십리 곱창.

 

 

 

 

그 모든 글을 마치고 나가는 글인 '음식이 있어 서울살이가 견딜 만했다'에서 정은숙은 이렇게 썼다.

 

 

 

 

...지친 동료의 어깨를 툭 치며 함께 가 국물 하나 남김 없이 들이켜던 설렁탕, 고향 친구의 신세타령을 들으며

 

먹던 종로 뒷골목의 빈대떡과 막걸리, '술 권하는 사회'를 살아 내며 새벽의 쓰라린 속을 풀기 위해 찾던 청진동

 

해장국, 노동의 허기와 피로를 씻어 주던 영등포의 감자탕과 소주, 동생들의 학비를 대기 위해 하루 종일 미싱을

 

돌린 후 짬 내어 먹던 왕십리의 곱창, 갈 수 없는 고향의 어머니를 그리며 먹던 을지로의 평양냉면과 오장동의

 

흥냉면...

 

 

 

 

그 어디에도 내가 그토록 미워하던 '서울 것'은 없었다. 오히려 한 동네에서 나고 자랐던 내 삶보다 훨씬 거칠고

 

팍팍한 발자국들이 있었을 뿐이다. 정은숙의 같은 글에 따르면, '3대에 걸쳐 서울 사대문 안에서 살았던 사람'이

 

라는 기준으로 서울 토박이가 몇 퍼센트인가 조사해 보니, 실제 토박이는 서울 전체 인구의 7%도 안 되었다 한

 

다. 인천에 인천이 없듯, 서울에도 서울은 없었던 셈이다. 남의 땅에, 그것도 크고 정신없는 남의 땅에 와서 그들

 

은 열심히 일해서 열심히 먹고 살았고, 그 흔적은 서울의 구석구석에 음식으로 남겨졌다. 수도 서울이라는 화려

 

한 외피는, 실은 이주민의 슬프고 땀내 나는 역사 위에 난짝 얹혀져 있었던 것이다. 그래서 나는, 태어나 처음으

 

로 서울을 위해 슬펐다. 여기나 저기나, 여기서 살게 된, 저기서 살게 된, 사람이 있었을 뿐이다.

 

 

 

 

다시 한 번, '지알고 있는 것을 그때도 알았더라면'. 어린 나에게, '서울에도 서울은 없다'를 가르쳐 줬으면 좋

 

겠다. 그들은 '서울 사람'이 아니고, 너도 '인천 사람'이 아니다. 네가 너인 이유는, 시간이 걸리고 어렵겠지만,

 

네가 속한 어딘가나 속하지 못한 어딘가에서 찾지 말고, 네 안에서 찾았으면 좋겠다, 라고. 깜냥에 차고 넘칠 그

 

내용을 일일이 훈계하듯 말로 하는 것보다는, 이 책 <서울을 먹다>를 택배로 보내게 해 주면 좋겠다. 하다 못해

 

'서울 것들은 뭐 먹는지 봐야지'하고라도 끝 장은 넘길 것이다. 아, 청소년의 내가 마지막 장을 넘기는 그 장면

 

을 상상하다 보니 새삼 간절하긴 하다. 지금 알고 있는 것을 그때도 알았더라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