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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서일지

이택광, <마녀 프레임> (자음과모음. 2013,2.)

 

 

 

 

 

경희대학교 글로벌커뮤니케이션학부 영미문화전공 교수인 이택광 씨(이하 이택광)의 '문화비평'.

 

 

 

철학과에서 석사 학위를, 영문학과에서 문화이론 박사 학위를 취득한 저자의 이력은, 멍하니 글자만 읽으면 무

 

척 낯설다. 대부분의 우리는 무슨 대학 무슨 과 석사, 동(同) 대학 동 학과 박사라는 목록에 익숙하다. 그런데 철

 

학 석사와 문화이론 박사라면, 일관된 주제의식을 가진 학자라면 걷지 못할 길도 아니다. 사실은, 생각해 보면,

 

세부전공에 따라 관심과 주제의식이 한정되어 가는 대부분의 현실 쪽이 오히려 더 이상(異常)한 편이 아닐까 싶

 

다. - 이상한 편이 모욕적으로 느껴진다면 특수한 편이라고 해도 좋다. -

 

 

 

하지만 정해진 제도권의 안팎을 오가는 발걸음은 역시 위태롭다. 그에게는 빨리 학위를 취득하고 강의를 해서

 

이력을 쌓는 한편 생활비도 충당해야 하는 현실적 곤란이 있고, 자신의 관심에 부응하는 개별적 커리큘럼을 스

 

스로 마련해 검증하고 학습해야 하는 학문적 난제 또한 상존한다. 개별적 커리큘럼이라고 거창하게 표현해 놓은

 

연구 행위의 실체는, 해당 전공의 입장에서 볼 때엔 말하자면 '딴 짓'이다.

 

 

 

'딴 짓'이 옳은지 그른지, 유용한지 무용한지에 대해서는 여러 의견이 있을 수 있다. 나는 그 입장들을 대부분

 

중하지만, 어쨌든 스스로는 필수라고 생각한다. 확신과 자신감을 갖기 어려운 이 선택에서, 이따금 풀어지는 결

 

의를 굳게 하는 것은 역시 그런 길로 일가를 이룬 선배들의 모습이다. '영미문화전공' 교수에 임용된 뒤에도 

 

비평이라는 틀로 정치, 외교, 경제 등에서 화제의 걸그룹 논란까지를 다루며 자신만의 영역을 확립한 이택광

 

생한 롤모델 중의 한 명이다.

 

 

 

그런 이택광이 이번에 꺼내든 것은 '마녀 프레임'. 마녀 사냥이라는 현상에 조지 레이코프의 프레임 이론을 접목

 

해 본 연구의 결과물이다. 부제인 '마녀는 어떻게 만들어지는가'에서도 볼 수 있듯, 이택광은 마녀 사냥의 역사

 

적 연원이나 그것이 불러온 결과적 사실 등에 대해서는 다루지 않는다. 그가 관심을 갖는 것은 마녀 프레임이 발

 

생하는 배경과 작동하는 원리이다. 160쪽 가량의 분량에서 다종한 사례 등과 함께 전해지는 주장을 거칠게 정리

 

하면 다음과 같다.

 

 

 

중세를 살고 있던 사람들에게 근대는 하나의 '위기'였다. 신이 인간의 사고를 정지시키고 있든, 영주가 신분제를

 

악용해 고혈을 쥐어짜고 있든, 어쨌든 대부분의 사람들에게 중세는 '내가 알고 있는', 그래서 '특이 사항이 발생

 

해도 얼마든지 대처할 수 있는' 일상이었다. 직접적으로 행복하지 않다 하더라도 적어도 안정이라는 형태의 행

 

복은 보장되어 있던 셈이다.

 

 

 

그러나 근대는 중세를 유지하고 있던 여러 '체계'의 전복을 요구했다. 제도적으로는, 신과 신분제가 차지하고 있

 

던 자리에 국가-민족-자본이라는 새로운 위계가 들어서기 시작했다. 1500년대에서 1700년대 사이에 진행된 대

 

항해 시대는 지리적 팽창과 새로운 문물의 유입으로 인식의 지평을 극적으로 확장시켰으며, 과학 지식은 마침내

 

신으로부터 독립해 무섭게 발달하기 시작했고, 인쇄술의 발달은 이러한 지식이 더 큰 영향력을 갖는데 혁혁한

 

공을 세웠다. 아울러 자본주의의 자본 축적 방식의 확산은 농민 계급이 갖고 있던 가치관과 공동체 의식을 위협

 

하는 작용을 가졌다.

 

 

 

결과적으로는 근대인들이 축복하고 마음껏 향유하였던 이러한 변화들은, 그러나 중세인들에게는 '평온한

 

상'을 위협하는 괴물에 다름 아니었다. 중세인들은 '안정'이라는 행복을 빼앗길 위험에 노출되었다. 가치관의

 

혼란을 극복하고 무너진 도덕적 경계를 복원하는 길은 사회적 병리 현상을 낳은 원인을 찾아서 제거하는 것이

 

다. 과학적 논리를 가진 이 방법론은 그러나 원인의 진단과 처방의 실행에 있어 전혀 엉뚱한 방향성을 갖기 시

 

작했다. 오랜 기간동안 함께 살아온 '익숙한 타자', 즉 '마녀'를 사냥하기 시작한 것이다.

 

 

 

다시 한 번 쉽게 정리하면 이렇다. 평온하게 지내던 익숙한 일상에 여러 변화들이 나타나기 시작한다. 그 변화들

 

은 사회 구성원이 개인적 차원에서 적응하거나 극복할 수 있는 수준의 것이 아니다. 생활 환경의 변화와 가치관

 

의 혼란 등으로 '불안'해진 이들은 무의식적으로 이 불안을 해결하기 위한 방안을 모색하는데, 이때 집단적으로

 

도출된 답안이 바로 마녀 사냥이었던 셈이다.

 

 

 

'마녀'의 핵심적인 특징은 '마법'과 '여자'이다. '마법'에는 '불가사의하며 신성성을 띄고 있는' 특성이 있다. 인

 

간의 힘으로는 다 파악할 수 없다는 점에서 숭앙되었던 이 특성은, 그러나 근대 과학의 출현과 동시에 이성으로

 

해할 수 없기 때문에 배척받는 신세가 되고 말았다. 그러나 마녀 사냥은 있어도 마법사 사냥은 없었던 것에서

 

보듯, 마법 하나만으로는 사람들 마음의 불안을 씻어낼 수가 없었다. 사람들은 좀 더 강력한 기호성을 갖는 대상

 

을 원했고, 여기에 섹스(性)라는 기호와 직접적 연관성이 부여된 '여자'가 호출되었다. 사회적 약자이기 때문에

 

탄압과 처벌이 더욱 용이했다는 점도 암묵적으로 고려되었을 것이다.

 

 

 

이렇게 해서 '비를 내리게 하거나 점을 쳐주는 할머니'였던 마녀는 '저주를 내리며 악마와 통정하고 남성의 정기

 

를 빼앗는 요녀'로 탈바꿈하게 된다. 그 역사적 결과는 '마녀 사냥'이라는 익숙한, 그러나 끔찍한 어감의 단어가

 

오랜 시간이 지나도 다른 문화권에서까지 활발히 활용되는 것으로 능히 짐작할 수 있다.

 

 

 

중세에서 근대로 넘어가는 시기에 일어났던 구체적 사건인 '마녀 사냥'은 이제 시효가 끝났다. 저자가 드는 예처

 

럼, 근대 사회의 대중은 이제 <메리 포핀스>나 <위키드>, <해리 포터> 시리즈 등에서와 같이 현실세계에 대한

 

알레고리로서 마녀와 마법을 소비할 뿐이다. 익스펙토 페트로눔!

 

 

 

그러나 분명한 작동 원리를 갖는 문화 현상으로서의 마녀 사냥은 언제나 유효하다. 특히 가치관의 혼란이 일어

 

나는 시기에는 언제나 그렇다. 자신의 능력과 인식을 뛰어넘는 변화에 맞설때, 사람은 당연히 불안하게 되고, 또

 

당연히 그 불안을 해소하고자 한다. 오래 전의 교훈을 바탕 삼아 적확한 해법을 찾으면 좋겠지만, 변화와 혼란은

 

대체로 사람이 여유를 가질 수 있는 수준을 높이 뛰어넘기 마련이다. 그래서, '마녀'는 언제든지 다시 나타날 수

 

있다. 특히 경제발전과 민주화라는 근대화를 빠른 속도로 통과하고 있으며, 군중심리가 맹렬하게 작동하는 상호

 

감시의 공간인 인터넷이 광범위하게 확보된 한국 사회에서, 마녀의 출현은 필연의 수준에 속하는 것일 것이다.

 

'마녀 사냥'을 '마녀 프레임'으로 다시 읽어야 하는 필요가 여기에 있다.

 

 

 

 

 

직접 인용까지 마다하지 않으면서 일단 요약해 놓았지만, 이택광의 다른 저서가 그러하듯 그의 책을 읽는 것

 

주장을 정리하는 것 이상의 재미가 늘 보장된다. 예상치 못했던 적확한 사례의 등장, 비약처럼 보이지만 꼼꼼히

 

읽어보면 분명한 접점을 갖는 사고의 종횡무진, 그리고 추가적인 공부를 돕는 풍부한 이론 인용까지. 쉽지는 않

 

지만 남는 것이 많은 독서. 이런 책을 쓸 수 있는 공부를 하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