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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서일지

정봉주/지승호, <대한민국 진화론> (미래를소유한사람들. 2013, 1.)

 

 

 

 

 

 

전문 인터뷰어 지승호 씨의 34번째 인터뷰집. 한 줄 평 먼저. '정봉주의 대권 프로젝트 선언문?'.

 

 

 

각계 각층의 인사들을 만나 그 내면까지를 파고들어 온 지승호 마저도 '봉도사' 만큼은 어쩔 수 없었던 것일까?

 

자발적인 것인지 압도당한 것인지는 알 수 없지만, 읽는 내내 나는 난처한 얼굴로 지나치게 발랄한 개를 산책시

 

키는 주인의 모습이 떠올랐다. 아무리 인터뷰집이라지만 인물의 육성이 이렇게까지 생생하게 전달되는 글을 볼

 

줄이야.

 

 

 

<나는 꼼수다>에서 입소 전 그의 마지막 육성을 들은 것도 벌써 재작년의 일이니 오랜만의 목소리에 반가울 법

 

도 하련만, 귀여웠던 '깔때기'가 대책없이 커져버린 탓에 팬이었던 나로서도 경각심의 눈초리가 번뜩 뜬다. 권력

 

자의 치부나 정치 필승 전략의 목소리가 경쾌하게 뽑아져 나오던 그 깔대기에서는 이제 중후한 저음의 미래 비

 

전이 흘러나온다.

 

 

 

1년간의 수감생활은 그에게 많은 것을 남긴듯 하다. 한 권의 인터뷰집 안에서 그는 감옥에서의 일상을 소개하는

 

데 그치지 않고 그 안에서 얻은 종횡무진의 지식과 깨달음을 전파한다. 그 주제는 정치, 산업, 언론, 외교, 교육

 

에 이른다. 이건 일개 정치인 정도가 아니라 대통령, 혹은 그 이상 가는 사람의 인터뷰집이 아닌가, 하는 나의 의

 

혹의 눈길이 목차 한 곳에 멈춘다. 아아, 5장의 부제는 무려 '감옥으로부터의 사색'이다!

 

 

 

화려한 속도로 우석훈이나 선대인, 장하준을 비평하는 데에는 굳이 놀랄 것이 없다. 제레미 러프킨도 작금의 정

 

치인이라면 충분히 언급할 수 있는 이름이다. 그런데 정봉주는, 이제 자기의 주장을 위해 논어와 맹자를 인용하

 

는 경지에 올라섰다. 게다가 그냥 논어와 맹자도 아니고, 도올 김용옥 선생과 사제 관계를 맺으며 접하게 된 논

 

어와 맹자다. 마침내 '위대한 정치인'의 아우라를 갖추셨다고 순수하게 감탄하지 못하고 '김어준 형이나 주진우

 

형이 얼른 말려줘야 할텐데'라고 생각하는 것은 나 뿐일까?

 

 

 

아무튼 그는 '정치공학의 명수'나 '최전방 공격수', '나꼼수의 큰형'을 넘어서서 이 책의 부제대로 '미래 한국 마

 

스터플랜'을 제시하는 지도자로 거듭 나고자 하는 것 같다. 전자라면 팬의 한 명으로서 언제까지나 응원할 마음

 

있지만, 후자라면 그라고 해서 특별 대우를 해 줄 수는 없다. 그는 탄돌이 출신의 초선 국회의원이며 조직이

 

싸주지 않은 공격수이다. 말하자면, 정치인으로서의 그는 언론인으로서의 그보다 더 많은 검증을 필요로 하고

 

또 받게 될 것이다. 책의 내용이 암시하고 있는 위치에까지 올라가고자 한다면 더더욱 그렇다. 물론 나는 건승을

 

바라마지 않지만, 허풍의 기세와 사이즈는 한층 더 커진 채 재미는 빠져버린 그의 거대담론을 읽다 보니 우려의

 

마음이 들지 않을 수 없다. 한번 걱정을 하고 보니 유력하고 유능한 젊은 지도자처럼 보이도록 찍은 것 같은 표

 

지사진마저도 마음에 걸린다. 기왕에 큰 꿈을 품었다면, 다 익기도 전에 그 모양을 뽐내다가 어딘가에서의 화살

 

을 맞아 떨어지지 않길 간절히 바란다. 진심이다.

 

 

 

우연인지 의도된 것인지, 학교 도서관에서 빌린 이 책의 속표지에 그의 친필 사인이 있었다. 책을 막 펼쳤을 때

 

엔 역시 봉도사! 라며 웃었지만 다 읽고 나서 다시 보니 이러다 허경영? 이라는 생각도 든다. 끝에 덧붙여 둔다.

 

 

 

 

 

 

 

 

 

 

 

 

 

업데이트. 독후감을 쓰고 난 다음날 우연히 서점에 들렀다가 서가에 놓여있는 <대한민국 진화론>을 들춰보니,

 

아래에 사진으로 올려놓은 다른 버전의 사인이 들어 있었다. 밑에 쌓여있는 같은 책들에도 모두 같은 사인이 '인

 

쇄되어' 있었다. 돌아다니다가 우연히 집어든 박경철 씨의 신작에도 이처럼 속표지에 친필처럼 보이는 사인이

 

인쇄되어 있었다. 막 시작된 하나의 유행인 모양인데 큰 호응이 있을 것 같지는 않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