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일기장/2011

청송 심씨와 반남 박씨



요새 강독하고 있는 홍한주의 <지수염필>에서 눈길이 가는 부분을 번역하게 되어 그 결과를 옮겨 적는다. 전고의 세세

한 고증 등에서는 부족한 실력 탓에 흠이 있을지 모르나 대강의 문맥을 전달하는 데에는 큰 무리가 없다고 여긴다. 작

업을 마치고 나서 추가로 공부를 하는 도중에 이미 훨씬 좋은 번역들이 많이 나와 있는 것을 알게 되었지만, 스스로 옮

긴 것이 가상하기도 하고 읽는 이 가운데 혹 이전에 이런 사실을 몰랐던 분이라면 재미삼아 접할 법한 이야기라 생각

하여 윤문해서 올린다. 




...세종께서 새로이 즉위하셨을 때 태종께서는 상왕의 자리에 있었다. 박은은 총애를 받아 태종 곁에서 일을 맡고 있었

는데, 안효 심온이 세종의 장인인 것을 시기하여 마침 그가 중국에 사신으로 간 틈을 타 백방으로 근거 없는 비방을 퍼

뜨리고는 돌아오기를 기다렸다. 상왕(태종)은 심온이 돌아오는대로 압록강에서 그를 잡아 사사시키도록 명하였는데,

세종과 소헌후께서도 막을 수 없었다. 박은은 사사로이 자신의 병사를 내어 심온의 집을 포위하고 그 자손들을 남김

없이 잡아 죽였다. 


  그 때 심온의 아들은 갓난아이였다. 그 유모는 심씨 일족이 몰살되는 것을 차마 볼 수가 없어 자기 아들을 심씨 집안

의 자식이라 속여서 바치고는 심온의 아이를 들쳐업고 도망쳤다. 밤낮으로 대관령을 넘어 선산 지역의 강씨 집안으로

피신하였는데, 강씨 부부는 전날 밤의 꿈자리도 있었고 늙도록 자식이 없기도 했기 때문에 그를 받아들여 아들로 삼았

다. 아이는 자라서 강씨 성을 따라쓰며 감히 세상으로 나올 생각을 하지 않고 그 생을 마쳤다. 심온의 손자 대에 이르

러 마침내 심씨 성을 되찾았다. 


  원래 박은과 심온은 절친한 벗이었다. 심온이 스스로 목숨을 끊으라는 명을 받았을 때 분통해 하며 관리에게 말하기

를 "내 죄가 무엇인가?"라고 하자 관리는 "영출다문(令出多門, 명령이 여러 군데에서 나온다. 즉 지휘계통이 어지럽혀

졌다는 뜻.), 네 자 뿐이오."라고 말했다. 심온이 "호조판서는 어찌하여 나를 구해주지 않는가?"라고 물었다. 이때의 호

조판서는 박은이었다. 관리는 웃으며 "이 모든 것이 바로 호조판서가 만든 일이오."라고 말했다. 심온은 이를 갈며 말

하기를, "내 자손 가운데 혹 살아 남는 이가 있어 다행히 내 말을 전해 듣거든, 앞으로 영원히 박은의 집안과는 혼사를

맺지 말도록 하라."라고 하였다.


  나(홍한주)는 소시적에 심소남 어른에게 이 이야기를 들은 적이 있었다. 심 어른은 심온의 후예이자 명종 임금의 장

인이신 청릉군 심강의 종손이니, 그 이야기가 반드시 집안에 대대로 전해졌을 것이며 틀린 데가 없을 것이다... ...심씨

집안은 심온의 이 말을 지켜 대대로 박씨와는 혼인을 하지 않았는데 오직 현령을 지낸 심융이라는 자만 박씨 집안에

데릴사위로 들어갔으나 끝내 자녀는 없었다고 한다.




이렇게 해서 심온의 집안인 청송 심씨와 박은의 집안인 반남 박씨는 혼인의 관계를 맺지 않게 되었다는 이야기이다.

글을 번역하는 도중 나와 동년배인 반남 박씨에게 문자를 보내어 이런 이야기를 아냐고 물어보자 처음 듣는다는 답이
 
돌아왔다. 그러나 인터넷을 검색해 보면 청송 심씨인 분들이 운영하는 블로그서 이 기록을 심심치 않게 찾을 수 있다.
 
세종 즉위 초기이니까 약 육백 년 전의 일인데도 새로이 등장한 새로운 매체에까지 꾸준히 생명력을 갖고 기록되고 있

는 것이다. 


재미삼아 검색해 보니, 2000년에 통계청에서 행한 성씨별 인구 조사가 있었다. 가장 최근 자료는 사실 2010년에 행해

진 전수 조사인데, 이 조사 결과의 인구조사 부문과 가구주택조사 부문을 다 뒤져봐도 성씨별 인구는 나와있지 않다.

잘못된 자료에 접근한 것인지, 아니면 더이상 성씨별 인구수는 조사하지 않는 것인지 모르겠다.


아무튼, 2000년의 자료에 따르면 청송 심씨는 212,717 명으로 38위, 반남 박씨는 139,438 명으로 60위이다. 나는 반남

박씨가 60위 밖에 안 돼? 하고 조금 놀랐는데, 워낙 빼어난 문인이 많아 내 전공에서는 훨씬 귀에 익은 집안이다 보니

무의식 중에 인구수도 훨씬 많을 것이라고 생각했던 모양이다. 물론 둘을 합쳐봐도 사백만이 넘는 김해 김씨나 삼백

만이 넘는 밀양 박씨에 비하면 도토리 키재기이지만, 그래도 약자의 편을 들게 되는 것이 인지상정인지라 심씨 자손의

수가 한 배 반쯤 더 많다는 것을 확인하자 어쩐지 사필귀정이라는 말이 떠올랐다. 딱히 박씨 집안을 폄훼하려는 뜻이
 
있는 것은 아니다.


가장 최신 자료인 2010년 자료도 무척 재미있었다. 유의미한 결과들을 분석해서 다음 번에 정리해 올리기로 하고, 오

늘은 검색 도중 찾은 성씨별 인구수를 끝에 덧붙인다. 본래는 333번째인 772명의 옥천 옹씨(玉川 邕氏)까지 있으나,

스크롤이 너무 길어지는 것 같아 20만명 이상인 40위까지만 올리고, 글에 등장한 반남 박씨와 내 성씨인 최씨는 중간

중간에서 오려내어 붙여 둔다. 10년 전 조사이고, 가문의 인구수가 많다고 해서 본인과 큰 관계가 있는 것도 아니니 재

미삼아 보시기 바란다.



1. 김해김씨(金海金氏)-4,124,934        2. 밀양박씨(密陽朴氏)-3,031,478

3. 전주이씨(全州李氏)-2,609,890        4. 경주김씨(慶州金氏)-1,736,798

5. 경주이씨(慶州李氏)-1,424,866        6. 경주최씨(慶州崔氏)-976,820

7. 진주강씨(晋州姜氏)-966,710           8. 광산김씨(光山金氏)-837,008

9. 파평윤씨(坡平尹氏)-713,947          10. 청주한씨(淸州韓氏)-642,992

11. 안동권씨(安東權氏)-629,291        12. 인동장씨(仁同張氏)-591,315

13. 김녕김씨(金寧金氏)-513,015        14. 평산신씨(平山申氏)-496,874

15. 순흥안씨(順興安氏)-468,827        16. 동래정씨(東萊鄭氏)-442,363

17. 달성서씨(達城徐氏)-429,353        18. 안동김씨(安東金氏)-425,264 (구)

19. 해주오씨(海州吳氏)-422,735        20. 전주최씨(全州崔氏)-392,548

21. 남평문씨(南平文氏)-380,530        22. 남양홍씨(南陽洪氏)-379,708 (당홍계)

23. 창녕조씨(昌寧曺氏)-338,222        24. 제주고씨(濟州高氏)-325,950

25. 수원백씨(水原白氏)-316,535        26. 한양조씨(漢陽趙氏)-307,746

27. 경주정씨(慶州鄭氏)-303,443        28. 문화류씨(文化柳氏)-284,083

29. 밀양손씨(密陽孫氏)-274,665        30. 함안조씨(咸安趙氏)-259,196

31. 의성김씨(義城金氏)-253,309        32. 창원황씨(昌原黃氏)-252,814

33. 진주정씨(晋州鄭氏)-238,505        34. 나주임씨(羅州林氏)-236,877

35. 여산송씨(礪山宋氏)-232,753        36. 남원양씨(南原梁氏)-218,546

37. 연일정씨(延日鄭氏)-216,510        38. 청송심씨(靑松沈氏)-212,717

39. 평택임씨(平澤林氏)-210,089        40. 은진송씨(恩津宋氏)-208,816

43. 해주최씨(海州崔氏)-181,840        58. 강릉최씨(江陵崔氏)-140,854

60. 반남박씨(潘南朴氏)-139,438       108. 탐진최씨(耽津崔氏)-68,127

135. 수성최씨(隋城崔氏)-51,780       155. 삭녕최씨(朔寧崔氏)-38,736

175. 화순최씨(和順崔氏)-31,173       185. 초계최씨(草溪崔氏)-27,213

226. 영천최씨(永川崔氏)-18,721       256. 강화최씨(江華崔氏)-14,557

260. 낭주최씨(朗州崔氏)-14,264       267. 충주최씨(忠州崔氏)-13,466

279. 동주최씨(東州崔氏)-11,699




'일기장 > 2011' 카테고리의 다른 글

트램폴린  (0) 2011.08.30
생일  (0) 2011.08.26
8월 22일 홍대 벼룩시장, 한강 플로팅 스테이지 우쿨렐레 콘서트  (0) 2011.08.22
  (0) 2011.08.21
아마도 올 해의 마지막 납량  (1) 2011.08.1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