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기장/20112011.08.25 01:39


요새 강독하고 있는 홍한주의 <지수염필>에서 눈길이 가는 부분을 번역하게 되어 그 결과를 옮겨 적는다. 전고의 세세

한 고증 등에서는 부족한 실력 탓에 흠이 있을지 모르나 대강의 문맥을 전달하는 데에는 큰 무리가 없다고 여긴다. 작

업을 마치고 나서 추가로 공부를 하는 도중에 이미 훨씬 좋은 번역들이 많이 나와 있는 것을 알게 되었지만, 스스로 옮

긴 것이 가상하기도 하고 읽는 이 가운데 혹 이전에 이런 사실을 몰랐던 분이라면 재미삼아 접할 법한 이야기라 생각

하여 윤문해서 올린다. 




...세종께서 새로이 즉위하셨을 때 태종께서는 상왕의 자리에 있었다. 박은은 총애를 받아 태종 곁에서 일을 맡고 있었

는데, 안효 심온이 세종의 장인인 것을 시기하여 마침 그가 중국에 사신으로 간 틈을 타 백방으로 근거 없는 비방을 퍼

뜨리고는 돌아오기를 기다렸다. 상왕(태종)은 심온이 돌아오는대로 압록강에서 그를 잡아 사사시키도록 명하였는데,

세종과 소헌후께서도 막을 수 없었다. 박은은 사사로이 자신의 병사를 내어 심온의 집을 포위하고 그 자손들을 남김

없이 잡아 죽였다. 


  그 때 심온의 아들은 갓난아이였다. 그 유모는 심씨 일족이 몰살되는 것을 차마 볼 수가 없어 자기 아들을 심씨 집안

의 자식이라 속여서 바치고는 심온의 아이를 들쳐업고 도망쳤다. 밤낮으로 대관령을 넘어 선산 지역의 강씨 집안으로

피신하였는데, 강씨 부부는 전날 밤의 꿈자리도 있었고 늙도록 자식이 없기도 했기 때문에 그를 받아들여 아들로 삼았

다. 아이는 자라서 강씨 성을 따라쓰며 감히 세상으로 나올 생각을 하지 않고 그 생을 마쳤다. 심온의 손자 대에 이르

러 마침내 심씨 성을 되찾았다. 


  원래 박은과 심온은 절친한 벗이었다. 심온이 스스로 목숨을 끊으라는 명을 받았을 때 분통해 하며 관리에게 말하기

를 "내 죄가 무엇인가?"라고 하자 관리는 "영출다문(令出多門, 명령이 여러 군데에서 나온다. 즉 지휘계통이 어지럽혀

졌다는 뜻.), 네 자 뿐이오."라고 말했다. 심온이 "호조판서는 어찌하여 나를 구해주지 않는가?"라고 물었다. 이때의 호

조판서는 박은이었다. 관리는 웃으며 "이 모든 것이 바로 호조판서가 만든 일이오."라고 말했다. 심온은 이를 갈며 말

하기를, "내 자손 가운데 혹 살아 남는 이가 있어 다행히 내 말을 전해 듣거든, 앞으로 영원히 박은의 집안과는 혼사를

맺지 말도록 하라."라고 하였다.


  나(홍한주)는 소시적에 심소남 어른에게 이 이야기를 들은 적이 있었다. 심 어른은 심온의 후예이자 명종 임금의 장

인이신 청릉군 심강의 종손이니, 그 이야기가 반드시 집안에 대대로 전해졌을 것이며 틀린 데가 없을 것이다... ...심씨

집안은 심온의 이 말을 지켜 대대로 박씨와는 혼인을 하지 않았는데 오직 현령을 지낸 심융이라는 자만 박씨 집안에

데릴사위로 들어갔으나 끝내 자녀는 없었다고 한다.




이렇게 해서 심온의 집안인 청송 심씨와 박은의 집안인 반남 박씨는 혼인의 관계를 맺지 않게 되었다는 이야기이다.

글을 번역하는 도중 나와 동년배인 반남 박씨에게 문자를 보내어 이런 이야기를 아냐고 물어보자 처음 듣는다는 답이
 
돌아왔다. 그러나 인터넷을 검색해 보면 청송 심씨인 분들이 운영하는 블로그서 이 기록을 심심치 않게 찾을 수 있다.
 
세종 즉위 초기이니까 약 육백 년 전의 일인데도 새로이 등장한 새로운 매체에까지 꾸준히 생명력을 갖고 기록되고 있

는 것이다. 


재미삼아 검색해 보니, 2000년에 통계청에서 행한 성씨별 인구 조사가 있었다. 가장 최근 자료는 사실 2010년에 행해

진 전수 조사인데, 이 조사 결과의 인구조사 부문과 가구주택조사 부문을 다 뒤져봐도 성씨별 인구는 나와있지 않다.

잘못된 자료에 접근한 것인지, 아니면 더이상 성씨별 인구수는 조사하지 않는 것인지 모르겠다.


아무튼, 2000년의 자료에 따르면 청송 심씨는 212,717 명으로 38위, 반남 박씨는 139,438 명으로 60위이다. 나는 반남

박씨가 60위 밖에 안 돼? 하고 조금 놀랐는데, 워낙 빼어난 문인이 많아 내 전공에서는 훨씬 귀에 익은 집안이다 보니

무의식 중에 인구수도 훨씬 많을 것이라고 생각했던 모양이다. 물론 둘을 합쳐봐도 사백만이 넘는 김해 김씨나 삼백

만이 넘는 밀양 박씨에 비하면 도토리 키재기이지만, 그래도 약자의 편을 들게 되는 것이 인지상정인지라 심씨 자손의

수가 한 배 반쯤 더 많다는 것을 확인하자 어쩐지 사필귀정이라는 말이 떠올랐다. 딱히 박씨 집안을 폄훼하려는 뜻이
 
있는 것은 아니다.


가장 최신 자료인 2010년 자료도 무척 재미있었다. 유의미한 결과들을 분석해서 다음 번에 정리해 올리기로 하고, 오

늘은 검색 도중 찾은 성씨별 인구수를 끝에 덧붙인다. 본래는 333번째인 772명의 옥천 옹씨(玉川 邕氏)까지 있으나,

스크롤이 너무 길어지는 것 같아 20만명 이상인 40위까지만 올리고, 글에 등장한 반남 박씨와 내 성씨인 최씨는 중간

중간에서 오려내어 붙여 둔다. 10년 전 조사이고, 가문의 인구수가 많다고 해서 본인과 큰 관계가 있는 것도 아니니 재

미삼아 보시기 바란다.



1. 김해김씨(金海金氏)-4,124,934        2. 밀양박씨(密陽朴氏)-3,031,478

3. 전주이씨(全州李氏)-2,609,890        4. 경주김씨(慶州金氏)-1,736,798

5. 경주이씨(慶州李氏)-1,424,866        6. 경주최씨(慶州崔氏)-976,820

7. 진주강씨(晋州姜氏)-966,710           8. 광산김씨(光山金氏)-837,008

9. 파평윤씨(坡平尹氏)-713,947          10. 청주한씨(淸州韓氏)-642,992

11. 안동권씨(安東權氏)-629,291        12. 인동장씨(仁同張氏)-591,315

13. 김녕김씨(金寧金氏)-513,015        14. 평산신씨(平山申氏)-496,874

15. 순흥안씨(順興安氏)-468,827        16. 동래정씨(東萊鄭氏)-442,363

17. 달성서씨(達城徐氏)-429,353        18. 안동김씨(安東金氏)-425,264 (구)

19. 해주오씨(海州吳氏)-422,735        20. 전주최씨(全州崔氏)-392,548

21. 남평문씨(南平文氏)-380,530        22. 남양홍씨(南陽洪氏)-379,708 (당홍계)

23. 창녕조씨(昌寧曺氏)-338,222        24. 제주고씨(濟州高氏)-325,950

25. 수원백씨(水原白氏)-316,535        26. 한양조씨(漢陽趙氏)-307,746

27. 경주정씨(慶州鄭氏)-303,443        28. 문화류씨(文化柳氏)-284,083

29. 밀양손씨(密陽孫氏)-274,665        30. 함안조씨(咸安趙氏)-259,196

31. 의성김씨(義城金氏)-253,309        32. 창원황씨(昌原黃氏)-252,814

33. 진주정씨(晋州鄭氏)-238,505        34. 나주임씨(羅州林氏)-236,877

35. 여산송씨(礪山宋氏)-232,753        36. 남원양씨(南原梁氏)-218,546

37. 연일정씨(延日鄭氏)-216,510        38. 청송심씨(靑松沈氏)-212,717

39. 평택임씨(平澤林氏)-210,089        40. 은진송씨(恩津宋氏)-208,816

43. 해주최씨(海州崔氏)-181,840        58. 강릉최씨(江陵崔氏)-140,854

60. 반남박씨(潘南朴氏)-139,438       108. 탐진최씨(耽津崔氏)-68,127

135. 수성최씨(隋城崔氏)-51,780       155. 삭녕최씨(朔寧崔氏)-38,736

175. 화순최씨(和順崔氏)-31,173       185. 초계최씨(草溪崔氏)-27,213

226. 영천최씨(永川崔氏)-18,721       256. 강화최씨(江華崔氏)-14,557

260. 낭주최씨(朗州崔氏)-14,264       267. 충주최씨(忠州崔氏)-13,466

279. 동주최씨(東州崔氏)-11,69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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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최대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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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전주와 해주 정도는 알고 있었지만, 최씨 본관이 열네 개나 되는지는 몰랐다. 아마 분파해서 나간 경우가 대부분일 것 같다.

    2011.08.25 01:44 신고 [ ADDR : EDIT/ DEL : REPLY ]
  2. 전 13위로군요.

    2011.08.28 00:01 신고 [ ADDR : EDIT/ DEL : REPLY ]
  3. mrylenol

    모든 일은 태종(이방원)이 아들 세종의 후일을 생각하여 뒤에서 계획하고 지시한 것인데 뒷날 청송심씨와 그 외손이 되는 세종의 후손들이 차마 세종의 아버지인 태종을 비방할 수 없어 그 일에 다소 관련이 있는 박은에게 모든 책임을 떠 넘긴 것인데 그걸 아무런 확인도 하지 않고 후세인들이 그대로 전달한 내용임.

    역사학계에서도 이미 그 내용이 과장된 것이라고 인정하고 있는데 대부분의 사람들은 옛날 이야기를 그저 흥미 위주로만 받아들이는 버릇이 있으니 도무지 고쳐지지를 않고 대대로 내려온 이야기임.

    2011.12.29 11:07 신고 [ ADDR : EDIT/ DEL : REPLY ]
  4. 그렇군요. 위의 글을 쓴 홍한주는 19세기의 인물인데, 말씀하신 것이 사실이라면 비판 없이 받아들이는 양상은 지금 뿐 아니라 그 때에도 있었던 모양입니다. 관련된 논문이 있는지 더 찾아보겠습니다. 가르침 주셔서 감사합니다.

    2011.12.29 21:35 신고 [ ADDR : EDIT/ DEL : REPLY ]
  5. mrylenol

    홍한주의 이야기가 역사적 사실과 매우 다르다는 것은 조선왕조실록의 기록을 보면 간단하게 확인할 수 있습니다. 심온은 아들 3형제를 두었는데 그들은 세종의 아들 문종이 왕위에 오르면서 곧바로 복권되어 대대로 관직에 등용되어 복록을 누렸습니다.
    예를 들어, <문종실록> 문종1년(1451 신미년) 8월 6일(신미) 1번째기사 등등을 찾아보시기 바랍니다. 홍한주의 이야기는 항간에 떠돌아 다니는 설화를 검증 없이, 그리고 여과없이 흥미 위주로 기록한 것입니다.
    세상 사람들은 그런 이야기에 많은 흥미와 즐거움을 느끼기 때문이겠지요.

    2011.12.30 07:31 신고 [ ADDR : EDIT/ DEL : REPLY ]
  6. 가르쳐 주신 신미년의 첫 번째 기사입니다.

    '성승(成勝)을 판의주목사(判義州牧事)로, 강희안(姜希顔)을 수 사헌부 장령(守司憲府掌令)으로 임명하고, 심회(沈澮)·심결(沈決)은 모두 처음으로 돈녕부 주부(敦寧府注簿)로 제수하고, 심미(沈湄)는 전농 직장(典農直長)을 임명하였다. 심회와 심결은 바로 심온(沈溫)의 아들이고, 심미는 심온의 맏아들 심준(沈濬)의 아들인데, 심준이 먼저 죽었기 때문에 심미에게 제수한 것이다.'

    실록이라 할지라도 모두 믿을 수는 없는 것이지만, 가치판단적 평론이 아니라 관직의 제수라는 팩트라면 믿지 않을 도리가 없습니다. 그 집안에 응분하는 성은이 있었음을 잘 알겠습니다. 이것은 반론이 아니라 과문하여 드리는 질문인데, 왕대가 바뀐 뒤 복권된 집안을 대상으로 하여 모종의 거래가 있었을 것이라고 추정하는 것은 합리적이긴 합니다만, 더 객관적인 지표를 알 수 있을지 궁금합니다. 그렇지 않다면 이론이 아니라 추정의 차원에 그치지 않을까요?

    아울러 한 가지만 더 가르쳐주셨으면 합니다. 사람들이 이 이야기를 듣고 흥미를 느끼는 것은, 위와 같은 드라마틱한 시초가 있어서이기도 하지만, '조선시대'라고 하는 피상화된 시대로부터 '문명화'된 지금까지 양가 간에 통혼이 이루어지지 않고 있다는 기이한 사실에 더 크게 기반하고 있지 않을까요. 만약 통혼이 이루어지지 않았다면 시초도 과장, 과정도 거짓이니 저부터라도 앞장서서 이 이야기는 모두 거짓이라고 말해야 하겠습니다만, 시초는 과장되었으나 통혼이 이루어지지 않은 것은 사실이라고 한다면 그것은 시초의 진실성 여부를 떠나 이미 일정한 무게의 역사적 의미를 담보하고 있는 것이 아니겠습니까? 실제로 긴 시간동안 통혼이 이루어지지 않는다는 문화사적 현상이 이루어졌는데도 시초의 과장 여부만을 주목한다면 호고벽이라는 비판을 받을까 우려되기도 합니다. 그래서, 실제 통혼이 이루어졌는지 아닌지를 기록으로 살펴보려면 어떤 방법으로 접근해야 할지 가르쳐주셨으면 합니다. 석사 과정이긴 하나 한국 한문학을 공부하고 있습니다. 사이트나 검색어, 문집명, 혹은 관련 논문 작성자 등을 간단하게라도 일러 주시면 그 뒤로부터는 일차적으로 스스로 공부해 보겠습니다.

    2011.12.30 13:22 신고 [ ADDR : EDIT/ DEL : REPLY ]
  7. mrylenol

    저는 그 분야의 전문 학자가 아니기 때문에 실제 진실이 어떠했는지를 전문적으로 연구해보지 못했고 또 정확하게 알지도 못합니다. 다만 왕조실록의 기록을 통해 볼 때, 홍한주의 이야기는 그야말로 등장 인물(심온, 박은)만 실존 인물이고 그 내용은 작가의 상상력에 의해 만들어지는 "TV 사극" 같다는 느낌을 받았습니다.

    물론 박은과 심온의 관계가 결코 좋은 관계는 아니었을 것이라 판단됩니다. 그러나 전해진 이야기처럼 심온이 오로지 박은 개인의 사사로운 시기와 모략에 의해서만 화를 당했다는 증거는 없는 것 같습니다. 왕조실록의 기록을 보아도 그렇게 확신할 만한 증거는 발견되지 않습니다. 이것은 일부 후손(또는 후세인)들이 이 사건을 <악의적인 가해자 : 선량한 피해자>라는 이분법적 사고 패턴으로 본 결과, <박은 : 심온>이라는 단항적 대입을 통해 두 사람의 대립 구조로만 사건을 받아들인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듭니다.

    양가의 통혼 문제에 대해서는 확실한 정보가 없어 말씀드릴 만한 것이 없습니다만 정말로 심온이 죽음을 앞두고 그 자손들에게 "통혼금지"를 언급했는지에 대해서는 구체적으로 확인할 길이 없는 것 같습니다.(즉 심온 자신이라기보다는 그 자손들이 울분과 통한을 "통혼금지"라는 방식으로 표출시킨 것일 수도 있다는 뜻).그러나 그런 이야기가 있다는 것 자체가 두 사람(가문)의 관계가 결코 우호적인 것은 아니었음을 보여준다고 하겠습니다. 다만, 그 사건 이후 청송심씨와 반남박씨가 통혼한 예가 이야기에 나오는 것처럼 딱 한 번뿐이었다는 주장은 사실과 다른 것 같습니다. 제가 양 가문의 족보를 모두 들춰보지는 못했지만, 몇 군데 확인한 결과, 실제 통혼한 예가 더러 발견됩니다. 또한 양 가문의 후손들은 후세로 내려 오면서 그 사건에 대해 알지 못하는 경우가 많아졌다고 하며, 오늘날 대다수의 후손들은 그 사건에 대해 모르고 있다가 TV 사극 등을 통해 새롭게 정보를 얻는 경우가 대부분이라고 합니다.

    박은-심온의 이야기는 전혀 터무니없는 이야기는 아니라고 봅니다. 그러나 그 내용은 후세인들이 흥미 위주로 부풀리고 과장하였으며 때로는 사실과 다른 것을 덧붙이기도 하고, 나아가서, 정치적인 사건을 양 가문의 원한 관계로만 몰아서 사건의 본질을 왜곡시키는 해석을 내리기도 한 것으로 판단됩니다.

    끝으로, 일부(TV 등)에서 5-600년전에 있었던 조상들의 문제를 그것이 마치 선과 악의 대결인 것처럼 흥미 위주로 다루어 오늘날 그 후손들을 감정적으로 부추기는 듯한 태도를 보이는 것은 그리 바람직하지 못하다는 생각이 들기도 합니다. 감사합니다.

    2011.12.30 19:11 신고 [ ADDR : EDIT/ DEL : REPLY ]
  8. '단항적 대입을 통해 역사의 흐름이나 사건의 얼개들을 단선적으로 파악한다'는 명제. 한 편으로는 그런 과정을 통해서나마 역사나 사회에의 관심이 환기된다는 주장이 있는 한편으로 한 편으로는 그 또한 진실을 은폐하는 길에 지나지 않는다는 비판도 있습니다.

    요사이 '나는 꼼수다'라는 프로그램에 대해서도 유사한 논란이 있는 것 같습니다. '가카' 한 명만을 거악으로 설정해 두고 그의 악행과 '꼼수'들을 지적하면, 이해하고 조롱하고 분노하기가 쉽고 따라서 또한 연대하기도 쉬워지긴 하지만, 남한 사회의 문제들이란 대체로 파렴치한 개인보다는 구조에 근거하고 있는 바가 많습니다. 개혁, 나아가 혁명이란 더욱 치밀한 준비와 점성 높은 끈기가 필요한 것인데, '나는 꼼수다'는 대중에게 또 하나의 오락을 던져준 것 뿐이라는 지적들이 이른바 진보 지식인층을 중심으로 담론화되고 있는 것 같습니다. 저는 대다수의 대중과 마찬가지로, '나는 꼼수다'가 그 이전이라면 몰랐을 것들을 알게 하고 일정한 동력원을 제공하였다는 데에 동의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포스트 가카' 시대에 그 동력이 어디로 향할지를 생각해 보면 아찔하기도 합니다. 2002년 노무현의 드라마를 함께 했던 '시청자', 혹은 '능동적 관중'들이 과연 '시민'으로 진화하였는지를 떠올려 보면 진보 지식인들의 지적도 또 헛똑똑이들이 고까왔구나, 하고 눈총을 줄 일만은 아닌 것 같습니다.

    진보 지식인들도 '나는 꼼수다'가 적어도 대중을 시청자와 관중으로까지 호출했다는 데에 대해서는 동의할 것입니다. 그 뒤로부터 대중에게는 시민으로까지 나아가야 하는 책무가 생겼다고 할 수 있을 것이구요. 박은과 심온의 이야기에서도 같은 점을 지적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천오백 개 정도의 글이 있는 제 블로그로 유입되는 검색어들 가운데 바로 이 일기가 꽤 많은 양을 차지하고 있습니다. 저를 비롯해 많은 이들이 홍한주의 언급을 소개한 이 글을 통해 크게는 역사, 작게는 청송 심씨와 반남 박씨에 대해 일차적으로 관심을 갖고, mrylenol님의 지적을 통해 비판적으로 역사를 바라보는 훈련을 할 수 있게 되리라고 생각합니다. 넉 달 전에 쓴 글에 대해 다시 생각해 보는 기회를 받았습니다. 감사합니다. 종종 들러 심상한 다른 일기들도 읽어 주십시오.

    2011.12.30 19:24 신고 [ ADDR : EDIT/ DEL : REPLY ]
  9. 심재춘

    내나이 50 어렸을적부터 할아버지에게 들었던기억이남니다 반남박씨하고는 결혼하지마라 선조부터 내려오는예기라고

    2013.12.16 20:00 신고 [ ADDR : EDIT/ DEL : REPLY ]
    • 실제로 이렇게 전수되기도 하는군요! 귀한 경험담 주셔서 감사합니다.

      2013.12.16 20:40 신고 [ ADDR : EDIT/ DEL ]
  10. 저두 어릴때 아버지한테 반남박씨랑 결혼하지마라.이말 많이듣음.ㅎㅎ 다 옛날 이야기죠.심씨들은 대부분다 아는사실입니다.우리아버지는 좀 과격하게 원수집안이라고 말하셨어요.ㅎㅎ

    2014.04.11 03:07 신고 [ ADDR : EDIT/ DEL : REPLY ]
    • 그렇군요. 전 정말 옛날이야기라고만 생각했는데요. 저도 주변의 심씨 성 가진 분들께 집안에서 이런 이야기 들은 적이 있는지 여쭤봐야 하겠습니다.

      2014.04.11 18:40 신고 [ ADDR : EDIT/ DEL ]
  11. 심덕규

    어릴 때는 박씨와 결혼하면 안되는 것으로 알고 자랐습니다.
    어느 정도 철이 들어서 그게 반남 박씨라는 것을 알았습니다.

    2014.04.21 17:26 신고 [ ADDR : EDIT/ DEL : REPLY ]
    • 실제로 전해들은 분이 많으시네요. 다시 들러주셔서 이 댓글을 확인하실지 모르겠습니다만, 만약 확인하신다면 선생님께서도 선생님의 후대에 이러한 이야기들을 다시 말씀해 주시는지 가르쳐주실 수 있을까요?

      2014.04.23 16:16 신고 [ ADDR : EDIT/ DEL ]
  12. ㅋㅋㅋㅋ 울엄마 청송심씨 울아빠 반남박씨 결혼할때 반대 장난아니었다던데요

    2015.10.31 19:38 신고 [ ADDR : EDIT/ DEL : REPLY ]
  13. 심덕규

    이년 만에 다시 뵙습니다.
    물론 제 아이들도 이 내용을 알고 있습니다.
    그렇지만 동성동본 금혼이 폐지된 마당에 무슨 의미가 있겠습니까?
    점점 제사도 사라지는 추세입니다. 개인적으로는 지키겠으나 강요할 수 없는 사항입니다.
    개개인의 판단에 맡길 것입니다. 다만, 우리 아이들은 이 뜻을 따를 것이라고 믿습니다.

    2016.03.03 13:23 신고 [ ADDR : EDIT/ DEL : REPLY ]
    • 네. 자제 분들도 선생님의 뜻을 온전히 전달 받았다면 선생님의 뜻에 어긋나지 않는 선택을 하겠지요. 흡족한 결과 있으시길 바랍니다.

      2016.03.27 00:04 신고 [ ADDR : EDIT/ DEL ]
  14. 심선용

    저희 할아버지께서도 반남 박씨와는 원수지간이니 결혼하지 말라고 하셨죠. ㅎㅎ 반 진담 반 장난으로요. 저희집 말고도 다른 심씨네에도 전해져 내려오는걸 댓글보고 알게돼서 신기해서 저도 남겨봅니다

    2016.09.30 21:52 신고 [ ADDR : EDIT/ DEL : REPLY ]
    • 네. 위의 내용 자체는 재미있어 하는 분도 계시고 불편해 하는 분도 계시지만, 논쟁이 될만한 것 말고 할아버지들이 집안에 얽힌 이런저런 이야기들을 전해 주시는 것은 참 좋은 일 같아요.

      2016.10.10 14:42 신고 [ ADDR : EDIT/ DEL ]
  15. 심서후

    예전 인기드라마 뿌리깊은 나무의 앞부분이 위 내용으로 시작되죠;;
    문득 생각나서 찾게되었는데 좋은 정보 감사합니다.

    2016.10.31 16:50 신고 [ ADDR : EDIT/ DEL : REPLY ]
  16. 심규후

    저도 할아버지, 아버지께 어렸을때부터 전해들었던 이야기인데,, 참으로 신기하네요

    2016.11.01 13:54 신고 [ ADDR : EDIT/ DEL : REPLY ]
    • 위에 댓글을 달아주신 분과 같은 항렬이신가 보군요. 심 씨 가문의 분들께서 몇 년이 지나도록 이 기사에 댓글을 달아주시니 감사하고 신기하고 그렇습니다.

      2016.11.10 02:36 신고 [ ADDR : EDIT/ DEL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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