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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기장/2011

7월 13일



- 주소를 알려준 사람은 많아야 열댓 명이고, 이전에 비해 딱히 더 재미있는 내용을 쓰는 것도 아닌데 조회수가 차츰
 
라가더니 마침내 백 근처를 맴돌게 되었다. 처음에는 좋았지만 점차 시간이 지나면서 매일 일기를 써야 되나 이거,

남들이 재미있어 할만한 내용 써야 되나 이거, 같은 간사한 생각이 들어 오랜만에 사진 한 장 없이 에랏 근황 적는다.

에랏 근황의 미덕은 문단 앞에 - 하나 붙였다는 핑계 대고는 전혀 연결되지 않는 글들을 마음대로 써지르는 것. 안팔리

는 과자만 잔뜩 든 선물상자 되겠다.


- 시험이 끝난 상원과 종각에서 만났다. 술을 못 마시는 친구와 만나는 것이긴 하지만, 설마 진짜로 스타벅스 한 가운

데에 앉아 네 시간을 떠들 줄은 몰랐다. 어깨에 근력 잔뜩 들어간 연애 업계의 연금술사님께 성공하는 연애의 조건이

란 무엇인가에 대해 깊이 배우는 시간 가졌다. 마음에 드는 여자에게 말 한 마디 못 건네는 그를 위해 대신 가서 애달

픈 사연을 전하곤 하던 것은 어느덧 한 갑자 전의 이야기. 누더기 같은 내 상열지사에 비해 존경할 만한 여성의 마음을
 
노획하여 수 년 째 빛나는 열애 중인 그에게 배움을 청하는 것이 무어 부끄러울 것이 있으랴. 와신상담과 절치부심의
 
마음일랑 꼭꼭 숨기고 치아 열두 개 보여가며 웃는 낯으로 수강하고 돌아왔다.


- 근래 자주 듣는 노래 중 하나인 브로콜리 너마저의 '춤'을 듣다가 문득 든 생각이다. '숨을 쉬다', '꿈을 꾸다', '춤을
 
추다'와 같은 말을 보면 명사형과 동사형의 자음이 'ㅅ', 'ㄲ', 'ㅊ'으로 동일한데, 같은 어원의 변형이니 당연하다면 당

연한 것이겠지만, 그래도 얼핏 보면 엄청 신기한 것인데도 왜 이날 이때껏 한 번도 눈여겨 보지 않았을까. 덕분에 나는

요새 멍때리고 있을 때에는 또 저런 사례가 없나 꼽아보는 버릇이 생겼다. 재수 좋으면 시로 쓰거나, 하다 못해 수필의

도입부로라도 써먹을 수 있겠지.


- 각종 TV 토론에서 구수한 인상의 선대인 부소장만을 보다가, 김어준 딴지 총수가 진행하는 '뉴욕타임스' 129회에서
 
김광수경제연구소의 김광수 소장을 처음으로 보았다. 2000년대의 부동산 시장에 대해 짧고 쉬운 말로 정리한 내용도

무척 좋았지만, 빠르면 2012년 총선을 목표로 창당을 준비하고 있다는 선언에 큰 충격을 받았다. 대선이든 총선이든

자발적으로 찍어주고 싶은 민주당 후보는 한 명도 없고, 아무래도 문재인과 유시민이 밀어주는 사람들 찍게 되지 않겠

나 하고 시무룩해 하는 것이 요새의 대체적인 심사였다. 정책 집단과 관료 집단을 양 손에 쥐지 않고 영웅 한 명만이
 
청와대로 뚜벅뚜벅 걸어갔다가 어떻게 되었는지 똑똑히 본 뒤로는, 마음에 드는 사람일수록 대권을 쥐지 않았으면 하

는 바람을 갖게 되었던 것이 사실이다. 그런데 특히 경제와 교육, 복지 등의 현안에 관해 체계적이고 효과적인 대안들

을 연이어 제시해 온 김광수경제연구소가 정치세력화 한다는 소식에는 반색하지 않을 수 없었다. 정책 연구소이지만,
 
서울시의 정책 전문관을 지냈던 선대인 부소장을 비롯해 실제 행정 경력을 갖춘 인력 또한 적지 않은 것으로 안다. 진

보신당과 민노당, 국민참여당의 합당설조차 제대로 다루지 않는 메이저 언론에서 김 소장의 선언을 실어줄리 만무하

지만, 개인적으로는 2012년 대선과 총선이 지나간 후 그 이력을 복기할 때에 다섯 손가락 안에 꼽히는 이정표가 될 것

이라고 확신한다. 그 소식 퍼뜨리기 위해서라도 안 하던 트위터 배워볼까 생각 중이다.


- 어떤 계기가 있어서, 애장하고 있던 마이크 마이어스의 <오스틴 파워>와 스티브 카렐의 <겟 스마트>, 그리고 임원희

선생님의 <다찌마와 리(2008)>를 다시 꺼내어 연이어 보았다. 다시는 연극 무대로 돌아가지 못한다 하더라도, 스파이

코미디 극본 한 편은 꼭 완성하고 죽겠다고 다짐하였다. '그 짓은 용서치 않는다'와 같은 대사 한 마디 쓰지 않고, 도대

체 나는 무엇을 하고 살았단 말인가.


- 새벽에 택시를 타고 한강을 넘는 일이 잦아졌다. 내 가계부에 가당키나 한 일인가 싶다가도, 하려면 얼마든지 할 수
 
있는 일이었구나 하는 생각도 든다. 여전히 밥 먹고 책 읽고 때 되면 화장실 가는 장삼이사의 일상이지만, 부분만 들어

내면 괜찮은 단편영화 같은 순간들이 생겼다. 새삼스레, 하고 뇌까리면서도 머리를 긁적이며 웃긴 웃는다. 별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