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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기장/2011

<오래된 아이>, 7월 10일 대학로 열린극장





작년 이맘때쯤 아주 즐겁게 관람했던 공포연극 <다락>의 극단인, 극단 '옆집누나'의 2011년 공포연극, <오래된 아이>.

이 극단은 여름이 돌아올 때마다 공포연극을 상연하는 모양인데, 꽤 재미있게 보았던 <다락>의 연출이 이번 작품에서

도 연출을 맡고 있길래 기대하며 예매했다. 작은 입장권에 인쇄된 포스터만으로도 섬뜩했던 <두 여자>에 이어, 포스터

의 귀신이 아이유와 함께 지친 30대의 삶에 활력을 가져다 주는 카라의 한승연 양과 닮아 느낌이 좋았다.


먼저, 스토리. 간단한 줄거리는 다음과 같다.


매 해 열리는 축제 때마다 목사의 비밀스런 주재 아래 구성원들이 식인의 의례를 갖는 마을이 있다. 15년 전, 목사의
 
딸인 '인후'가 이 장면을 목격한 뒤로 홀연히 사라지게 된다. 그 뒤로 실의에 빠진 목사의 아내 앞에 돈이나 그 외의 이

익을 노린 사기꾼들이 연이어 나타나는 가운데, 15년 후인 지금 마침내 한 젊은 남자가 나타나 자신이 '인후'라고 주장

하기에 이른다. 자신이 여자아이인 '인후'라고 주장하는 이 젊은이에게 마을의 구성원들은 강한 의구심을 품지만, 그

의 입에서 나오는 이야기들은 '인후'가 아니면 도저히 알 수 없는 것들이었다. 한편 시간이 지남에 따라 식인 의례에
 
참가했던 이들이 하나씩 의문의 죽음을 맞이하게 되는데, 남겨진 의례의 핵심 멤버들은 그 젊은이가 사실은 '인후'가
 
아니라 인후의 친구로 식인 장면을 함께 목격하였던 '김진'임을 알게 된다. 진실이 밝혀질까 두려운 그들은 식인의 의

례가 이루어졌던 창고로 '김진'을 불러들인다.


이 뒤로는 결말 장면이 이어지는데, 막 시작한 공연이라 끝까지 적는 것은 결례인 것 같아 이 정도만 소개해 둔다. 


'귀신이 사는 집에 새로 들어간 신혼부부'나 '쌍둥이 동생의 자리를 몰래 가로챈 언니'와 같은 하나의 자극적 설정만으

로 끝까지 밀고 나갔던 다른 공포연극들에 비해, 이 연극은 비교적 공을 들여 서사를 구성한 것으로 보인다. 다만 어디

까지나 동종의 장르 내에서 비교적인 우위를 차지한다는 것 뿐이지, 한 편의 스릴러로 보자면 소재도 지나치게 식상하

며 군데군데 개연성이 심각하게 떨어지는 곳이 눈에 띄었다.


그 빈 틈을 채워주어야 할 것이 공포연극의 미덕인 '깜짝쇼'이다. 극장에 들어섰을 때, <두 여자>의 라이프시어터 극장

에 비해 거의 두 배에 가까운 크기임을 보고는 <다락>에서 인상적으로 보았던 여러 가지 장치들이 쓰일 수 있겠다 싶

어 기대가 됐다. 실제로, 빗방울이 바닥에 떨어지는 모습을 형상화하거나, 최면을 거는 장면에서 어린 아이의 얼굴이
 
무대 전체를 빙빙 도는 것처럼 보이게 하는 조명의 다변적 활용은 큰 무대를 배경으로 하여 그 효과를 배가하였다. 


하지만 지나치게 크고 길게 끄는 음향효과가 공포보다는 불쾌감을 유발하는 일이 잦았고, 무대의 배치는 처음부터 끝

까지 큰 변화 없이 별다른 활용을 보이지 않았다. 무엇보다도 큰 과오였다고 생각되는 것은, '귀신' 역할을 맡은 배우

가 지나치게 자주 그리고 긴 시간동안 노출되어, 그가 '미지의 존재'라기보다는 '하나의 배역'으로 또렷이 인식되었다

는 점이다. 끔찍한 분장을 해 놓았고 등장 때마다 귀가 찢어질 듯한 음향과 갑작스런 조명을 때려대니 무섭기야 하지

마는, 시간을 두고 찬찬히 살펴보면 그 또한 숨쉴 때마다 가슴팍이 오르내리는 한 배우에 불과한 것임을 '인지'하게 된

다. '정체'가 '인지'된 대상은 더 이상 '공포'를 유발할 수 없다. 그러한 연출 상의 결정적인 실수 외에, 귀신 역을 맡은
 
배우의 '비일상적', 혹은 '비정상적' 행위들, 즉 '귀신처럼 여겨지는' 행위들, - 예를 들면, 옆으로 서 있다가 갑작스레
 
관객석을 휙 쳐다본다든지, 암전 사이에 소파나 의자와 같은 설치물 뒤에 몰래 숨어있다가 갑작스레 나타나는 것과 같

은 -  에서의 몸놀림이 숙련되지 못한 것이 아쉬웠다. 사람이 하는 것인 줄 뻔히 알면서도 눈 앞에서의 기괴한 움직임

에 전율하지 않을 수 없었던 <다락>의 귀신에 비해, <오래된 아이>의 귀신의 몸놀림은 무섭다기보다는 무척 고되어
 
보인다는 생각을 하게 만드는 것이었다. 아직 공연 초반이고 하니 점점 나아지길 바란다. 


이 연극을 한 단어로 평을 하자면, '유기농 빅맥'이 어떨까 싶다. 맥도날드로 햄버거를 먹으러 갈 때에 기대하고 가는
 
것이란 자극적인 양념 맛과, 한우에 비할 수는 없지만 어쩄든 씹히는 맛은 있는 싸구려 패티 등일 것이다. 빅맥은 애당

초 미식이나 보양을 위해 찾는 음식이 아니다. 그런데 여기에 '유기농'의 이름이 붙은 채소나 호밀 빵 등이 들어가면,

종래에 내가 기억하던 것과는 다른 맛이 나온다. 몇 차례고 거듭해서 찬찬히 음미해 보면, 어쩌면 원래의 맛과 비슷한

수준이거나 혹은 더 좋을 수도 있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가장 중요한 것은 그것이 '내가 기대하던 것'이 아니라

는 사실이다. 아울러, '유기농'이라는 것도 결국 햄버거 중에 유기농이라는 것이지 콩비지 백반이나 쌈밥 정식에 비하

면 여전히 정크 푸드의 차원을 벗어난다고는 볼 수 없다. 차라리 유기농 채소나 빵 넣을 돈으로 치즈나 한 장 더 넣어

주지. 진짜 유기농도 아니고 진짜 빅맥도 아닌 정체불명의 식품. '유기농 빅맥'이란 제품의 본질과 소비자의 기호를 읽

지 못한 어정쩡한 포지션의 실패작이 될 것이라고 말할 수 있는 것이다. 


마찬가지이다. <두 여자>의 관람 후기에서도 언술하였듯이, 공포연극에서 결국 가장 크게 기대되는 것은 얼마나 깜짝

쇼를 잘 터뜨리느냐, 그리고 다음 깜짝쇼를 위해 얼마나 효울적으로 긴장을 이완시켜 놓느냐에 달려있다. '긴장' 파트

를 맡아야 할 깜짝쇼는 그러나 이 연극에서 너무 빈번하게, 그리고 비효율적으로 '남용'되고 있다. 아울러 '이완' 파트

를 잡아주어야 할 스토리의 전개, 혹은 세부 설정 등은 공포연극 치고는 다소 과하게 교차되어 있으며, 혹 기준을 달리

하여 스릴러 물로 평가하고자 하면 무척 조악한 수준이다. 좋은 공포연극도, 좋은 스릴러도 되지 못한 연극. 이 연극이

흥행하지 못하거나, 혹은 혹평을 받게 된다면, 반드시 그 지점을 지적받게 되리라고 나는 생각한다. 개인적으로는, 관

람 계획을 잡고 계시다면 다른 연극을 찾아보시거나, 혹은 DVD방을 찾아 올 해 최고의 공포영화인 <블랙스완>을 관람

하시길 권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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